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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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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없으니 벌벌 않는 막무가내 대기업

대기업 노동자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 고용형태 공시제 도입 2년째 됐지만 인센티브·벌칙 없어 실효성 떨어져
등록 2015-07-11 09:17 수정 2020-05-03 04:28

대기업(300명 이상 사업장) 노동자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4명 가운데 2명은 파견, 용역, 사내 하청 등 노동조건이 더 열악한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6월30일 공시한 대기업 3233곳의 고용형태를 보면, 전체 노동자 459만3천 명 가운데 39.5%인 181만6천 명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도 형태가 여러 가지다. 대기업들은 비정규직을 직접고용하는 대신 파견업체나 용역업체에 특정한 업무를 맡기는 식으로 간접고용하기를 선호한다. 고용형태 공시제에서 ‘소속 외 노동자’로 분류된 이들이다.

이같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20%(91만8천 명)나 된다. 지난해보다 0.1%포인트 늘어났다. 그다음으로 많은 비정규직이 대기업이 1~2년씩 직접 고용해 쓰는 기간제 노동자다. 이들이 18.3%(84만2천 명)다. 기간제 노동자 역시 지난해보다 1.4%포인트 늘었다. 1.2%(5만6천 명)로 비중은 미미하지만, 계약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단시간 노동자들도 있다(표4 참조). 단시간 노동자는 같은 업무를 하는 정규직의 노동시간(주 40시간)보다 짧은 시간 동안 일하는 노동자를 말한다.

고용형태 공시제는 지난해 도입됐다. 그동안 비정규직 규모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등을 통해 집계돼왔다. 이 조사로는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규모 추산이 어려웠다. 고용노동부는 통계청 조사를 보완하는 한편, 기업들이 스스로 고용형태를 공개함으로써 자율적으로 비정규직 고용을 줄여나가도록 유도한다는 취지로 고용형태 공시제를 도입했다.

공시에도 비정규직 비율은 늘어나

그러나 제도 시행 2년차인 올해, 대기업들이 고용한 비정규직 비율은 전년보다 오히려 늘어났다. 비정규직 고용을 줄인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거나 반대로 늘린 기업을 벌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특히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많이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5천 명 이상 사업장의 소속 외 노동자 비율은 27.3%로 전체 평균(20%)을 웃돈다(표2 참조). 전년보다 1.3%포인트 늘어났다. 건설(44.6%), 제조(25%), 운수(21.8%) 등의 업종에서 특히 간접고용 노동자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비정규직을 가장 많이 고용한 기업을 순서대로 1~10위를 꼽아봤더니, 삼성·현대·롯데 등 국내를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대부분이었다(표1-1 참조). 국내 조선업체 1위인 현대중공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4만6571명이다. 정규직(2만5천 명)보다 비정규직이 많다. 조선업체인 대우조선해양, 현대삼호중공업도 수만 명의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다. 삼성전자 비정규직도 2만8250명으로 정규직(10만명)의 30% 규모였다.

매출액 상위 10대 기업들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얼마큼 쓰고 있는지를 따져봤더니 삼성물산(전체 노동자의 64.7%)이 1위, 현대중공업(62.4%)이 2위를 차지했다(표1-2 참조).

공시율은 99.8%다. 공시 대상 사업장 3240곳 중 7곳만 빼고 모두 워크넷에 자사의 고용형태를 입력했다. 그러나 자율 공시라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재하더라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자율 개선? 제도적 강제 필요해”

노동계는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논평을 내어 “자율 개선 가이드라인에 맡기겠다는 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비정상적인 고용형태를 바로잡을 제도적 강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도 “중소기업에서 주로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현재 300명 이상으로 돼 있는 공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또 고용형태 개선 사업장에는 인센티브를 주고 허위·부실 공시 사업장에는 벌칙 조항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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