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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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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벌경영’은 언제나 시한폭탄

등록 2005-08-04 00:00 수정 2020-05-03 04:24

두산그룹 경영권 다툼은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재벌의 근본적 모순에서 비롯
외환위기 이후 재벌지배구조의 위험을 제어할 장치는 더욱 무력화 됐다

▣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변호사

그룹경영권 승계에 대한 반발과 비리 고발로 나타난 두산그룹 총수일가의 경영권 다툼은 재벌의 모순이 현재진행형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사례다.

이번 두산그룹의 문제는 단순히 총수 일가 개인의 욕심이나 재산다툼의 문제가 아닌 족벌경영, 전근대적 의사결정 구조와 경영권 승계 방식, 적은 지분으로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는 순환출자 등 재벌의 전형적인 지배구조의 문제점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회사 하나만 장악하면 그룹을 갖는다

족벌경영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두산그룹 총수 일가는 4세대까지 대부분 두산그룹 계열사의 임원으로 있으며, 실제 이들 일가에 의해 두산그룹이 운영되는지 이들이 두산그룹에 기생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많은 총수 일가들이 경영에 참가하면서 이들간의 이해관계의 충돌이나 분화 요구는 필연적이다.

말이 좋아 우애에 근거한 공동경영이지,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그룹의 경영권을 맡고 그룹 전체의 의사결정이 총수 일가의 가족회의에서 결정되는 경영권 승계 과정은 전근대적이며, 경쟁과 능력이라는 후계자 선정의 기본원리를 무시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아님은 물론 계열회사의 주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의 승인도 없는 의사결정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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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의 총수 일가는 계열사의 지분을 적게 보유하면서 다른 계열사의 출자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이른바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주)두산-두산중공업-두산산업개발-(주)두산으로 이루어진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두산그룹 총수 일가가 보유한 지분은 두산산업개발 7.5%, (주)두산 10.38%, 두산중공업 0.02%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낮다. 또 이마저 수십명의 가족이 분산해서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적은 지분으로도 계열사를 지배하고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총수 일가는 누구라도 한 계열사의 경영권을 장악하면 모든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경영권 욕심을 내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재벌의 지배구조는 총수 일가들의 분쟁에서 끝나지 않고 이해관계자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폐해를 발생시킨다. 두산그룹 총수 일가 스스로가 밝힌 분식회계에 의한 비자금조성, 외화 밀반출, 친족의 부실기업을 우량 계열사가 부담하는 등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 재벌들이 사익 추구를 위해 계열사를 희생시키고 불투명한 기업경영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적은 지분으로 많은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재벌 총수들은 자신들의 경영권을 유지·확대하기 위해 소액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면서 편법적인 상속이나 불공정한 주식거래를 자행한다. 특히 주주 전체의 소유인 상장회사마저도 다른 주주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마치 재벌 총수 일가의 사유재산처럼 그들의 이해관계나 편의에 따라 소유권과 경영권이 이전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두산그룹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두산그룹과 같은 소유구조와 지배구조를 가진 우리나라 대부분의 재벌에 공통되는 문제다. 형제들간에 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지 오히려 사전에 분쟁을 막고 형제들간의 잡음 없는 계열 분리를 위해서 상장회사의 소액 주주들과 회사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가 계속 재벌기업에서 발생하고 있다.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 편법적인 주식거래와 회사 지원으로 주주들의 이익이 재벌 총수 일가에게 이전되고 있다. 또 능력이 검증되지 않는 재벌 2, 3세들이 계열회사의 이사회와 주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최고경영자로 등극하고 있다. 삼성그룹,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등 재벌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많은 계열사를 지배하는 순환출자의 문제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매년 발생하는 재벌들의 불법적인 경영 관행들은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현대그룹 왕자의 난. SK그룹의 불법 주식거래와 분식회계, LG카드 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러한 재벌의 폐해는 결국 주주, 채권자,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갔다.

따라서 순환출자, 족벌경영, 부당내부거래 등 재벌지배구조로부터 발생하는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하고 적절한 정책 수단과 실질적인 견제 집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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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질서 무시하고 경영권 지켜달라?

그런데 문제는 재벌 총수의 영향력이 정부와 시민사회의 묵인하에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1997년 말 경제위기 이후 재벌기업의 지배구조는 많이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정작 변하지 않는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 관행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도 사외이사제도, 감사위원회 등 장식적인 기업지배구조 개선에만 만족하고 경제 상황을 이유로 재벌지배구조의 폐해를 시정하고 예방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미봉책으로 일관해왔다. 심지어 재벌 총수들은 주식시장의 운영원리, 지배구조 원칙, 금융질서마저도 무시한 채 자신들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사이비 민족주의를 결합시켜 국가가 경영권을 지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 금융계열사의 의결권행사 제한, 자유로운 인수·합병(M&A) 제도,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금지 원칙 등 재벌지배구조의 위험을 제어할 만한 제도들이 무력화되고 있다.

재벌의 문제는 두산그룹의 경영권 다툼에서 극명히 드러났듯이 지배구조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개별 기업의 이익보다는 재벌 전체와 재벌 총수의 이해관계에서 발생한다. 재벌 총수 일가가 자신의 이해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외국 자본이나 다른 외부적인 요인에 전가하고,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지배권은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은 모순이다.

재벌기업이 성장하면서 이러한 모순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재벌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시장과 국민의 투명성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의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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