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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 형제 싸움에 비자금 문제 다시 터지나

창업주 장남 이맹희씨가 이건희 회장 상대로 낸 주식 반환 소송, 삼성 지배구조 흔들 수 있어…삼성 관계자 “비자금 문제 또 나오나” 우려, 경제개혁연대 “이병철 회장 숨진 뒤에 는 주식은 상속과 별개의 차명주식” 주장
등록 2012-02-23 06:59 수정 2020-05-02 19:26

형제간 재산 다툼일까? 장물 싸움일까?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씨가 이건희 삼성 회장을 상대로 삼성생명 등의 차명주식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맹희씨는 지난 2월12일 서울중앙지법에 삼성생명 등의 차명주식에 대한 상속권을 주장하며 7천억원대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를 두고 형제간 재산 다툼이라는 시각이 많다. 이건희 회장이 상속재산 가운데 일부를 숨겼다가 나중에 실명 전환을 했고, 최근에야 그 사실을 알게 돼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는 게 이맹희씨 쪽 주장이다.
이씨가 소유권을 주장한 상속재산은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에서 확정된 것이다. 삼성 특검은 4조원이 넘는 차명재산을 삼성 주장대로 상속재산이라고 인정했다. 당시 이에 대해 불법 비자금을 삼성 재산으로 인정해 ‘도둑에게 장물을 돌려줬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맹희씨의 소송에 대해서도 ‘장물 싸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소송은 왜?

이맹희씨는 한때 삼성그룹의 후계자였다.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맹희씨는 6년간 그룹 경영을 맡았다고 하지만 이병철 회장은 6개월뿐이라고 밝혔다.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인 에서 “장남 맹희에게 그룹 일부 경영을 맡겨보았다. 그러나 6개월도 채 못 돼 맡겼던 기업체는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고 적었다. 그리고 다시 후계자에 이건희 회장이 지목됐다.

“아버지가 삼성의 차기 경영자로 건희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처음 발표한 것은 1976년 9월 중순경이었다. (중략) 그 자리에서 아버지는 후계 구도에 대해서 처음으로 언급했다. ‘앞으로 삼성은 건희가 이끌어가도록 하겠다.’”

동생이 후계자를 거쳐 삼성 회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형은 밀려난 뒤 유랑생활을 했다. 수십 년간 국내는 물론 몽골, 중국 등 해외에서 삼성과 관련된 직책은 하나도 없이 지내왔다. 그런 그가 갑자기 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을 보면 이맹희씨가 차명주식으로 관리된 상속재산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6월께다. 삼성 쪽으로부터 ‘상속재산 분할 관련 소명’이라는 문서가 CJ 쪽에 전달되면서다. 문서는 ‘선대 회장께서 삼성그룹 내 회사들의 주식을 실명주식과 차명주식을 포함하여 모두 각 상속인에게 분할하여주셨다. (중략) 모든 상속인들은 각자가 분할받은 재산 이외에 다른 상속인의 재산에 대하여는 어떠한 권리나 이의가 있을 수 없으며, 더더욱 특정 상속인이 차명재산을 국세청에 신고한 후 실명 전환하는 시점에서 다른 상속인들이 자신의 상속 지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이맹희씨 쪽은 “차명재산에 대해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에 문서에 서명 날인을 해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고 이병철 회장은 숨지기 전 구두로 재산 분배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소송을 고려하면, 최근 불거진 차명재산은 그때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운명 전에 아버지는 인희 누나, 누이동생 명희, 동생 건희, 그리고 내 아들 재현이 등 다섯 명을 모아두고 그 자리에서 구두로 유언을 하고 건희에게 정식으로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주었다. 이 자리에서는 건희에게 삼성을 물려준다는 내용 이외에 삼성의 주식을 형제간에 나누는 방식에 대한 아버지의 지시도 있었다.”

