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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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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배 채우려 가계부채 폭탄 외면하는 ‘막장’ MB 정부

등록 2012-08-01 17:01 수정 2020-05-03 04:26

‘끝장 토론’이 아니라 ‘막장 토론’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월21일 주재한 ‘내수활성화 민·관 합동 집중토론회’를 두고 여기저기서 나오는 힐난이다. 정부가 내수를 살릴 아이디어를 구한다고 기업들을 불러놓았는데, 정작 기업들은 각종 민원만 쏟아냈다. 정부는 군 말 없이 다 들어줬다. 내수 활성화를 빙자한 정부의 대기업 민원 들어주기다. 인천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 카지노 허가, 대형병원 내 호텔 신축, 회원제 골프장의 개별소비세 감면, 미분양 아파트·오피스텔 관광 숙박시설로 전환이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건설업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다. 가계부채 폭탄의 보호장치인 DTI 규제가 내수활성화 대안으로 둔갑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셈이다.

정부가 각종 부동산 규제를 풀고 있지만 주택 거래는 살아나지 않는다. 썰렁한 부동산중개사무소 앞 모습.

정부가 각종 부동산 규제를 풀고 있지만 주택 거래는 살아나지 않는다. 썰렁한 부동산중개사무소 앞 모습.

은퇴 자산가·젊은 직장인 주머니 노려

DTI는 ‘규제 완화의 화신’인 이명박 정부조차 쉽게 풀지 못하던 부동산 규제다. 임기 내 진행된 부동산 규제 완화 ‘광풍’에도 DTI 규제는 살아남았다. 부동산 규제이자 몇 안 되는 가계부채 대책인 탓이다. DTI 규제는 대출자의 소득에 비례해 대출한도를 제한하는 제도다. 빚의 규모를 통제해 부동산 시장의 과열과 가계 부실을 막으려고 참여정부 시기인 2005년 8월 도입됐다. 현재는 연간 원리금 한도가 서울지역은 대출자 소득의 50%, 인천·경기는 60%로 정해져 있다. 예컨대 연봉이 6천만원인 대출자가 서울지역에 아파트를 사려고 한다면, 매년 갚아야 하는 원리금이 3천만원을 넘지 않는 수준으로 총 대출한도가 정해진다. 연봉의 절반이 고스란히 빚 갚는 데 들어가지만, 그나마 가계의 파산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이 제도를 도입하기 전엔 버는 돈보다 많은 빚을 끌어다 무리하게 부동산에 몰빵하는 투기가 가능했다. 정부도 DTI 규제가 가계부채 급증을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월13일 국내외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 “DTI를 풀었는데도 부동산 경기가 제자리에 있고 가계부채만 늘리는 게 아닌가 싶어 못한다”고 말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같은 이유로 여러 차례 규제 완화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정부가 이런 DTI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건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대처를 포기하겠다는 의미다. 빚을 더 내도 좋으니 일단 집을 사라는 메시지다. 국내외 경기침체의 골이 깊은 응급상황에선 부동산 거래 활성화가 가계부채 부실보다 더 중요하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거센데 정부도 할 말이 있단다. 마구잡이로 대출을 늘려주는 게 아니라 빚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 계층을 8월 말까지 선별해내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고려 중인 1순위 대상은 은퇴 자산가다. 정부가 나서서 집을 보유하고 있는 고령 자산가들에게 다주택자가 되라고 부추기는 꼴이다. 고정적인 소득이 없는 이들 연령층은 웬만한 자산가가 아니고서는 언제든 빚이 부실화될 수 있다. ‘가계부채 동향 및 서민금융지원 방안’을 보면, 50대의 연체율은 1.42%로 다른 연령에 비해 가장 높았다. 60대 이상(1.16%)도 20대(1.17%)보단 낮았지만 30대(0.6%)나 40대(1.1%)보다는 높았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20~30대도 규제 완화 대상으로 오르내린다. 당장의 소득은 적지만 앞으로 꾸준히 돈을 벌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빚을 더 내도 괜찮다는 논리다. 그러나 20~30대는 지금도 학자금대출 상환과 주택자금 마련 등으로 빚을 많이 진 데다, 나이가 들어가며 빚을 더 내야 할 세대다. 또 미래 소득을 담보할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려내기도 어렵다. 요컨대 정부의 주장과 달리, 은퇴한 자산가나 젊은 직장인은 빚을 떠넘길 적당한 ‘물주’가 아니다. 부동산컨설팅업체인 부동산서브의 정태희 컨설팅팀장은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은퇴한 자산가들이야 당연히 집은 있으니까 투자할 목적으로 사라는 거다. 그런데 요즘엔 웬만한 자산가가 아니면 다 집을 줄이는 판이다. 젊은 직장인은 지금도 대출이자가 감당 안 되기 때문에 빚을 더 얻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고약한 MB식 부동산 정책

DTI 규제 완화는 딱 MB 스타일이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경기가 꺼지는 고비마다 부동산 시장을 활용했다.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돼야 건설업계에 돈이 돌아 경기가 살아난 듯 보이고, 집 보유자들은 계속 부자인 것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부동산 거품이 꺼져갔지만,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으로 돈이 계속 흘러들게 안간힘을 썼다. 유일한 방법은 규제 완화였다. 스무 차례 넘는 부동산 대책을 통해 거래 비용은 낮춰주고, 투자수익은 높여줬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는 사실상 무력화시켰고, 투기과열 지역도 차례로 해제했다. 재건축·재개발 기준은 완화했고, 아파트 전매제한도 풀어줬다.

