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감축·고배당 등을 우선시하는 ‘주주 가치 극대화’ , 지속 가능한 성장 할 수 있나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코스피 지수가 1500을 돌파한 지 한 달 만에 다시 1600을 넘어서며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금강산 찍고 한라산도 찍고 이어 백두산 높이까지 오른다’는 말도 나온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지난 5월15일까지 실적 발표를 모두 끝낸 주식시장 상장·등록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왜 주가는 거침없이 오르는 것일까?
기업소득과 근로소득의 양극화
물론 주식시장이 꼭 실물경제(기업의 실적과 향후 수익 전망)만을 반영하는 건 아니다. 케인스는 주식투자를 ‘뷰티 콘테스트’(미인 뽑기대회)에 비유하면서 자신이 진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얼굴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투표자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할 만한 얼굴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또 투자자들의 신경과민증, 심지어 소화상태나 날씨에 대한 반응까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식 가격은 합리적 계산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주식시장이 머니게임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다 하더라도 최근 주식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몇 가지 이유는 있을 것이다. 기업의 실적 호전이 주가 급등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떤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외환위기 이후 기업마다 부르짖고 있는 ‘주주 가치 극대화’ 경영 전략을 들 수 있다. 대다수 기업들은 ‘재투자와 내부 유보’ 대신 구조조정을 통해 인력을 감축하고 주주들에게 고배당을 실시하고 있다. 대대적인 인력 감축이 시장에 공표되면 해당 기업의 주가는 대체로 상승하기 마련이다. 상당한 규모의 흑자를 내고 있는 기업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인력 감축, 고배당,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기업의 주가를 올리는 것이 경영자의 최고 가치가 된 것이다. 이처럼 기업마다 주가 부양에 나서면서 투자자들은 비록 기업 실적이 썩 좋지 않더라도 자본이득에 대한 기대를 갖고 주식 투자에 나서게 된다. 신영증권 김세중 투자전략팀장은 “예전에 비하면 기업의 주주들이 배당같은 측면에서 합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며 “분식회계해서 뒷돈 빼먹는 것이 더 나았던 시절에는 배당을 해줄 필요가 별로 없었지만, 분식이 차단되면서 이제 대주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고배당을 요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투자에 대한 기대수익률이 굉장히 높았던 과거에는 기업들이 이익잉여금을 재투자해 더 높은 수익을 냈지만 지금은 투자수익률이 낮아진데다 주주들도 과잉투자를 견제하면서 기업마다 배당을 중시하는 패턴으로 바뀌었다. 기업들이 은행에서 자금을 차입해 투자하던 때는 기업이 채권자를 가장 중시하고 주주는 뒷전이었으나, 이제는 주주들의 이해를 기업 경영전략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업이 ‘주주 가치’를 강조할수록 투자자들은 장래에 주식 가격이 상승할 확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주식 투자에 적극 나서게 된다. “주식시장은 꿈을 먹고 산다”고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기업 실적이 좋지 않다면 시중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계속 들어오지 않을 것이고, 주가도 오르기 어렵다”는 건 진실이다. 이와 관련해 김세중 팀장은 “기업들의 이익구조가 2003년 이후 굉장히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익구조는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한국은행 국민계정에 따르면, 요소국민소득(노동소득+사업소득+자산소득) 대비 임금소득 비중인 노동소득분배율은 1996년 63.4%를 정점으로 하락해 2003년 59.8%, 2004년 59.1%, 2005년 60.7%, 2006년 61.4%로 나타났다. 또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중 임금근로자는 2002년 1418만 명에서 2005년 1510만 명, 2006년 1555만 명, 2007년 1분기 1564만 명으로 증가했다. 2002년 이후 해마다 취업자 증가율(-0.1∼2.8%)보다 임금노동자 증가율(1.6∼3.8%)이 더 높았기 때문에 노동소득분배율이 높아져야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소득분배율은 사실상 정체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국민총처분가능소득 중에서 피용자 보수가 차지하는 비중도 2003·2004년 44.3%, 2005년 45.3%, 2006년 45.6%로 별다른 변화가 없다. 한국은행 국민소득통계팀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 이익 중 사내 유보 등으로 회사에 분배되는 몫(기업 영업잉여)이 커지는 대신 노동자들한테 급여 등으로 지급되는 몫은 별로 늘지 않아 ‘기업소득’과 ‘근로소득’ 간의 양극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주식시장 상승세는 기업에 고용돼 있는 노동자들의 희생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IT보다 조선·철강 강세인 이유
