의원·당료·보좌진 ‘신분차별’ 없이 신선한 아이디어 모으는 한나라당 ‘P-mart’ 포럼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정당과 국회의 중심은 국회의원이다. 선출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건 좋다. 보좌관·비서관과 당 사무처 당료들은? 이들은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었다. 회의장에는 의원들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보좌진·당료들은 뒷줄의 배석자에 그쳤다. 권위주의적 풍토 속에서 ‘2등 국민’으로 취급되는 경향도 있었다.
‘계급’ 구분 없는 운영방식
미국 정치권은 다르다. 젊은 엘리트들이 보좌진으로 진입해 전문적 스태프 대우를 당당하게 받는다. 직무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신분 차별’은 없다.
이런 가운데 일종의 ‘신분 해방’ 운동이 한나라당에서 시도되고 있다.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가 주관하는 ‘P-mart’ 포럼이 그것이다. P-mart는 Policy-mart의 줄임말로, 정보와 지식, 정책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시장 개념으로 제안됐다. 지난해 11월11일부터 매주 한 차례씩 외부 강사를 초청해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조찬 포럼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P-mart의 신분 해방적 요소는 의원과 당료, 보좌진을 동등한 자격으로 선발해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는 데서 시작한다. 초기 출범을 주도한 윤건영 의원은 “정치권에 들어와보니 모든 게 의원 중심이었다. 그러나 당의 정책역량을 높이려면 현장을 뛰는 당직자와 신선한 아이디어를 지닌 젊은 보좌진과 함께 호흡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전문가 영입 성격(연세대 교수)으로 국회에 진출한 비례대표 초선 의원이다. 따라서 권위주의에 한결 덜 물든 사람이다.
윤 의원은 한나라당 당직자 노조위원장과 보좌진협의회장에게 “함께 만드는 포럼”을 제안했다. 노조나 보좌진쪽이 당연히 환영할 일이었다. 일사천리로 논의가 진행돼 의원 3명, 당료 3명(노조 추천), 보좌진 3명으로 1차 포럼(5주차) 운영위원회가 꾸려졌다.
현재 P-mart의 2차 포럼(8주차) 운영위원회에는 정두언(48·운영위원장), 박재완(50), 나경원(42) 의원이 참여하고 있다. 당료는 권태식(50) 전문위원, 김영인(37) 대변인실 팀장, 김소양(27) 디지털정당본부 차장이 참여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은 하현철(45), 정광윤(43), 신용출(40)씨가 가담했다.
정두언 의원은 “수평적 네트워크를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모임 원리를 설명했다. 실제로 운영위원회는 발표자 선정 등 포럼 운영을 기획할 때 각자의 아이디어를 ‘1인 1문건’으로 내도록 했다. 의원이건 보좌진이건 ‘계급장을 떼고’ 난상토론을 벌인 것이다.
그 결과 올해 2차 포럼 8주차 가운데 첫 번째로 진행한 유인촌 서울문화재단 대표(2월17일)의 경우는 막내이며 여성인 김소양씨의 아이디어였다. 2주차 서경석 목사는 정광윤 보좌관의 제안이 채택됐으며, 4주차 3월10일 이석연 변호사는 윤건영 의원이 제안했다. 의원과 보좌진, 당료의 제안이 고루 반영된 셈이다.
