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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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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값 담합에 사상 최대 손배소송 점화?

6년간 119% 인상해 최대 4조원대 부당이익 추정…

공정위 적발에도 소비자 피해는 보상받지 못하자 직접 소송 이어져
등록 2011-02-24 15:55 수정 2020-05-03 04:26

지난 2006년 7월5일, 경기 고양시 한양컨트리클럽 골프장에서 특별한 ‘라운딩’이 있었다. 굵직한 액화석유가스(LPG) 업체의 간부들이 모인 자리였다. 국내 LPG 기업 1~4위인 E1, SK가스, SK(현재 SK에너지), GS칼텍스와 한국LP가스공업협회 간부의 모습도 보였다. 모임의 명분은 ‘시장 전반에 대한 현안 공유’였다. 이런 식의 만남은 2003~2007년 20여 차례 이어졌다. 장소는 고급 일식집이나 골프장, 한식집이었다. 자리를 채우는 기업의 수는 그때그때 달랐다. 업계 5, 6위인 현대오일뱅크와 에쓰오일 간부들도 종종 얼굴을 내비쳤다.

형님 좋고 아우 좋은 0.01원 차이
업계 라이벌들의 만남이 단순히 ‘현안 공유’만을 위한 것은 아닐 터였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짬짜미 혹은 담합은 한식집의 밥상 너머로, 골프장의 홀을 돌면서 이뤄졌다. ‘주동자’는 E1과 SK가스였다. LPG 수입사인 두 업체의 매출은 LPG를 직접 생산하는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4개 정유업체의 판매액보다 많았다. 두 업체가 이끌고, 나머지 4개 정유사가 따르는 구조였다. 진입장벽이 높은 LPG 업계에는 25년 넘게 새로 진입하는 회사가 없었다. 음습한 과점 구조 속에서 짬짜미는 잡초처럼 자라났다.

지난 1월25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 사옥 앞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이날 장애인 부모 717명을 대표해 SK가스와 SK에너지를 포함한 6개 LPG 업체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제공

지난 1월25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 사옥 앞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이날 장애인 부모 717명을 대표해 SK가스와 SK에너지를 포함한 6개 LPG 업체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제공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4월에 내놓은 ‘전원회의 의결서’ 기록에는 2003년 1월1일부터 2008년 12월31일 사이 LPG 업계에서 이뤄진 짬짜미의 풍경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내용을 보면, 경쟁 업체인 E1과 SK가스의 부탄·프로판 가스 판매 가격은 6년 내내 똑같이 오르고, 내리고, 유지됐다. 부탄가스와 함께 LPG 시장을 양분하는 프로판가스 시장에서 두 업체는 2003년 1월부터 2007년 3월까지 51번 가격을 갱신했지만, 가격 격차는 예외 없이 0.2원으로 유지됐다. 2007년 4월부터 2008년 5월까지는 한 번을 제외하고는 가격이 똑같이 오르내렸다.

또 6년 동안 E1의 프로판가스 평균 판매 가격은 769.17원으로, SK가스(769.16원)보다 0.01원 높을 뿐이었다. 부탄가스의 평균 판매가는 반대로 SK가스가 1162.32원으로 E1보다 0.01원 높았다. 업계의 두 ‘큰형’이 사이좋게 가격을 결정하면, 나머지 4개 ‘동생들’이 그대로 따랐다.

특히 업계 3위인 SK에너지는 SK가스와 같은 그룹에 속하고, 업계 4위인 GS칼텍스는 E1과 과거 LG그룹의 지붕 아래 함께 있었다. 6개 업체를 잇는 이해관계의 고리는 끈끈했다. SK에너지에서 2005년 4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가스사업부문을 맡았던 이아무개 전 부장은 공정위에서 이런 내용을 실토했다. “시장에서는 이미 수입사(E1, SK가스)가 가격을 협의하여 결정하면… 정유사들(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은 이를 그대로 원용하여 사용한다는 점에 대해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시장에서 간혹 ‘배신자’가 나오면, 업체들은 빠르게 반응했다. 2006년 말 전남 여수에서 E1으로부터 LPG를 공급받는 자영 충전소가 가격을 ℓ당 50~60원 싸게 팔기 시작했다. 당장 근처 SK에너지 충전소의 입이 튀어나왔다. 바로 SK에너지는 E1 쪽의 최아무개 상무에게 연락해 “충전소의 가격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요청”했다.

