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갔다. 가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천지다. 어떤 사람들에겐 쉬운 장보기지만, 지적장애인들에겐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지적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은 쉽게 시도하지 않으려 한다. 자원봉사자들과 선생님이 옆에서 도와주지만 예산에 맞게 장을 보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처음엔 에스컬레이터도 타지 않으려 했다. 마트에 온 사람들을 무서워했다. 그러나 몇 번 거듭되자 어느새 아이들은 장보는 것을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연필을 찾아보는 것도 즐겁고, 사람 가득한 곳에서 이리저리 쇼핑 카트를 모는 것도 즐겁다.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시절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다.
지적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은 방학이 즐겁지 않다. 워낙 손길이 많이 가서 육체적·정신적으로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은 물론, 사회생활까지 포기해야 한다. 처음부터 직장생활은 엄두도 못 냈지만 학기 중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조금 시간이 남았을 때 했던 아르바이트도 방학 중엔 더 이상 할 수 없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친구도 없이 하루 종일 집에만 방치돼 외롭고, 그나마 학기 중에 배웠던 것도 다 잊어버려 어렵게 익힌 사회적응력과 교우관계도 퇴행적으로 변하고 만다.
울산장애인학부모회(회장 김옥진)는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나섰다. 지난 2004년 장애아들의 교육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울산교육청에서 45일간 농성을 했던 학부모들은 그 투쟁 경험을 바탕으로 방학 중 ‘달팽이학교’를 운영했다. 벌써 만 3년째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초창기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후원자도 늘고 참가하는 민간 교육기관도 많아지면서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섰다. 프로그램도 체육·미술·놀이 등에서 사회적응력을 키우기 위한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
“아이나 부모나 방학 때마다 얽매어오던 커다란 굴레에서 해방된 느낌입니다. 이 학교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아이들도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어 무척 좋아해요.” 지적장애 아동을 둔 한 부모는 아침마다 학교 가는 것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만족스럽다고 했다.
방학이면 갇힌 세상에서 방치되는 아이들에게 달팽이학교는 세상을 향해 열린 문이다. 사람들의 눈에는 안 보일 정도로 미약한 달팽이의 전진, 더디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울산=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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