조찬포럼 현장운영 방식도 바꿨다. 의원, 당료, 보좌진 할 것 없이 고루 돌아가며 사회를 맡도록 했다. 보통 40~50명쯤 참석하는데 처음에는 의원들이 앞줄 로열석에 앉았다. 그러던 것이 ‘의원님’과 ‘평민’의 구분 없이 오는 순서대로 자리를 차지하는 분위기가 잡혔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3월10일 포럼(국회 도서관 지하 소회의실)은 행정수도 이전 헌법소원 승소로 유명한 이석연 변호사가 나서 ‘행정도시법의 문제점’ 등을 발표했다. 참석자는 40명쯤으로, 의원 9명에 나머지는 당료·보좌진, 일반 시민들이었다. 발표가 끝난 뒤 질의응답, 토론 순서가 되자 김문수·맹형규 의원과 보좌관 한 사람, ‘신당동에서 왔다’는 시민 등이 앞다퉈 손을 들었다. 1시간여의 발표·토론 끝에 정두언 운영위원장은 “요즘 여야간에, 또 한나라당 내부에서 싸움이 많이 벌어지고 있지만 P-mart는 붉은 띠를 질끈 동여매고 공부만 하자”는 말로 일정을 맺었다.
P-mart의 신분 파괴를 가장 반기는 사람들은 역시 보좌진·당료들이다. 정광윤 보좌관은 “보좌진은 그동안 몸싸움할 때 인력동원 대상이 되는 식으로 정치권의 종속변수였다”며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20~30대의 젊은 아이디어를 유통시킬 공간도 넒어진 셈”이라며 “정책 생산성이 높아질 것으로 굳게 믿는다”고 했다. 3월3일 포럼 사회를 맡았다는 김소양 차장은 “사무처 당직자로 일한 지 4년밖에 안 되는데 당 차원의 행사를 이끌어보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모이는 사람 많지 않아 고민
그러나 첫술에 배부르긴 어려운 일이다. 첫째로 지난해 11월부터 다섯달째 주례 포럼을 운영 중인데 모이는 사람이 많지 않다. 처음에는 당 소속 의원·당료·보좌진에게만 알리다가 최근 1만2천여명에 이른 한나라당 홈페이지 가입자들에게도 안내 메일을 보냈다. 그럼에도 40~50명, 그것도 ‘늘 보는 얼굴’이 절반 이상 되는 탓이다.
둘째로는 운영위원 3명을 빼고 나면 이곳을 찾는 의원이 1~2명밖에 안 될 때가 많다고 한다. 기자가 찾은 3월10일에는 마침 다음날로 예정된 원내대표 경선 때문에 의원들이 늘었다. 경선 출마자인 권철현·맹형규 의원이 ‘겸사겸사’ 포럼을 찾았다.
이를 두고 포럼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 고위 공직자 또는 대기업 경영자 등으로 목에 힘을 잔뜩 주던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런 면도 있다”며 “정책 토론을 즐기는 풍토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P-mart의 신분파괴 실험에는 유쾌한 구석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몇몇 참가자들의 즐거운 체험을 넘어, ‘큰 울림’으로 퍼져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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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위원장을 맡은 정두언 의원에게 포럼 운영 5개월째의 소감을 물었다.
P-mart만의 특별한 재미는 무엇인가?
국회의원, 보좌진, 당직자를 가릴 것 없이 수평적 네트워크 방식으로 어울리니까 훨씬 분위기가 가볍고 자유롭다. 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으리라고 믿는다. 또 의원들만의 모임이 아니라고 하니까 외부 발표자들도 한결 부담을 덜 갖고 참여하는 것 같다. 여의도연구소 주관 형식인데, 연구소는 당 부설이면서도 당과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몇달간의 활동으로 당 분위기를 바꾼 게 있나?
확 바꿨다고는 할 수 없다. 이제 시작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전혀 모르는 일반 시민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거기에 참여해도 좋으냐’라는 문의들이 오고 있다. 심지어 열린우리당 사람들이 ‘우리도 그 마트에 가도 되냐’고 묻는데 ‘물론이다. 오시라’고 답하고 있다. 다른 의도 없이 순수하게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밀고 나가면 성과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개선할 점은?
젊은 층이 좀더 많이 참여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지금도 대학가에 안내 포스터를 붙이고 있다. 앞으로는 각 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들한테도 섭외를 해볼 생각이다. 학생들한테 현장학습 기회가 되니 많이 보내달라고 요청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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