소장을 보면 삼성 쪽의 ‘상속재산 분할 관련 소명’ 요구가 차명재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고,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2008년 삼성 특검 결과가 발표된 순간 소송은 예정된 것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 특검 때 삼성은 차명재산을 상속재산으로 인정받아 비자금 관련 처벌은 물론 소멸시효 만료로 상속세도 면제받을 수 있었다”며 “동시에 새 상속재산이 나타나 형제간 재산 분쟁 소지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해부터 이 재산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의 형제자매 가운데 한 명이 소송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건희 회장이 2008년 4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마련된 삼성 비자금을 조사하는 조준웅 특검 사무실에 조사를 받으려고 들어서고 있다. 이때 밝혀진 차명재산을 특검에서 상속재산으로 인정해,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씨가 제기한 소송의 원인이 됐다. <한겨레> 이종근

이건희 회장이 2008년 4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마련된 삼성 비자금을 조사하는 조준웅 특검 사무실에 조사를 받으려고 들어서고 있다. 이때 밝혀진 차명재산을 특검에서 상속재산으로 인정해,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씨가 제기한 소송의 원인이 됐다. <한겨레> 이종근



소송은 어떻게?

이맹희씨가 요구하는 상속재산은 삼성 특검 때 드러난 차명재산 중 일부다. 특검 당시 삼성 쪽은 초기 차명재산이 임원들의 개인 재산이라고 주장하다, 수사가 진행되자 이건희 회장이 선대 회장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특검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 규모는 4조5373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주식이 삼성생명 2조3119억원(당시 주식 수 324만4800주를 시가 71만2500원으로 평가)을 비롯해 4조1009억원에 달했다.

이맹희씨는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생명 차명주식 가운데 민법상 상속분(189분의 48·약 25.4%)인 824만여 주(액면분할 전 82만4천여 주)를 요구했다. 2월14일 기준 7169억원에 이른다. 아울러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전자 주식 20주와 1억원을, 삼성에버랜드에는 삼성생명 주식 100주와 1억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향후 삼성전자 차명주식 등을 추가로 청구할 가능성도 있어 청구액은 수조원에 이를 수 있다.

엄청난 재산을 두고 벌써부터 그 결과 예측이 나온다. 삼성 쪽은 말을 아끼면서도 “문제 될 게 없다”는 태도다. 반면에 이맹희씨 쪽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길 수 없는 소송을 제기했겠느냐”며 자신 있어 했다.

만약 이맹희씨가 승소한다면 다른 형제자매가 추가로 소송을 걸 수 있어 이건희 회장의 자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또 주식을 돌려주는 과정에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보유지분이 줄어들면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가 된 금융회사는 금융업을 영위하지 않는 회사의 지분을 가질 수 없다는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삼성생명은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1062만여 주)을 매각해야 한다. 현재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가 끊어질 수 있는 셈이다.

반대로 이맹희씨가 패소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이맹희씨를 비롯한 형제들이 차명재산의 존재를 이미 알고 이건희 회장이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실명 전환하도록 한다는 데 합의했다면 증여세 문제가 나올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의 형제들이 상속재산을 이건희 회장 이름으로 다시 차명 전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실소유자가 공동상속인인 차명주식을 이건희 회장이라는 새로운 차명으로 전환한 것이므로, 이건희 회장이 납부해야 할 증여세액은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싱겁게 취하할까 끝까지 갈까