대우증권 김성주 투자전략팀장은 “주주 가치 중심으로 기업 경영전략이 바뀐 점과 기업의 이익구조가 변화했다는 점을 둘러싸고 2, 3년 전부터 한국 증시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며 “이처럼 주식시장을 둘러싼 환경 변화도 최근의 주가지수 급등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요즘 주식시장 급등을 이끌고 있는 건 조선과 철강업종 종목들이다. 또 중국에 투자해 공장을 지었거나 중국 쪽과 사업을 많이 하는 이른바 ‘중국 관련주’들도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요즘의 주가 상승 국면에서도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다. 이는 한국 기업들의 이익구조 변화와 맞물려 있는데, IT 업종은 투자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고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인건비 비중도 낮은 편이다. 이와 달리 철강, 조선 등 전통적인 제조업은 인건비 비중이 높고 중국에 공장을 세운 기업도 많다. 국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줄이고 대신 중국으로 공장을 옮긴 기업들, 비정규직 활용을 통해 임금 인상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기업들, 또 인력 감축을 통해 인건비 비중을 낮춤으로써 이익구조가 좋아진(?) 기업들이 주가 상승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이 주주들한테 주는 배당금액도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제조업 등 비금융법인의 배당금액은 2003년 11조2천억원에서 2004년 12조8천억원, 2005년 14조9천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2006년에는 14조800억원으로 다소 줄었는데, 이는 기업 실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성주 팀장은 “국내에서 배당 관련주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주 가치 창조’라는 이름 아래 한국 기업들은 자원·수익 배분에서 투자는 뒷전이고, 안정적인 고용과 상당한 임금을 제공하던 일자리를 대폭 줄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주들과 최고경영자들은 막대한 자본이득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구조조정과 배당 전략에 힘입어 주가가 대폭 오르고 있는 기업들은 과연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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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부터 2000년까지 붐을 일으켰던 미국 주식시장이 호황 국면을 접고 폭락세로 반전됐던 지난 2001년 3월 에 주식시장에 관한 흥미로운 칼럼이 하나 실렸다. ‘미국 경제의 원동력이 바뀌고 있다’는 제목의 이 칼럼은 “지난 20년간 진행된 경제 변화로 인해 이제 주식시장은 실물경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실물경제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주가는 “해당 기업의 미래의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표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주식시장은 단순히 실물경제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칼럼은 “최근 주식시장은 점점 더 실물경제와 유사해지고 있다”면서 주가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the wealth effect)를 통해 경제성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유례없는 90년대 주식시장 호황(1990∼2000년에 시가총액 14조달러 증가)이 1995∼2000년에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매년 최소한 1%포인트 상승시켰다고 분석했다. 주식값이 오르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소비자들이 소비지출을 늘리고, 이것이 생산을 자극해 자본의 투자와 고용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영증권 김세중 투자전략팀장은 “주식가격은 변동성이 크다. 따라서 주식을 팔아 이익을 실현하기 전에 평가차익을 소득으로 생각하고 그만큼 소비를 늘리는 가계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연방준비은행(FRB)에 따르면, 당시 미국 가계의 49%가 직접투자 방식으로든 간접투자 방식으로든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2006년 말 현재 한국의 주식투자 인구는 361만3천 명으로 경제활동 인구의 15.2%다). 또 미국 가계는 평균적으로 가계의 연간 세후 소득의 3배 가치에 해당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주식투자 인구가 늘면 주식시장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증가하게 된다. 이 칼럼은 주식 가치가 100달러 증가 또는 감소할 때 소비자 지출은 다음해 2년 동안 1∼3달러 정도 증가 또는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주가가 하락하면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리게 되고, 소비 진작을 위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더라도 주가가 폭락하는 상황에서는 금리 인하 효과가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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