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한 한나라당 ‘4대 입법 반대’ 사이버 운동… 본인 홈피 방문자 수 믿고 추진한 박근혜 대표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한나라당이 거당적 차원에서 추진했던 ‘4대 국민분열법 반대 행동하는 넷심’(행넷) 운동이 기대와는 달리 네티즌의 마음과 행동을 끌어모으지 못하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한나라당의 ‘인터넷 마인드’ 수준이 단적으로 드러났다는 비판이 따르고 있다.
한나라당은 11월28일 ‘4대 국민분열법 바로알기 네티즌운동’을 대대적으로 선포했다. 당 안팎의 사이버 역량을 총 가동해 4대 법안의 폐해를 알려나가고, 이를 위해 정보 확산이 용이한 미니홈피, 블로그 등을 개설해 활발하게 내용을 ‘퍼나르게’ 한다는 전략이었다. 이날 선포식 직후에는 박근혜 대표가 직접 채팅에 나서 “미혼이고 나이는 비밀입니다” “여러분 아자아자 화이팅!”이라고 외치는 등 분위기를 띄웠다.
>‘배너’ 단 의원 121명 중 23명
그러나 이 운동은 시작부터 밑천을 드러냈다. 8일째인 12월6일 오전 10시반 현재, 4대 국민분열법 바로알기 네티즌 운동 미니홈피에는 모두 8454명이, 같은 이름의 네이버 블로그에는 4364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스크랩(내용을 복사해가는 것) 횟수도 미니홈피 420여건, 블로그 480여건에 그쳤다. 인터넷의 특성상 전혀 파장을 일으키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단적인 예로 12월3일 오후 5시까지 이날 하루 박근혜 대표의 미니홈피 방문객은 2천명을 넘어섰고 이명박 서울시장의 경우도 700명에 달했으나, 한나라당의 미니홈피 방문객은 500명선이었다.
이런 사정을 한나라당 지도부는 뒤늦게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당직자들은 행넷 운동이 시작된 뒤 나흘째까지 성과를 자화자찬했다. 김형오 사무총장은 “거당적으로 캠페인을 전개해 접속자가 모두 9702명이다”(12월2일 운영위), “행넷 운동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12월1일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 “선포식을 기점으로 잠잠했던 국민분열법 이슈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11월30일 주요당직자회의)고 앞세웠다. 김덕룡 원내대표도 “네티즌들의 움직임을 보니 사이버 국회의원이나 사이버 정책위원을 위촉해 사이버 정치를 해도 되겠다”(12월1일)며 맞장구쳤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이런 자랑은 쑥 들어갔다. 젊은 당직자들이 “그 정도 방문객 수는 결코 자랑할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한 당직자는 “당 지도부가 인터넷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면서 “사무총장에게 숫자를 자꾸 앞세우지 않았으면 한다는 건의가 올라갔다”고 말했다. 박 대표도 이런 진행 상황을 의식해서인지 12월2일 운영위에서 “한나라당이 온라인쪽이 약하지만, (행넷 운동의) 성공 여부는 많은 분의 참여가 관건”이라며 거듭 참여를 독려했다. 그러나 의원들의 반응은 영 뜨뜻미지근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 결과 12월5일 자정 기준,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121명 가운데 자신의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행넷 운동 바로가기 배너를 단 의원은 23명뿐이었다. 김덕룡 원내대표를 비롯해 진영 대표 비서실장, 임태희 대변인의 홈페이지에서도 배너를 찾기 어려웠다. 클릭 한번이면 내용도 보고 전달도 쉽게 여러 종류의 배너를 만들어놓고 여기저기 옮길 것을 촉구한 ‘사이버 행동전략’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한나라당 디지털정당위원회는 ‘기대 밖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12월6일 홍익대 앞 맥줏집 번개 모임을 조직하고 인터넷 매체와 릴레이 채팅을 기획하는 등 행넷 운동 확산에 나섰다. 그러나 운동 시작 때 내건 “네티즌의 힘으로 4대 법안을 막아내겠다”던 흥분은 이어가지 못하는 눈치이다.
젊은 당직자들은 말렸건만…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된 것일까. 선포식 전날 한나라당 내부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 짐작이 가능하다.
