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강경론자 기세 때문에 박근혜 대표의 ‘나랏일 우선 정치’는 보일 듯 말듯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의원 121명의 대표로서 대통령과 단 둘이 만나 정치 이야기를 해야지, 내일처럼 밥 먹고 사진이나 찍는 자리에 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가 만나서 정치 이야기밖에 할 게 더 있나. 가면 정치 이야기를 해야 한다.”
반대 무릅쓰고 청와대 만찬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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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요인과 5당 대표를 상대로 한 대통령의 남미 순방 결과 설명 만찬을 하루 앞둔 11월24일 한나라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는 이런 주문들이 쏟아졌다. 박희태·강재섭·이규택 의원 등이 강경론을 펴면서 박근혜 대표한테 청와대에 가지 말 것을 요구했다. 가더라도 이해찬 총리의 한나라당 폄하 발언 등 ‘정치 현안’을 강하게 따지라고 이들은 주문했다. 한마디로 “속시원하게 싸워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박 대표는 “대통령이 외국 순방한 결과를 설명하겠다고 하면 야당 대표로서 가서 들어야 한다. 그것이 나랏일이다”라고 답했다.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한 일인 만큼 거기에 야당 대표가 참여해야 하며, 여야간 정치 현안은 그것대로 별도의 기회를 만들어 논의하면 된다는 게 박 대표 주장이었다. 중진들이 여야간 기세 싸움과 정쟁의 주도권 따위를 내세운 반면에, 박 대표는 그 특유의 ‘나랏일을 우선하는 정치’로 맞선 것이다. 박 대표는 다음날 청와대 만찬에 참석했다.
박 대표는 사실 지난 한달여 동안 여야간 가파른 대치 국면 속에서도 ‘나랏일 우선 정치’ 노선을 놓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애쓴 흔적이 있었다. 그는 14일간의 국회 의사일정 거부 끝에 등원을 결정한 11월10일 의원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이런 심경을 밝혔다. “돌이켜볼 때 이번 국회 파행은 누구도 원치 않았던 것이고, 하루하루 안타깝고 국민들께 송구스러운 마음이었다. 지금도 국민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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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는 의사일정 거부라는 투쟁 방식이 애초 자신의 희망과 달랐다는 의미가 담겼다. 또 경위야 어찌됐든 국회 파행으로 국정에 차질이 생긴 것을 두고 ‘야당 대표로서 국민에 대한 사과’를 피하지 않겠다는 뜻도 섞였다.
박 대표는 애초 이 총리에게서 ‘한나라당은 차떼기당’ 발언이 나왔을 때도 다른 대처방식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의 뜻에 밝은 당 관계자들은 “이 총리가 그런 말을 했을 때 ‘그래요. 우리 당은 차떼기한 것 맞습니다. 그래서 철저히 반성했습니다. 그런데 여당은 반성한 것 있나요?’라고 맞받아치는 게 옳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박 대표조차 당내 강경론자들의 기세 때문에 뜻을 펴기 어려웠다고 한다.
“박 대표 ‘사쿠라’로 취급하기도”
사실 박 대표는 이회창 전 총재, 최병렬 전 대표 등 차떼기 당시의, 그리고 대여 강경투쟁 일변도의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다. 거꾸로 차떼기와 탄핵 노선의 결과로 지지율이 급락한 가운데 ‘천막 당사’ 노선으로 당을 일으킨 게 박 대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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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 대표의 당내 입지는 여전히 탄탄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당장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는 11월26일 이해찬 총리가 주최한 시·도지사 간담회에 불참했다. 신행정수도 후속 대책을 논의하는 ‘나랏일’로 볼 수 있지만, 이 시장과 손 지사는 생각이 달랐던 것이다. 한나라당 안에 ‘이·손’ 방식의 강경투쟁론에 공명하는 목소리가 더욱 큰 것도 사실이다.
한나라당의 일부 관계자들은 “정부·여당과 선명하게 대립각을 세우자는 강경파들은 박 대표를 ‘사쿠라’(여권과 물밑 뒷거래를 하는 불순분자)로 취급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런 까닭에 한나라당에선 강경투쟁론이 크게 보이는 반면에, 박 대표의 ‘나랏일 우선 정치’는 보일 듯 말 듯한 상태에 머무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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