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의 한 발광다이오드(LED) 업체는 최근 핵심 인재를 대기업에 빼앗겼다. 신기술을 연구하려고 고액 연봉을 보장해 채용한 석사였다. 이 인재를 키우려고 수년간 교육시키고 해외연수도 보내줬다. 하지만 허사가 됐다. 대기업이 제시한 더 높은 급여 때문이었다.
중기, 기술인력 3만 여명 모자라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빼앗기는 기술인력이 해마다 늘고 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2009년 대기업이 채용한 기술인력 1만1천 명 가운데 경력직원이 5천 명(45.5%)에 달했다. 경력직 대부분은 중소기업에서 이직했다. 이런 사정 탓에 중소기업은 2만9천 명의 기술인력이 모자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은 중소기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중소기업 기술인력 유출 방지 및 장기근속 유도 방안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연구원은 대기업의 인력 빼가기가 늘고 있는 3개 업종(LED업·금형업·소프트웨어업)의 150개 업체를 대상으로 기술인력의 퇴직 현황을 물은 결과 2008년 205명에서 2010년 392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이들 가운데 스카우트를 통한 인력 유출은 같은 기간 46명에서 112명으로 는 것으로 파악됐다. 중소기업연구원 황성수 박사는 “최근 들어 경쟁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인력 빼가기가 심해지고 있다”며 “대기업과의 관계 때문에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경우도 있어 조사 결과보다 더 많은 인력 유출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으로 옮긴 인력은 업종별로 차이가 있었다. 금형업에서는 고졸과 전문대졸이 대부분이었고, 재직연수 5~10년차의 숙련공이 많았다. 반면 소프트웨어업은 100%가 대졸과 대학원졸이었으며, 재직연수는 5년차 미만이 많았다. 대기업이 업종 특성에 맞춰 타깃을 정해 스카우트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인력 유출은 바로 중소기업의 피해로 이어졌다. ‘대기업의 스카우트가 늘어나고 있다’는 응답이 24.7%였으며, 이 때문에 ‘기술인력 수급에 어려움이 늘고 있다’는 응답도 32%에 달했다. 특히 금형업은 42%의 응답률을 보여 어려움이 더했다. 또 ‘경쟁력이 약화됐다’(26%)거나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23.3%)는 등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를 막으려면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66%가 답했다.
정부도 대책을 내놓긴 했다. 지난 8월17일 정부는 ‘중소기업 기술인력 보호·육성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대기업이 중소기업 숙련 노동자를 부당하게 유인해 채용하는 행위를 감시하고, 적발될 경우 조달 물품 제조·입찰에 관한 적격심사기준에 감점을 부여하는 등 불이익을 준다. 또 중소기업 장기근속자에게 세제 혜택 및 공공시설 이용시 우대 혜택을 줄 계획이다.
하지만 계획이 나오자마자 비판이 나온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원은 “대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것은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어서 위헌 요소가 있다”며 “더욱이 마이스터고 등 전문계고 인력의 대기업 취업을 유도하는 정부 정책과도 상충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장기근속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도 대상에 대한 정보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행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실 반영 못하는 정부 대책이런 상황과 관련해 중소기업연구원은 ‘중소기업기술인공제기금’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황성수 박사는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처럼 사업주와 근로자가 비용을 분담한 뒤 퇴직 이후 연금을 받도록 하는 것”이라며 “장기간 일하면 받을 수 있는 돈이 많도록 해서 중소기업은 인력을 확보하고, 노동자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정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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