11월27일 오후 원희룡 최고위원의 블로그에는 한나라당 지지 네티즌들의 ‘호소’가 잇따랐다. “내용과 방식 모두 역풍을 일으킬 게 뻔하니 막아달라”는 내용이었다. 실제 한나라당이 선포식에 앞서 공개한 선전 내용에는 선동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이 가득 차 있다. 4대 법안은 “한국 사회를 ‘노무현의 사회’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면서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백주대로에서 활동하게 만든다 △학생들을 자신의 이념대로 교육시킨다 △마음대로 밉보인 사람들을 데려다 조사한다 △비판 언론을 주무른다 △역사를 자신의 뜻대로 고쳐쓴다라고 주장했다. 네티즌들은 “이런 일방적인 내용을 게시물로 올리거나 사적 매체에까지 퍼나르면 ‘스팸 취급’을 받아 오히려 반감을 일으킨다”고 우려했다. 이런 요구가 쏟아지자 원 의원은 이날 오후 4시간 가까이 주요 당직자들과 실무자들에게 전화를 돌려 사이버 운동 유예에 대해 재검토를 요구했다. 한 당직자는 “젊은 당직자들은 원 의원의 뜻에 공감했지만 이미 진행된 일을 되돌릴 수 없었고, ‘윗분’의 의지도 워낙 강했다”고 전했다.
애초 사이버 운동을 제안했던 이는 박근혜 대표였다. 박 대표는 11월24일 디지털정당위원장인 김희정 의원을 불러 ‘네티즌 운동’을 조직할 것을 직접 지시했다. 선포식을 나흘 앞둔 상황이었다. 김 의원이 “내용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하다”고 건의했지만 박 대표는 “내용은 차차 보강하면 된다”고 평소 스타일답지 않게 ‘저돌적인 애착’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주요 당직자는 “그 전부터 ‘박사모’를 비롯해 당 안팎 네티즌들의 적극적인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인터넷 카페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은 11월 초부터 박사모 알리미(퍼나르기)를 2인1조로 편성하겠다고 밝히는 등 일찌감치 ‘사이버전’ 태세를 갖춘 상태였다. 이들은 친박근혜 사이트와 친노무현 사이트를 비롯해 각 언론사 사이트와 네티즌 논쟁이 활발한 주요 사이트들을 성격별로 108조로 분류해, ‘공략 대상’도 나눴다. 한나라당 행넷 운동 선포식 이틀 전 선전 내용도 미리 입수해 ‘사이버 전사대’ 결성에도 나섰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될 것으로 보였던 박사모가 예상 밖으로 한계를 보였다. 20명이 한 조인 사이버 전사대는 애초 목표와는 달리 12월5일까지 3개 조만 꾸려진 상황이었다. 일부 회원들이 “제발 여기서만 있지 말고 (다른 사이트에도) 좀 뛰어다니자”라고 촉구했지만 ‘확전’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박사모의 한 관계자는 “노사모와 달리 박사모는 여러 연령대가 있고 점잖은 이들이 많아 순발력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면서 “열정만큼은 분명하니 시간이 지나면 불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4대 법안을 반대하는 네티즌들의 조직된 힘’이 나오지 않는 것은 박 대표를 포함한 한나라당 지도부에게 큰 부담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찬성쪽 네티즌들의 활약을 보면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12월3일 국가보안법 폐지안의 법사위 상정을 거부했던 최연희 국회 법사위원장(한나라당)의 홈페이지는 네티즌의 ‘맹폭’으로 몸살을 앓았다.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앞다투어 최 의원 홈페이지를 찾아 근조 리본을 달았다. 최 의원의 홈페이지는 다음날인 12월4일 새벽 결국 서버가 다운되고 말았다.
‘사이버 전사대’ 박사모도 조용당 일각에서는 이번 사이버전은 한나라당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표의 개인 미니홈피 문턱은 닳지만 당이 만든 미니홈피는 개점 휴업 상태라는 건 곧 박 대표의 ‘개인기’에 기댄 당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말해준다는 지적이었다. 한 주요 당직자는 “박 대표조차도 본인의 미니홈피 방문자 수를 곧 한나라당 지지세력, 나아가 4대 법안 반대세력으로 쉽게 오판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웹디자이너 김윤호씨는 “내심 기대를 했는데, 민망할 정도였다”면서 “자율성을 최고로 치는 네티즌들에게 정보를 ‘먹여주겠다’는 태도, 논쟁의 여지 없는 일방적 주장만으로 채워놓은 ‘정보의 질’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네티즌과의 접촉이 활발한 박 대표가 정작 네티즌의 속성과 문화를 오판했다면 두고 두고 큰 짐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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