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말바꾸기를 거듭해 범국민적 불신을 받고 있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12월5일 다시 한번 국민을 농락했다. 이날 오전 서울 외교통상부에서 있은 한-미 FTA 재협상 기자회견 자리에서 그는 양손에 A4용지를 한 장씩 들고 활짝 웃었다. 이번 재협상이 우리 쪽의 일방적 ‘퍼주기’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2016년 ‘무조건’ 관세 철폐라는 뜻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2월5일 서울 외교통상부에서 연 한-미 자유무역협정 관련 기자회견에서 합의문을 공개하고 있다.연합
한-미 FTA에서 한국이 거의 유일하게 이익을 낼 수 있는 분야였던 자동차 부문에서 대폭 양보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김 본부장은 우리 쪽이 얻은 부분을 언급하며 “돼지고기 관세 철폐 기간 연장과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 의무이행 유예 등으로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큰 논란거리였던 미국산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서는 “원래 외교문서를 공개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합의된 내용을 보여주겠다”며 “이 합의문 어디에도 쇠고기 관련 내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의 두 손에는 두 장의 합의문이 들려 있었다.
미국도 김 본부장 말에 동의할까. 아마 코웃음을 칠지 모른다. 김 본부장이 12월5일 ‘돼지고기는 우리가 이겼다’라고 선언한 직후, 미국육류수출협회(USMEF)는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소식지
“한-미 FTA 추가협상 결과, 미국산 돼지고기 1개 품목에 대해 관세 철폐 시점이 2014년 1월1일에서 2016년 1월1일로 2년 연장된다. 즉, 한-미 FTA의 발효 시점과 관계없이 절대연도 2016년 1월1일이 관세 철폐 시점이 된다. 이는 한-유럽연합(EU) FTA에 따른 예상 관세 철폐 시점보다 6개월 이른 것으로 여전히 미국산 돼지고기는 경쟁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김 본부장이 거의 유일하게 이익을 얻은 것이라고 지목한 돼지고기 부문에서 미국 쪽 이해당사자인 USMEF가 ‘상관없다’고 반응한 것이다. 협상 내용을 한 꺼풀 벗겨보면 이해가 쉽다. FTA에 따른 국내 양돈 농가 보호가 목적이라면 관세 철폐 기간은 당연히 협정 발효일로부터 계산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김 본부장은 ‘발효 시점과 관계없이’ 2016년부터 무조건 관세 철폐를 하겠다는 데 합의했다. 이는 관세 철폐 기간을 연장한 것이 아니라, 2007년 한-미 양국이 협정문에 서명한 뒤 비준을 하지 못해 흘려보낸 시간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한-미 양국 모두 FTA 비준 시점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은 FTA 발효 시점과 동시에 돼지고기 관세 장벽을 크게 낮추거나 없애야 할 수 있다. 당장 우리는 2012년부터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관세를 16%에서 매년 4%씩 내리게 돼 있다. 한국 국민과 달리 이런 속사정을 뻔히 아는 USMEF가 재협상 직후 오히려 ‘미국산 돼지고기의 경쟁력에는 문제없다’는 취지의 발표문을 내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한국이 유리할 수 있었던 자동차 관세 철폐의 기준은 ‘발효 시점’으로 정했다. 2007년 합의 때만 해도 미국은 FTA 발효 즉시 한국산 자동차에 붙이는 2.5%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지만 이번 재협상을 통해 관세 철폐 시점을 ‘발효 뒤 5년째’로 조정했다. FTA를 언제 발효하든 한국산 자동차는 4년간 꼼짝없이 2.5% 관세와 싸워야 한다.
자동차는 미국에 유리한 ‘발효 시점’ 기준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이번 재협상 결과 미국산 돼지고기 관세 철폐 기간을 2년 연장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실익은 약 293억원에 그치는 반면, 미국이 2.5%의 한국산 자동차 수입관세 철폐를 4년간 연장함에 따라 우리의 기대 이익은 4조원 감소했다”며 “미국산 돼지고기의 관세 철폐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새 발의 피’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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