하지만 이런 예측이 틀릴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소송이 커지거나 삼성 지배구조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삼성 쪽은 “한솔그룹(이병철 회장의 장녀 이인희씨가 고문) 등 일부 상속인들은 이미 삼성 쪽이 요구한 상속재산 인정 문서에 서명날인을 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지배구조에 대해서도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이맹희씨가 승소하더라도 이건희 회장이 사재를 털어 삼성생명 주식을 사서 되갚으면 되고, 설사 현재 소유 주식을 돌려줘 (이건희 회장의) 지분이 낮아지더라도 에버랜드의 삼성생명 지분을 낮춰 금융지주회사법 적용을 피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증여세 역시 부과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이다. 한 세무 관계자는 “증여세가 발생하려면 형제들이 이건희 회장에게 재산을 맡긴다는 의사를 전달했음이 밝혀져야 하는데 이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온갖 시나리오가 나오는 상황에서 양쪽 간 화해로 사태가 싱겁게 끝날 가능성도 있다. 우선 이맹희씨의 아들 재현씨가 회장으로 있는 CJ 쪽이 소송 취하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CJ는 “개인 간 다툼”이라며 선을 그으면서도 “범삼성가의 갈등으로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소송을 취하하도록 설득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솔그룹과 신세계 쪽도 “소송에 참여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한 법조인은 “서로에게 부담이 되는 소송인 만큼 조정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끝까지 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맹희씨 쪽은 “인지대 25억원을 모두 납부했고 소송은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 쪽도 “인지대를 모두 납부하는 것을 보면 소송 의지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송을 취하하더라도 인지대는 절반밖에 돌려받지 못한다.



비자금 다시 불거지나?

삼성은 이번 소송을 두고 걱정거리가 또 하나 있다. 2008년 삼성 특검으로 일단락된 비자금 이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삼성 관계자는 “당시 정리된 비자금 의혹이 다시 불거질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며 “특히 재벌 개혁 문제가 최근 이슈가 된 상황에서 그 문제가 또 나오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경제개혁연대는 2월15일 ‘삼성의 차명주식 문제, 아직 끝나지 않아’라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했다. 논평에서는 “삼성 특검 수사 결과 또는 이맹희씨의 주장과는 달리, 삼성생명의 차명주식 총계 978만1200주 중에서 엄밀한 의미의 이병철 선대 회장 상속재산은 491만4천 주뿐이고, 나머지 486만7200주는 상속과는 무관한 별개의 차명주식이다”라고 지적했다.

2008년 특검 수사 발표 이후에도 밝혔지만, 그 근거는 뚜렷하다. 삼성생명 주식은 두 차례에 걸쳐 실명 전환됐다. 1998년 644만2800주, 2008년 삼성 특검 이후 324만4800주다. 2006년 삼성생명공익재단으로 이전된 고 이종기 회장(이병철 회장이 사위) 명의의 주식 9만3600주까지 합치면 총 978만1200주(2010년 액면분할 이전 기준)가 차명주식 수다.

이 가운데 적어도 486만여 주는 이병철 회장이 숨진 이후에 만들어졌다. 삼성생명은, 1987년 11월 이병철 회장이 숨진 이후인 1998년 9월에 유상증자를 했다. 이때 신세계와 제일제당(현 CJ)이 각각 보유한 지분 29%, 23%이 절반인 14.5%, 11.5%로 줄어들었다. 이때 감소한 지분 26%가 새롭게 만들어진 차명재산인 셈이다. 주식 수로는 당시 유상증자 이전 발행주식 총수의 26%인 486만7200주로 추정된다.

이를 두고 김용철 변호사는 저서 에서 “특검이 차명으로 관리돼온 삼성생명 지분을 모두 이건희 몫으로 인정하면서, 도둑에게 장물을 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건희는 ‘유상증자→법인주주의 실권→제3자 명의로 총수가 실권주 인수’라는 방식을 취한 셈인데, (중략) 이건희의 외아들 이재용이 재산을 불린 수법과 쏙 빼닮았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도 논평에서 “이 사안이 한 집안 내부의 문제로, 또는 언론의 가십성 기사로 끝날 일은 결코 아니다”라며 “국세청은 삼성 특검이 제대로 밝히지 못한 삼성그룹 차명재산의 성격과 조성 재원 등의 사실관계를 명확히 확정하고,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상속세 및 증여세 등을 빠짐없이 부과·징수하여 조세정의를 실현하여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참고 문헌: (김용철 지음, 사회평론 펴냄), (이맹희 지음, 청산 펴냄), (이병철 지음, 중앙일보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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