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다가오면 시골 마을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대처로 나간 자식들이 손자·손녀를 데리고 찾아올 날을 손꼽으며 나이 든 부모님들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띤 강원도 평창 미탄 5일장과 전남 곡성 5일장, 그리고 전남 백아산 자락의 복조리 만드는 마을을 돌아봤다.
장에 나가 머리를 다듬고 파마할 기대에 부푼 할머니와 장터 빈대떡에 막걸리 한 사발이 그리운 할아버지는 콩 한 자루, 배추 몇 포기를 머리에 이고 장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설을 앞둔 평창의 미탄 5일장. 제사상에 올릴 생선이며 과일, 가래떡 등을 준비하는 마음이 바쁘기만 하다. 자식에게 좋은 것만 먹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은지 물건을 고르는 게 까다롭다. 방앗간에서 가래떡 나오길 기다리던 김용임(67) 할머니에게 산골에서 홀로 사는 게 외롭지 않으냐고 묻자 “한곳에 오래 살다 보니 바람소리 물소리 모두 친구 같다”며 웃는다. “경제가 어렵다니까 자식들 걱정이 되고, 평생 그렇지 뭐.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다들 어렵다는데.”
전남 화순으로 향하던 길에 들른 곡성 5일장. 이제는 그 아련한 설렘도 북적거리던 장터의 추억도 많이 변했다. 새벽안개를 열며 모여들던 장꾼들도 확성기를 단 트럭에 밀려 하나둘 사라지고, 장터에서 흥겹게 울려퍼지던 육자배기도 사라져가고 있다. 그래도 장터에서 만난 박남리(70) 할머니는 7남매에 손자까지 모두 모이는 명절 준비가 힘들지 않다며 방긋 웃는다.
섣달그믐날 밤 “복조리 사려~” 외침이 들리면 어머니는 조리 파는 학생을 불러 몇 개 사다가 현관문 위에 걸어놓기도 하고 밥을 지을 때 사용하기도 하셨다. 이제는 추억 속의 물건이 된 복조리를 예나 지금이나 묵묵히 만들며 전통을 이어가는 전남 화순 송단마을. “추운데 어여 들어오랑께.” 마을회관에 들어서니 조연순(72) 할머니가 바쁘게 놀리던 손을 멈추고 손님을 맞이한다. 아침을 먹고 이곳에 둘러앉아 하루 종일 복조리를 만들다 보면 어느덧 겨울의 짧은 해는 백아산 너머로 돌아선다.
“조각내기가 힘들제. 까딱하믄 빗나가고…. 처음에는 손가락 껍질도 벗겨지고, 고개도 수그리고만 있으니 고약하고, 옆구리도 결리고.” 열다섯 살에 시집와서 56년 동안 복조리를 만들어온 김맹순(73) 할머니다. 이렇게 만든 복조릿값은 한 개에 4천원. 산에 올라가 손수 조리대를 잘라 쪼개고 물에 불리는 수고까지 합치면 너무 싼값이다. “그래도 재밌제. 시골에 어디 돈 나올 디가 있능가. 돈 쓸랑께 재밌제. 맛있는 것도 사묵고, 손자 과자도 사주고…” 하시며 할머니들은 함박웃음을 짓는다. 손수 만든 복조리를 건네며 “사는 사람이 복을 받아야 파는 사람도 복을 받지”라던 할머니의 따뜻한 미소가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평창·곡성·화순=사진·글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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