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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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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의 오묘함은 자연의 섭리”

12년째 전통 방식으로 된장 만드는 임숙재씨 “순리 거스르는 대량생산 제안 거절했어요”
등록 2009-01-10 11:01 수정 2020-05-03 04:25

“친정에 온 딸에게 푹 퍼주고 싶은 된장이죠.”
맨손으로 메주를 만들고 있던 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전북 진안군 부귀면에서 전통 방식으로 된장을 만들고 있는 임숙재(51)씨. 막걸리 만드는 주조장 운영을 그만두고 벌써 12년째 된장 만드는 일에 푹 빠져 있다.

눈 오는 날 임숙재씨가 장독 뚜껑을 덮고 있다.

눈 오는 날 임숙재씨가 장독 뚜껑을 덮고 있다.

“발효 음식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요. 습도와 온도와 시간이 맞아떨어질 때 만들어지는 장맛의 오묘함.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재미를 모르죠.” 술도 발효 음식이 아니냐는 질문에 명쾌하게 결론을 내린다. “건강에 안 좋잖아요. 그게 걸려서 접었어요. 이익은 제법 났는데….”

많던 수익이 갑자기 없어졌지만 임씨는 후회하지 않았다. 좋은 음식을 만들어 아는 사람과 나눠먹으며 살아야지, 하는 심정으로 장을 만들었다. 처음엔 가족과 친지, 지인들에게만 건넸지만 곧바로 유명세를 타서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지자체나 대형 유통센터에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하지만 임씨는 자신이 직접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양만큼만 만든다. 자연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11월에 메주를 쑤고 두어 달 건조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자연의 섭리죠. 사람들이 그걸 어기고 욕심을 부리니까 자꾸 인공적으로 하려 하고 첨가물 넣고 그런 거지. 욕심을 버리면 자연이 다 만들어주는데.”

임씨가 이른 새벽부터 삶은 콩을 건지고 있다.

임씨가 이른 새벽부터 삶은 콩을 건지고 있다.

대신 임씨는 훨씬 더 부지런해졌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들에게 맛보게 하려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콩을 삶는다. 해마다 11월부터 두어 달간은 메주를 쑤고 장을 만들기 위해 밤잠도 제대로 못 잔다. 돈을 생각하면 못할 짓이란다. “전 자연의 순리대로 만들고 싶은데 주위에선 계속 대량생산하자고 유혹합니다. 그럴 때마다 전 거절해요. 순리대로 사는 게 얼마나 편한데…. 어거지는 불편한 거예요.”

그의 정성이 만들고 자연이 완성해주는 메주 2천여 개가 올봄 장 담그기를 기다리며 건조대 위에서 잘 말라가고 있었다.

삶은 콩을 찧고 있는 임씨. 모든 작업은 직접 손으로 한다.

삶은 콩을 찧고 있는 임씨. 모든 작업은 직접 손으로 한다.

메주 하나를 뚝딱 만들면서 임씨는 “쉽죠?”라고 말한다.

메주 하나를 뚝딱 만들면서 임씨는 “쉽죠?”라고 말한다.

만들어진 메주는 가끔 뒤집어준다.

만들어진 메주는 가끔 뒤집어준다.

콩 삶는 구수한 냄새가 집 안에 가득하다.

콩 삶는 구수한 냄새가 집 안에 가득하다.

잠깐 쉬는 시간에 차를 마시고 창밖을 보며 자연을 즐기는 것이 이곳 삶의 즐거움이다.

잠깐 쉬는 시간에 차를 마시고 창밖을 보며 자연을 즐기는 것이 이곳 삶의 즐거움이다.

진안=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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