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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스퀘어] 고쳐져라! 세운상가 수리수리협동조합

고장 난 아날로그 기계 고치는 세운상가 수리수리협동조합
등록 2020-10-13 21:10 수정 2020-10-14 08:33
미국 중고생활용품점에서 2.5달러에 산 오래된 라디오는 포근한 음색을 낸다. 특히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라디오섁’이 클래식 음악 방송 청취를 위한 에프엠 전용 라디오(FM Concertmaster)로 1968년 가을에 출시했다. 당시 미니멀리즘(단순한 요소로 최대 효과를 내려는 사고방식)을 반영한 디자인에 고성능 안테나와 스피커를 내장한 제품으로 호평받았다. 수집가들 사이에 인기 있는 희귀 물품으로, 출고 당시 가격이 69.95달러였다.

미국 중고생활용품점에서 2.5달러에 산 오래된 라디오는 포근한 음색을 낸다. 특히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라디오섁’이 클래식 음악 방송 청취를 위한 에프엠 전용 라디오(FM Concertmaster)로 1968년 가을에 출시했다. 당시 미니멀리즘(단순한 요소로 최대 효과를 내려는 사고방식)을 반영한 디자인에 고성능 안테나와 스피커를 내장한 제품으로 호평받았다. 수집가들 사이에 인기 있는 희귀 물품으로, 출고 당시 가격이 69.95달러였다.

한 해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스마트 기기 홍수 속에서도, 빛바랜 아날로그 기기의 매력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복고 취향이 유지될 수 있는 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십 년 전에 생산한 전자기기를 제대로 된 부품 없이도 고쳐내는 ‘수리 장인들’의 마법 덕분이다.

이정순(47·서울 광진구)씨는 요즘 매일 밤 귀와 눈이 호사스럽다. 남편이 세운상가 수리수리협동조합에 맡겨 고친 오래된 라디오 덕분이다. 이 라디오는 2011년 미국에 있을 때 중고생활용품점에서 2.5달러 주고 샀다. 중고상은 “전원이 들어오지 않아 고쳐 써야 한다”며 거저 주다시피 했다. 디자인이 맘에 들어, 못 고치면 장식용으로 쓸 요량으로 샀다. 비싼 인건비 탓에 미국에선 수리할 엄두를 못 냈다. 2012년 한국으로 가져와 전파사 여러 곳을 돌며 수리를 맡겼다. 그런데 “전원쯤이야… 간단하다”고 자신했던 수리기사들은 “너무 옛 제품이라 고칠 수 없다” “부품이 없네”라며 번번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올여름, 세운상가 수리수리협동조합 수리기사들이 생명을 불어넣었다. 5만원, 수리비도 착했다.

이민수(60·충북 충주)씨도 충주 큰형님 댁 구석에서 찾은 오래된 붐박스를 들고 세운상가를 찾았다. 대형 카세트라디오는 1980년대 해외 파견 노동자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한 큰형님의 귀국 선물이었다. 1980년 시판된 샤프 GF-9494는 당시 환율로 30만원 정도 하는 고가 물품인데, 특히 형수가 좋아했다. 거칠게 생긴 카세트라디오의 스피커 두 개에서 하루도 멈추지 않고 노래가 흘러나왔을 정도다. 동네 잔칫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했다. 여기저기 긁히고 깨진 세월의 흔적만큼 곳곳에 추억이 깃든 물건이지만, 작동되지 않아 먼지만 쌓이고 있었다.

옛 추억을 수리해주는 곳은 세운상가에 있는 수리수리협동조합이다. 서울 종로구 장사동 116-50번지. 세운상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건물로 한때 ‘못 고치는 물건이 없다’는 명성을 떨쳤던 곳이다. 2017년 쇠락한 세운상가를 되살리는 ‘다시·세운 프로젝트’의 하나로 상가의 수리 장인들이 함께 조합을 만들었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는 일본제 붐박스 샤프 GF-9494. 카세트테이프 레코더 주변에 여러 개의 스위치가 달렸고, 대형 스피커가 웅장한 소리를 낸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는 일본제 붐박스 샤프 GF-9494. 카세트테이프 레코더 주변에 여러 개의 스위치가 달렸고, 대형 스피커가 웅장한 소리를 낸다.


GF-9494 내부. 고무 롤러를 교체하고 여기저기 손을 봤다.

GF-9494 내부. 고무 롤러를 교체하고 여기저기 손을 봤다.


세운상가 장인의 손은 고장 난 추억을 살려내는 마법의 손 이다.

세운상가 장인의 손은 고장 난 추억을 살려내는 마법의 손 이다.


오래된 진공관. 트랜지스터나 집적회로(IC) 등의 반도체로 대체돼 요즘은 거의 쓰지 않는다.

오래된 진공관. 트랜지스터나 집적회로(IC) 등의 반도체로 대체돼 요즘은 거의 쓰지 않는다.


‘음악 자동판매기’ 주크박스(Jukebox). 다수의 레코드가 들어 있는 기계 안에 동전을 넣고 선곡하면 음악을 연주한다.

‘음악 자동판매기’ 주크박스(Jukebox). 다수의 레코드가 들어 있는 기계 안에 동전을 넣고 선곡하면 음악을 연주한다.


‘도넛판’이라 부르는 7인치 엘피판이 주크박스 안에 들어간다.

‘도넛판’이라 부르는 7인치 엘피판이 주크박스 안에 들어간다.


정음전자 변용규 사장이 독일 브라운사의 진공관 오디오를 살펴보고 있다. 간결한 디자인 때문에 찾는 사람이 많다.

정음전자 변용규 사장이 독일 브라운사의 진공관 오디오를 살펴보고 있다. 간결한 디자인 때문에 찾는 사람이 많다.


사진·글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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