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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학벌 콤플렉스에 굴복

등록 2004-10-08 00:00 수정 2020-05-03 04:23

‘고졸 행세’ 혐의로 의원직 상실 위기… “초졸 숨긴 건 잘못했지만 학력란 의무 기재는 없어져야”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진실을 숨긴 잘못을 충분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제 사건을 계기로 학벌사회의 병폐가 줄고 실력으로 인정받는 풍토가 앞당겨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상락(51·열린우리당·성남 중원) 의원은 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소회를 밝히다가 말을 흐렸다. 그는 ‘대한민국 교육부 기준’으로 초등학교 졸업 학력자이면서도 ‘고졸 행세’를 한 혐의로 9월21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0부가 17대 총선 당시 학력을 거짓으로 밝힌 대목에 대해 선거법 위반과 위조 공문서 행사죄를 적용한 것이다. 대법원에서도 비슷한 형량이 확정되면 의원직은 당연히 상실된다.

중학교 마쳤지만 알고 보니 비인가 학교

그는 충남 서천군의 가난한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나 비인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보령군 주산면에 있는 주산재건중학교를 마쳤는데, 뒷날 폐교된 이 학교는 나중에 알고 보니 비인가 학교였다. 따라서 그의 공식 최종학력은 ‘초졸’로 낙착됐다.

농사를 짓다가 상경한 그는 공장 노동자, 밤무대 가수 생활 등을 거쳐 1980년부터 성남 성호시장 주변에서 과일 노점상, 목수 보조 따위의 막노동을 하게 된다. 그러던 그는 성남 주민교회 이해학 목사를 통해 사회 문제에 눈을 뜨면서 도시빈민 운동가로 변신한다. 1987년 6월항쟁 때는 고 제정구 의원과 함께 민주헌법쟁위국민운동본부에서 주요 직책을 맡는 등 성남 지역에선 꽤 이름 있는 사회운동가로 성장했다.

그때까지 그는 누가 학력을 물어볼 경우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무식한 놈이라고 굳이 고백하기가 쉽지 않더라”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경우에 따라선 “주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거나 고향인 주산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말을 했다. 따라서 가까운 지인들도 그가 주산고를 졸업한 것으로 알았다. 그는 “학력이 달리는 데 따른 콤플렉스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이루 말로 전하기 어렵다”는 말로 ‘우물우물 뭉개고’ 살아온 그의 경험을 압축했다. 그러나 노점상 일을 하면서 도시빈민운동에 종사하는 데는 굳이 학력이 문제될 일이 없었다.

문제가 시작된 것은 1991년 성남시 의원으로 출마하면서부터였다. 선관위에 후보자 등록을 할 때 학력란에 주산고 졸업으로 기재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고졸로 알던 터에 일부러 국졸이나 무학으로 밝힐 엄두가 안 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선관위 내부자료로만 보관되는 등록서류 외에 유권자에게 배포되는 홍보물에는 학력을 기재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학력을 속여 활용할 정도로 용감하진 않되, 기왕에 주위 사람들이 고졸로 알고 있었던 것은 ‘그냥 그대로 갔으면…’ 하는 줄타기 심리가 작용했을 법했다.

이어 그는 1995년, 1998년, 2002년 등 세 차례 경기도 의원으로 출마해 당선됐는데 그때도 똑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학력 문제를 처리했다. 선관위 등록서류에는 ‘주산고 졸업’, 유권자용 홍보물에는 ‘학력 기재 않음’ 방법으로 몇 차례의 관문을 더 넘은 것이다.

그러나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뜻하지 않은’ 사태가 벌어졌다. 똑같은 요령으로 선관위에 예비후보자 등록을 신청했는데, 이번에는 선관위가 개정 선거법에 따라 등록한 신상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공개한 것이다.

선거캠프에서도 분란 일어나

당내 경선 관문을 통과해 총선 후보자로 정식 등록할 때는 학력을 다시 독학으로 기재했다. 애초에 ‘무학’으로 적어냈더니, 선관위 직원이 ‘독학’으로 하는 게 낫겠다고 조언하기에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그런데 선관위 예비후보자 신상정보 공개에는 고졸로, 정식 후보자용 등록서류와 유권자용 홍보물에는 독학으로 나타난 ‘불일치’ 문제가 생겼다.

그의 선거캠프에서도 분란이 일어났다. 일부 참모들은 “도대체 진실이 뭐냐? 왜 무학으로 등록하려고 하느냐?”고 그를 다그쳤다. 이에 그는 “그냥 무학으로 가자”고 역시 ‘우물우물’했으며, 자신이 고졸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언젠가는 털어놓아야 한다고 늘 생각했지만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다”며 “그게 정말 한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그의 처남(38)은 주산고등학교로 달려가 다른 사람의 졸업증명서를 뗀 다음에 이름을 ‘이상락’으로 고쳐 위조 증명서를 만들어 그에게 건네기에 이르렀다. 그는 선거사무소 앞길에서 만난 처남에게 “왜 이런 짓을 하느냐”며 화를 버럭 내면서, 증명서 봉투를 일단 점퍼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에서 찢어버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4월7일 열린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그는 사회자로부터 “도의원 선거 때는 고졸 학력으로 기재했고, 이번에는 독학으로 돼 있는데 어떻게 된 거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순간 그는 당황해 “호적상 이름과 초등학교 재학 때 이름이 달랐기 때문”이라며 동문서답으로 넘기려 했다. 그러면서 주민등록등본 따위를 주머니에서 꺼내 제시하려던 게 주머니에 함께 넣어뒀던 문제의 위조 고교졸업 증명서가 튀어나왔다. 한층 당황해 주머니에 재빨리 도로 넣었는데 법리적으로는 이 대목이 ‘허위사실 공표’ 및 ‘위조 공문서 행사’ 죄가 되고 만 것이다.

이에 1심 재판부는 “10년이 넘는 지방의원 재직 중 선거구민들에게 학력을 속여왔던 점도 비난받아야 한다”며 징역 1년6개월의 중형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죄질이 나빠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한다”며 형량을 조금 줄였다.

그는 1심 선고 뒤 기자회견에서 “학력이 짧은 게 부끄러워 그만 작은 거짓말을 했다가 주워담지 못하고 점점 키우다가 제 삶을 압박하는 풀 수 없는 거대한 족쇄가 됐다…. 차마 고백할 용기가 없었다…. 정말로 잘못했다”며 반성의 뜻을 밝혔다.

학벌보다 실력으로 인정받는 사회를

앞으로 대법원이 그의 반성과 사죄에 무게를 둘지, 아니면 죄질이 나쁘다는 판단을 유지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그의 사법적 운명과 별개로, 차제에 그가 사회를 향해 던지고 싶다는 이야기에는 한번쯤 귀를 기울여도 좋을 것 같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학벌보다는 실력으로 경쟁하고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전 단계에선 공직 후보자 선출 과정에서 학력을 기재하고 싶은 사람은 하더라도 하기 싫은 사람은 의무적으로 기재하지 않아도 되는 쪽으로 선거법이 개정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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