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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카드 푸~근합니까?

등록 2005-02-24 00:00 수정 2020-05-03 04:24

[뉴스인물 다시 보기 | 한명숙]

‘노심’ 퍼지면서 열린우리당 당권경쟁서 급부상… 행정능력 인정받지만 실제 업적은 약하다는 평도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한명숙 의원이 열린우리당 당권 경쟁에서 급부상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을 얻은 후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문희상·신기남 의원 등과 나란히 당의장감으로 훌쩍 뛰어오른 것이다. 다른 유력 주자들이 진작부터 신발끈을 조여맸던 것과 달리, 한 의원은 출마 자체를 망설이다 뒤늦게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한명숙 카드’는 한층 더 관심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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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주자 대리전 안 된다”

그렇다면 한 의원은 정말로 ‘노심’을 얻은 후보일까?

기자는 2월16일 그를 찾아가 직접 물었다. 이에 한 의원은 “당내 여러분들이 출마를 권유해 결심했습니다. 그렇지만 대통령 생각과는 전혀 관계없습니다. 대통령은 당정 분리를 실천하는 분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전혀 아닐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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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의 일부 측근들은 최근 “한명숙 의원이 제일 괜찮다”고 입을 맞춘 듯이, 그리고 망설임 없이 말하고 있다. 이들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에 뿌리를 둔 국민참여연대(상임의장 명계남)에 관여하고 있다. 국민참여연대는 ‘열린우리당에 노무현 부대를 만들겠다’며 전당대회를 겨냥해 만든 조직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당정 분리 원칙에 따라 입을 다물더라도, 국민참여연대는 ‘노심’의 풍향계가 될 수 있다. 국민참여연대의 일부 인사들은 “앞으로 조직 차원에서 한 의원 지지를 선언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한 의원은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느 계파도 아닙니다. 이번 전당대회가 대권 주자의 대리전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청와대·내각과 호흡을 맞추면서 일을 해나가는 책임 여당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말은 임기 3년차를 맞는 노 대통령이 여당에 거는 기대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2007년 초 다음 대선 후보가 결정되기까지의 앞으로 2년간이 순수하게 자신이 일할 시간이다. 그동안에는 여당이 대권 경쟁에 휩싸이기보다는 국정 동반자로서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해주길 기대하게 돼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재선의원은 “대통령의 희망뿐 아니라 상당수 여당 지지자들의 정서도 비슷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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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동안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 사이는 썩 원만하지 않았다. 지난해 김혁규 의원을 총리 후보로 지명하려 할 때 당쪽이 들고 일어나자 노 대통령은 ‘청와대가 당무에 간여하지 않으니 당도 청와대 일에 간여 마라’는 취지로 짜증을 냈다. 지난해 가을 노 대통령이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에 보내자”며 ‘폐지론’을 선창하자, 당지도부쪽은 “대통령이 북 치고 장구 치는 바람에 당 차원에서 페이스 조절 기회를 잃었다”며 청와대를 원망했다.

이런 내력 탓에 노 대통령은 ‘한명숙 책임여당론’을 반길 가능성이 높다. 한 의원은 자신에게 붙은 ‘관리형’ 딱지를 좋아하지 않지만, 노 대통령 입장에서 볼 때 한명숙 카드가 더없이 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 의원은 ‘부드러움의 힘’ ‘푸근한 리더십’ 등의 평판을 얻어온 사람이다.

한 의원은 참여정부의 첫 환경부 장관을 마친 뒤, 당 차원의 국정과제위원회 위원장도 맡아왔다. 노 대통령은 국정과제위원회(총괄 이정우 위원장) 일을 ‘대통령 프로젝트’라며 애지중지 챙겨왔는데, 한 의원은 바로 이 기구에 조응하는 당기구의 책임자를 맡아왔다. 따라서 대통령의 생각을 ‘일을 통해’ 잘 알 만한 위치에 있어온 셈이다.

