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외포리에서 출발한 ‘2005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전쟁으로 갈라진 강화지역-황해도 생활권의 적막이 구슬프다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글 곽동운 10기 독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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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7일 오전 9시, 강화 외포리 항구에서 뱃고동이 힘차게 울렸다. 그동안 통행할 수 없었던 한강 하구를 향해 평화의 배는 씩씩하게 물살을 헤치고 나아갔다. 얼마 만인가. 52년 동안 갈 수 없었던 한강 하구. 더 정확히는 한강과 임진강의 하구. 남북 분단으로 반세기가 넘는 동안 가로막혔던 물길을 평화의 배는 갈매기를 벗 삼아 유유히 흘러갔다.
지금은 석모도행 전용 항구가 됐지만, 옛날 외포리에서는 서울 마포나루로 떠나는 배들도 있었다. 수산물과 각종 특산물을 가득 싣고 한강 하구를 거슬러 올라갔던 것이다. 인근 교동도에서는 북한 지역인 황해도 연백으로 장을 보러 다니곤 했다. 생활권으로 묶일 만큼 강화 일대와 황해도는 가까웠다.
전쟁은 물길까지 갈라놓았다. 52년 전 조인된 정전협정에서는 민간 선박의 규제가 없었음에도 북방한계선(NLL)과 어로 한계선이 ‘관습헌법’처럼 작동해 이 지역은 고깃배 한척 없는 적막한 곳이 되었다. 돈이 있어도 그곳은 못 갔다. 배가 있어도 그곳은 갈 수 없었다. 러시아도 가고, 달나라도 가는데.
평화의 배 출항지가 외포리항이어서 더욱 뜻깊었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로 인해 강화 지역에서만 1천명 정도가 사망했다. 외포리도 학살지 중 하나였다. 비무장 민간인들이 전쟁의 제물이 되어 총과 칼을 맞아야 했던 잔혹한 역사를 지닌 곳이다. 진혼무의 가락이 더욱더 구슬프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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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했던 항로가 단축되어 어로한계선 800m 북상을 끝으로 뱃머리를 돌려야 했던 평화의 배에서는 각종 문화공연과 리영희 교수, 도법 스님, 김낙중 선생의 강연이 이어졌다. 예정 항로를 다 채우지 못해 무척 아쉬웠지만 평화의 배 띄우기는 출항만으로도 충분한 의의가 있었다. 꽃게철만 되면 남북 경비정의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던 이곳에 새로운 물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 평화의 기운이 서해 건너 중국 베이징까지 전달되면 얼마나 좋을까. 52주년을 맞은 7·27 휴전 협정일을 떠올리며 4차 6자회담이 잘되길 기원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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