이 과정에서 가계가 빚을 내 집을 사고, 부족한 생활비는 다른 빚으로 감당해야 했다.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가계부채는 MB 집권 직전인 2007년 말 665조원에서 지난 말 912조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부동산 시장에 돈이 부족하면 공기업들을 활용했다. 4대강에 수자원공사가, 보금자리주택사업에 토지주택공사(LH)가 동원됐다.

특히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에는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할 분위기다. DTI 규제 완화를 내놓기 이전인 지난 5월 ‘5·10 대책’을 통해 마지막 남은 규제 대못들을 모조리 뽑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민영주택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 폐지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중지를 입법화하기로 지난 7월 새누리당과 협의를 마쳤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는 새누리당이 반대하고 있지만, 계속 추진하겠다며 일단 국무회의를 통과시킨 상태다. 모두 부동산 거품을 유지시켜 건설사와 부동산 부자들이 계속 돈을 벌도록 도와주는 대책이다. 서민의 삶은 정부의 안중에 없다.

앞서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거래를 활성화하는 데 모두 실패했듯, 이번 규제 완화들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부양 대책은 투자자나 실수요자들의 욕망에 뒷받침돼야 성공한다. 빚을 내서 투자해도 수익이 나겠다는 확신이 서야 집을 산다. 그러나 시장에서 작년 하반기부터 이런 기대는 완전히 사라졌다.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부동산 가격 하락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해 거래가 뚝 끊겼다. 서울지역 아파트 거래량은 상반기 기준으로 2008년 4만6873건에서 올해 1만8862건으로 쪼그라들었다. 반토막도 안 된다. 가격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강남 불패신화의 상징인 대치동 은마아파트 101.7㎡(공급 면적)는 최고점이었던 2006년 11월 11억6천만원에서 현재 8억원대로 내려앉았다. 투자자건 실수요자건, 부동산 가격이 상승·반전할 것이란 신호가 있기 전에는 주머니에 돈을 쌓아놓았더라도 집을 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이 지경에서 정부가 내놓은 조처들이 “고약하다”고 비판했다. “부동산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 집값이 떨어질 거다. 정책 하나로 반전시킬 상황이 아니다. 실물 약화로 소득마저 줄어드는 이때에 과도하게 돈을 빌려서 사라고 하는 건 무책임하다. 정부가 국민의 금융생활을 보호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위태롭게 몰고 간다.”

이 규제 완화들은 부동산 거래도 활성화시키지 못하고 시장만 더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미 부동산은 구조적인 침체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정부가 현실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가계부채 1천조원을 쌓아놓고 부동산 거품을 아무런 충격 없이 뺄 수는 없다. 부동산 거품을 냉정하게, 점진적으로 빼야 한다. 지금처럼 자기 임기 안에 별 탈 없이 임기응변식으로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부자나 건설업계를 살리려고 부동산 활성화를 하다 보면 결국 하우스푸어의 고통만 가중되고, 서민이 다 죽는다.”(선대인 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 소장)

922호 한겨레21 경제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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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혜자는 건설사와 은행뿐

이번에도 부동산 규제 완화의 최대 수혜자는 건설업계다. 이들은 마지막 남은 규제들을 모두 풀어달라고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미분양 아파트가 전국에 6만2천 가구나 쌓여 있는 데다, 최근 주택 거래량도 1년 전보다 30%나 줄어 업계 전체가 고사 위기라는 이유에서다. 물론 건설업체의 과도한 욕심으로 초과공급이 이뤄져 미분양 대란과 아파트 가격 하락이 빚어졌다는 원인 분석은 쏙 뺀다.

건설업계는 관련 기관들을 동원해 정부가 규제를 완화할 수 있게 논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왔다. 그중에서도 DTI 규제 완화를 위한 노력은 눈물겹다. 한국주택협회는 정부의 ‘5·10 대책’ 발표를 앞둔 지난 4월 ‘DTI 폐지 시 기대효과’라는 보고서를 내 “DTI를 폐지하게 되면 실수요자의 주택구매 심리를 촉진하고 주택 거래를 활성화시켜 시장 정상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직전엔 주택산업연구원이 ‘DTI 규제 타당성 검토’ 보고서에서 “DTI 규제가 가계대출을 억제하는 효과가 미미하다”는 근거가 희박한 주장을 펼쳤다. 그 결과로 돌아온 정부의 ‘DTI 규제 부분 완화’ 방침이 건설업계의 목표에는 못 미치지만, 이들은 언젠가 완전 폐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늘 건설사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주택을 주로 구매하는 연령대가 30~40대이기 때문에 부분 완화는 별 효과가 없다”며 “완전 폐지가 돼야 건설업계도 숨통을 좀 트일 수 있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정부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도 부동산 규제 완화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DTI 대출한도가 늘어나면, 은행에는 신규 대출 고객이 생기기 때문이다. 경기가 둔화돼 은행들도 대출 장사를 할 데가 많지 않다. 한 대형은행의 여신 담당자의 말에서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가 읽힌다. “DTI 규제가 실수요자들을 중심으로 완화되면 부동산 거래도 활성화되고, 은행에도 도움이 된다. 은행 전반적으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견해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국민 주머니를 털어 기업들 배를 불려주는 일을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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