GS칼텍스도 2008년 들어서는 ‘돌발행동’을 했다. 그해 6월 이 회사는 문득 E1보다 kg당 8~18원이 낮게 프로판과 부탄가스의 판매 가격을 결정했다. 당장 업계에서 반응이 나왔다. 당시 E1이 작성한 ‘판매 가격에 따른 정유사 동향 및 대응’ 문서에는 현대오일뱅크의 황아무개 상무가 “LPG 가격 차이 발생이 시장 경쟁 촉발의 도화선이 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는 기록이 남았다. 이 기록 역시 업계에서 최소한 암묵적인 짬짜미가 있었다는 방증이 됐다.

해마다 11.8% 올리고 고액 연봉 누려

짬짜미 구조 속에서 LPG 가격은 줄달음을 쳤다. 2003년 1월 E1과 SK가스의 프로판가스 판매 가격은 623.8~624원이었지만, 2008년 12월에는 1367.0~1368.0원으로 6년 사이에 119% 올랐다. 해마다 11.8%씩 가격이 뛴 셈이었다. 담합 덕에 업체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졌다. 특히 SK가스와 E1의 연평균 마진은 3배 이상 올랐다. 1996~2000년에 두 회사의 kg당 평균 마진은 11.09원이었지만, 담합이 시작된 뒤인 2003~2008년에는 kg당 33.21원으로 뛰어올랐다. 연평균 당기순이익도 E1은 127억원에서 555억원으로, SK가스는 121억원에서 583억원으로 나란히 올랐다. 2008년 E1 임직원의 연평균 수입은 9750만원으로 1억원에 육박했다.

업체에서도 ‘복에 겨운’ 소리가 나왔다. 2009년 2월 SK가스 기획팀이 작성하고 대표이사가 결재한 ‘국내 LPG 본원적 경쟁력 분석 프로젝트’ 보고서를 보면 “과거 우호적인 LPG 사업 환경 속에서 Cash Cow 역할을 해온 LPG 사업을 기반으로 안정적 사업을 영위하여왔”다고 분석했다. ‘Cash Cow’란 굳이 번역하자면 ‘우유를 풍성하게 공급하는 젖소처럼 현금을 뽑아내는 사업’을 뜻한다. E1이 2007년 4월에 작성했다는 보고서를 보면, 프로판가스 시장을 두고 “양 수입사 주도 시장, 가격경쟁·물량경쟁 자제, 수요 개발 및 업계 현안 공동 대응 → 안정적 판매 기반 유지, 저성장 추세 속 과점 이익 향유”라고 분석하고 있다.

업계가 쉽게 벌어들인 이익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들이 새롭게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이 아니라면, 이들의 이익은 반드시 누군가의 손실로 채워지는 게 당연한 이치였다. 그 부담은 다름 아닌 서민들에게 안겨졌다. 프로판가스는 국내 소비량의 절반 정도가 도시가스가 보급되지 않는 730만 개 가정·식당의 취사 및 난방용으로 쓰인다. 또 부탄연료의 75% 정도는 230만여 대의 택시, 장애인 승용차, 승합차의 연료로 쓰인다. LPG 가스는 대부분 서민들의 난방, 운송 등의 원료로 사용된다는 뜻이다.

6개 LPG 업체가 6년 동안 LPG를 팔아서 벌어들인 수입은 22조원이었다. 이 가운데 담합을 통해 생긴 부당이득의 비율을 잡아내기란 쉽지 않다. LPG 가격에는 수입 과정에서 유가 변동과 환율 변동이 함께 반영되기 때문에 시장가격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산출하기가 어렵다.

