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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에 코 꿰인 ‘삼포세대’

당국 잇단 규제 강화 움직임에 ‘단속 반대’ 청원 봇물…

“취업난 젊은층에게 가상화폐는 일종의 탈출구”
등록 2018-01-16 17:24 수정 2020-05-03 04:28
정부가 ‘가상화폐거래소 폐지 검토’라는 초강수 대책을 밝히며 연일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가상화폐 열풍은 좀처럼 식지 않는다. 1월8일 국내 최대 가상화폐거래소인 빗썸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가상화폐거래소 폐지 검토’라는 초강수 대책을 밝히며 연일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가상화폐 열풍은 좀처럼 식지 않는다. 1월8일 국내 최대 가상화폐거래소인 빗썸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주식시장의 과열 징후를 나타내는 말 가운데 ‘구두닦이 소년 신호’가 있다. 미국 대공황 때 월가의 한 투자자가 겪은 에피소드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는 자신의 구두를 닦던 소년이 주식 종목을 추천하는 모습을 보고 갖고 있던 주식을 모두 처분했다. 구두닦이 소년까지 주식에 관심을 가질 정도면 증시가 과열될 대로 과열된 것이고, 따라서 곧 폭락 장세가 오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그는 곧이어 닥친 주식 대폭락에 따른 손실을 피할 수 있었다.

지금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 구두닦이 소년이 있다면 손님에게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얘기를 꺼낼지 모른다. 정부의 전방위적인 압박에도 가상화폐 광풍은 좀처럼 잦아들 기세가 아니다. 지난해 말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 금지를 포함한 고강도 규제 엄포를 내놨지만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의 가격은 오히려 더 올랐다. 가상화폐 거래 전면 금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투자자의 투기 수요가 폭발한 탓이다. 대학생은 물론 10대 청소년들까지 가상화폐를 입에 올리는 ‘구두닦이 소년 신호’는 이미 켜졌지만 폭락 징후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정부 단속 의지 비웃는 시장

새해에도 가상화폐 광풍이 이어지자 정부가 강력한 규제 카드를 꺼냈다. 정부는 전면적 거래 금지에 부담을 느낀 듯 일단 가상화폐거래소를 겨냥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1월8일 가상화폐거래소의 시세 조종 의혹 등 각종 범죄행위를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범죄에 연루된 거래소는 가차 없이 폐지하겠다고 경고했다. 국세청도 10일 국내 가상화폐거래소 1위 업체인 빗썸과 3위 코인원의 세무조사를 시작했고, 경찰은 코인원을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한다.

법무부는 한발 더 나아갔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거래소를 통한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는 “가상화폐거래소 폐지까지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강력한 단속 의지를 밝혔다.

가상화폐거래소가 타깃이 된 이유는 거래의 불투명성 때문이다. 가상화폐는 주식처럼 거래가 이뤄지지만, 가상화폐거래소는 증권거래소(한국거래소)와 달리 투자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가상화폐거래소가 실제 거래량만큼 가상화폐를 보유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 제기될 정도다. 증권거래소는 회사가 상장하면 해당 주식을 한국예탁결제원에 맡기도록 해 실물(주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가상화폐는 예탁원 같은 기관이 없다. 실물을 확인할 수 없으니 실제 거래량만큼 가상화폐가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가상화폐의 양은 한정돼 있는데 거래는 엄청난 규모로 이뤄지고 있다. 거래소의 가상화폐 잔고를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 거래소가 투자자 소유의 가상화폐를 동의 없이 몰래 거래해도 전혀 알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증권 거래는 사업보고서 등을 통해 주식 관련 정보를 공시하도록 하지만, 가상화폐 거래엔 이런 공시 제도가 없다. 이로 인한 ‘정보의 비대칭성’은 투자자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잇따른 서버 다운 ‘자작극’ 의혹

가상화폐거래소의 해킹이나 서버 다운 사고를 두고 ‘자작극’ 의혹도 제기된다. 지난해 4월과 12월 해킹을 당해 수백억원 손해를 입은 유빗이 대표적이다. 유빗은 외부 해커의 소행이라고 밝혔지만 투자자들은 유빗 경영진의 자작극을 의심한다. 투자자의 가상화폐를 노린 내부자 소행이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유빗 쪽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최근 유빗 경영진이 해킹 사고 당시 파산 신청을 하기로 한 방침을 바꿔 매각을 추진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경영진이 배상 책임은 최소화하고 이익은 최대한 건지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해 11월엔 빗썸 서버가 한때 다운됐다. 공교롭게도 가상화폐의 시세 하락이 겹쳐 거래를 하지 못한 회원들이 손실을 입었다며 빗썸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들은 빗썸이 고의로 서버를 다운시킨 의혹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빗썸 쪽은 의 질의에 “고의 서버 다운은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외부 컨설팅 업체를 통해 트래픽 초과로 인한 서버 다운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비트코인 거래소들의 해명에도 금융 당국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1월8일 기자회견에서 “가상화폐 취급업소(거래소)에서 어떤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지 어느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위장 사고 가능성 등에 대해서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가상화폐거래소의 자작극 논란은 이미 외국에서 불거진 바 있다. 한때 세계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였던 일본의 마운트곡스가 2014년 해킹으로 파산한 사건이다. 마크 카펠레스 최고경영자는 당시 “해킹으로 고객이 맡긴 75만 비트코인 등 총 85만 비트코인을 도난당했다”며 일본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하지만 일본 경시청은 카펠레스가 거래 시스템을 조작해 고객이 맡긴 돈을 개인 계좌로 옮긴 사실 등을 밝혀내 이듬해 8월 그를 구속했다.

정부의 가상화폐거래소에 대한 고강도 규제가 투기 수요를 잠재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상화폐 광풍은 단순히 금융상품 투자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가상화폐 투자에 20~30대 젊은층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취업난 등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가상화폐는 일종의 탈출구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규제 반대 외치는 국민청원

실제 법무부가 가상화폐거래소 금지 법안 추진을 발표한 1월11일, 청와대 누리집에는 가상화폐 규제를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쏟아졌다. 게시판에는 “가상화폐로 인해 여태껏 대한민국에서 가져보지 못한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었다” “정부는 단 한 번이라도 국민에게 행복한 꿈을 꾸게 해본 적이 있나” 등의 글이 올라왔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가상화폐를 건전한 투자 수단으로 연착륙시키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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