이런 정황들을 종합하면 한 의원에게 최소한 ‘노심 후보’라는 심증을 두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다만. 당정 분리 원칙을 비롯한 여러 문제들 때문에 물증까지 확보하긴 어려워 보인다. 즉, 4월2일의 전당대회까지 가변성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사람을 어떻게 끌어당기나

그러면서도 ‘노무현-한명숙 관계’에는 독특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한 의원은 노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을 기자가 묻자 이렇게 답했다. “개인적 인연은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2000년에 민주당에 참여한 뒤로 회의석상에 함께 앉아도 ‘아, 저분이 노무현 의원이구나’라는 정도로 생각했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습니다.”

한 의원은 김대중 정부 후반기의 2년간 여성부 장관을 하느라 2002년 대선 캠프에 참여할 기회도 없었다. 그러다가 노무현 당선자의 인수위원회 시절 여성부 업무 보고를 나름대로 스마트하게 한 뒤, 참여정부의 첫 환경부 장관으로 기용됐다고 한다. 한 의원은 “여성부 업무 성적이 그런대로 평가받은데다, 새 정부 조각 때 마땅한 여성 인력을 구하기 어려웠던 사정도 작용한 것 아닌가 짐작한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초대 여성부 장관으로서 부처 발족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 편이다. 또 환경부 장관 시절인 2003년 12월에는 정부 각 부처에 대한 종합평가(총리실 주관)에서 1등을 차지했다.

노 대통령은 직접 아는 사람을 챙겨서 쓰기도 하지만, 객관화된 평가 시스템을 워낙 좋아하고 중시하는 편이다. 노 대통령 자신이 직접 아는 인적 자원이 워낙 적은 탓도 크다고 한다. 어쨌든 ‘노무현-한명숙 관계’는 ‘끈끈한 사적 인연’보다는, 객관적 시스템을 통한 ‘평가의 산물’ 측면이 크다. 노 대통령은 지난 1월 말 한 의원에게 교육부총리를 맡아보라고 종용했는데, 이 역시 “업무평가를 보니 행정 능력은 될 것 같다고 판단했음직하다”고 한 의원은 기억했다.

그의 리더십도 흥미롭고 독특하다. 남편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통혁당 사건으로 13년간 투옥)는 “어느 조직에서나 지식 흡수가 빠르며 미움을 사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발휘한다”고 설명한다.

한 의원이 여성부 장관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는 이렇게 했다고 한다. 그는 “업무와 사람을 함께 파악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업무 보고를 장관실에서 받는 대신에 장관이 국·과 사무실로 찾아다녔다. 그 자리에 간부뿐 아니라 여사무원까지 모두 모아놓고 죽 말을 하도록 시켰다. 그 다음에 자신만의 ‘몰래 노트’에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징을 꼼꼼히 기록했다고 한다.

환경부 장관으로 가보니 직원들이 ‘장관실 보고’를 두려워했고 심지어 장관실을 빠져나가려고 뒷걸음치다가 벽에 부딪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분위기를 직원들이 활기차게 장관실 문을 열어젖히도록 몇달 만에 바꾼 것도 그였다. 환경부에서는 전문용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그 때문에 그는 요약 책자를 만들어달라고 해서 입시공부 하듯이 죽어라 외웠다고 한다.

굵직한 사안 해결에 두각 못 보여

한 의원이 ‘푸근한 화합형’ ‘사람 챙기기형’ 리더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사람 좋은 이미지와 달리, 실제 업적이 약하다는 평판도 있다. 환경부 장관 시절에 천성산 터널, 사패산 터널, 새만금 문제 등 굵직한 환경 분쟁성 사회갈등이 많았지만 ‘한명숙 장관’이 이들 문제를 해결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 탓이다.

어쨌든 그의 열린우리당 당의장 도전은 이 밖에도 여러 가지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를 제공한다. 그는 “남성 중심의 수직적 리더십보다는 이제 민주적 절차를 중심하는 네트워크형 여성 리더십은 어떤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부드럽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자신이 1979년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으로 구속됐던 민주화운동가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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