개인택시·법인택시·장애인 등 잇따라 소송

하지만 산업의 성격과 상관없이, 짬짜미로 생기는 평균적인 부당이익 비율을 산출한 연구는 있다. 2009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위탁을 받아 영국의 ‘옥세라 컨설팅’ 회사가 내놓은 보고서에서는 담합에 참여한 업체들이 소비자에게 평균 20% 정도의 가격을 더 부과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퍼듀대학의 2009년 연구에서도 담합 업체들이 평균적으로 17~21% 가격을 더 물린다고 풀이했다. 두 연구 결과를 기계적으로 대입하면 우리나라 LPG 업체들의 부당이득은 3조7400억~4조6200억원 사이를 오갈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이 서민들의 호주머니에서 업체의 금고로 옮겨졌다는 뜻이다.

6개 LPG 업체가 2003~2008년 담합하는 사이 LPG 가격은 고공행진을 했다. 2003년 400원대를 맴돌던 kg당 LPG 가격은 2008년 6월 1천원을 넘어섰다.한겨레 자료

6개 LPG 업체가 2003~2008년 담합하는 사이 LPG 가격은 고공행진을 했다. 2003년 400원대를 맴돌던 kg당 LPG 가격은 2008년 6월 1천원을 넘어섰다.한겨레 자료

공정거래위원회는 2009년 12월 이들 LPG 업계의 덜미를 잡았다. 공정위는 “전형적인 서민 생활필수품인 LPG를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쳐 답합이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해 공정거래법 집행과 관련해 사상 최고의 과징금을 부과한다”며 총 6689억원을 6개 업체에 부과했다. 또 담합을 주도한 E1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렇지만 정작 손해를 본 소비자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었다. 공정위의 과징금은 법에 따라 국고에 환수되는 것이었다.

보다 못한 시민단체와 이익단체가 나선 것이 지난해 여름부터였다. 참여연대는 지난해 8월 담합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 27명을 원고인단으로 모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법원에 제기했다. 담합 기간에 모두 2억여원어치의 LPG를 구매한 원고들은 잠정적으로 2천여만원을 손해배상액으로 청구했다. 손실 추정액을 최소 10%로 잡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에는 개인택시 운전기사 3만1380명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6개 업체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소장에서 “6개 LPG 회사들이 담합함으로써 LPG 가격의 상승으로 LPG 소비자인 원고들이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으로 1인당 금 1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역시 10만원은 최소 손해액 추정치였다.

올해 들어서도 소송은 줄을 이었다. 지난 1월14일에는 전국 1574개 법인택시 사업자가, 1월25일에는 장애인 부모 717명이 법원에 소장을 냈다. 개인택시 운송사업자 1만2350명도 지난 2월16일에 추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유병우 전국개인택시연합회 회장은 “2008년 당시 전국개인택시연합회 회원이 16만443명인데, 이 조합원들이 최대한 소송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PG 업체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SK에너지를 제외한 5개 회사에서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서울고등법원과 행정법원에 낸 상태다. SK에너지는 담합 사실을 미리 ‘자수’하고 조사 과정에 협조한 뒤, 법에 따라 과징금을 면제받았다. 과징금 1894억원을 떠안은 E1의 관계자는 “회사에서 LPG 가격을 담합한 사실이 없고, 담합 사실을 입증해야 할 공정위에서 제시한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소송 절차를 계속 밟겠다고 밝혔다.

손해 본 LPG 자동차만 232만 대 넘어

개인택시 운송사업자들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법무법인 지향의 이은우 변호사는 “전국개인택시연합회 소속 조합원들이 추가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장애인 차량 이용자들이 추가 소송을 준비하고 있어서, 이번 건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최대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건은 2008년 누리꾼 14만여 명이 온라인 쇼핑업체인 옥션을 상대로 낸 소송이었다. 2008년 12월 기준 우리나라의 등록 LPG 자동차만 232만1272대였다. 소비자와 LPG 업체 사이 수조원대 손해배상 공방은 이제 막 시작됐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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