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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법 개정안, 무엇이 문제인가

등록 2007-04-27 00:00 수정 2020-05-03 04:24

“불평등한 한-프랑스 항공협정 무마용이다” 건교부에 발끈하는 대한항공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4월19일 현재 국회에 접수돼 있는 안건 1298개 가운데는 항공법 개정안이 포함돼 있다. 올 4월 국회에 제출된 이 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건설교통부와 대한항공이 날카롭게 맞서 있다. 무려 103쪽에 이르는 법 개정안 중에서 논란을 빚는 대목은 제150조 1항4호에 신설되는, ‘다만’으로 시작되는 단서 조항이다.

법에서 단서 조항이나 ‘단’ ‘등’ 따위의 표현이 말썽을 부리는 예는 잦아도 특정 업체가 소관 부처를 향해 공개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 법 개정안, 또 이와 관련 있는 올 1월의 한-프랑스 항공회담에 대해 이종희 대한항공 사장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건교부를 공개 비판한 바 있으며, 실명을 내건 임원들의 정부 비판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인·허가권을 쥔 정책 담당 부서와 해당 업체의 관계를 감안할 때 위태위태해 보이기까지 하다.

‘EU 지정항공사 조항’이 문제의 발단[%%IMAGE4%%]

항공법 개정안에서 문제의 조항은 이렇게 표현돼 있다. ‘다만, 우리나라가 해당 국가(국가연합 또는 경제공동체를 포함한다)와 체결한 항공협정에서 달리 정한 경우에는 그 항공협정에 따른다.’ ‘한국에 취항하는 외국 항공사는 당해 국가나 국민이 소유해야 한다’는 항공법 규정에 덧붙이는 일종의 예외 조항이다. 이런 내용이 어째서 대한항공의 속을 부글부글 끓게 한 것일까?

사태의 발단은 올 1월 한-프랑스 항공회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파리 노선에 복수 취항의 길을 열었던 것으로 널리 알려진 바로 그 회담이다. 당시 두 나라가 합의한 내용을 보면, 현행 주 7회인 운항 편수를 내년 3월부터 주 10회로, 2010년 3월부터는 주 11회로 늘리게 돼 있다. 지정항공사는 현재 1개씩(대한항공, 에어프랑스)에서 내년 3월부터 2개씩으로 늘리기로 했다. 대한항공뿐 아니라 아시아나항공도 취항하게 됐고, 운항 편수도 늘어났으니 승객들 처지에선 선택 폭이 넓어지는 셈이다.

대한항공 쪽에서 집중적으로 문제 삼아온 것은 한국 정부가 항공회담에서 ‘유럽연합(EU) 지정항공사 조항’(EU Community Clause)을 수용한 대목이다. EU 지정항공사 조항은 27개 EU 회원국 가운데 하나가 제3의 국가와 항공협정을 맺을 경우 이는 EU 회원국을 하나의 국가로 보고 27개 회원국 모두에게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는 조건을 법제화한 것이다. 한-프랑스 항공회담에서 이 조항을 받아들임에 따라 프랑스 외 EU 회원국 중의 한 항공사가 한국에 추가로 취항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비롯되는 첫 번째 논란은 프랑스 쪽에 일방적으로 기운 불평등 협정이라는 시비다. ‘EU 지정항공사 조항’을 받아들인 것은 ‘1 대 27의 시장공유’에 대해 문을 열어젖힌 꼴이라고 대한항공 쪽은 비판한다. 앞으로 다른 EU 회원국들과 벌일 항공회담에서 해당 조항을 거부할 명분을 잃었기 때문이다. 인천~파리 노선뿐 아니라 인천~프랑크푸르트, 인천~런던, 인천~로마 등 노선에도 EU 지정항공사 조항에 따라 항공협정을 맺지 않은 제3국의 회원국 항공사가 취항할 수 있어 국익 훼손으로 이어진다는 비판이다.

건교부는 대항항공의 이런 비판을 어불성설이라고 맞받는다. 오양진 국제항공팀장은 “양쪽 모두 2개 항공사로 제한해 복수취항을 허용하는 것인데 뭐가 불평등하다는 것이냐”고 반문하며 “항공회담 때 이미 다 끝난 얘기인데, (대한항공이) 비굴하게 혹세무민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불평등 논란과 함께 또 하나의 시빗거리로 남아 있는 것은 한-프랑스 항공협정이 현행 항공법 위반이냐 아니냐는 점이다. 박용순 대한항공 국제업무담당 상무는 “(EU 지정항공사 조항을) 너무 성급하게 받아들여 현행법을 위반하는 중대한 문제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맺은 항공협정에 따라 프랑스 외 EU 회원국의 항공사가 한국에 취항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한국에 취항하는 외국 항공사는 항공협정 당해 국가나 국민이 소유해야 한다’는 항공법 150조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국내법의 테두리 안에서 프랑스와 합의를 해야 함에도 거꾸로 행정부 차원에서 먼저 합의를 해놓고 여기에 맞춰 법 개정을 추진하는 건 입법부 영역에 대한 침해라는 비판도 덧붙는다.

오양진 팀장은 이런 비판에 대해 “법 위반 문제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해당 법조항(제150조)은 외국 항공사가 취항한 뒤 사후적으로 다른 나라 또는 국민에게 넘어갔을 경우 운항이나 사업을 취소‘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고 돼 있는 재량권이어서 취소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법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오 팀장은 “법적 안정성과 국가 간 협력을 꾀하기 위한 장기적인 안목에서 추진하는 것이며, 한-프랑스 항공회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말했다.

건교부, 국회에선 딴 소리

한-프랑스 항공회담과 국내법의 충돌 문제는 지난 2월21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에서도 거론된 바 있다. 김재경 한나라당 의원은 이 자리에서 이용섭 건교부 장관을 상대로 항공협정과 항공법규의 상충 문제를 추궁했다. 이 장관은 여기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항공기획관으로 하여금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마침 자리에 없자 이춘희 차관이 답변에 나섰다. 이 차관은 “국내법이 그렇다는 점을 프랑스 쪽에 확실히 인지시키고, 이 규정(항공협정)은 국내법 개정 절차가 선행된 후에 발효된다는 점을 분명히 명시했다”고 답변했다. 항공협정과 항공법 개정 작업은 무관하다는 실무자의 주장과는 엄연히 다르다. 한-프랑스 항공회담 뒤 건교부가 내놓은 보도자료에 ‘EU 지정항공사 조항은 국내법 개정 이후 효력이 발생하도록 함으로써 국내법과 충돌한다는 논란을 해결했다’고 돼 있었던 점에서도 그렇다.

지난해 11월 한-독일 항공회담에선 국내법과 상충하는 문제 때문에 EU 지정항공사 조항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점, 미국·중국·일본·러시아 같은 주요국이 자국 항공법에 따라 이 조항을 수용하지 않은 사실 등 논란을 키우는 불씨는 곳곳에 남아 있다. 항공법 개정안이 국회 심의의 도마에 본격적으로 오르면 쟁점화할 것으로 보는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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