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임금동결 선언하자 경영진이 되레 10% 올려준 팬택 노사관계 신뢰의 뿌리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거꾸로 임금 협상’은 ‘양말’에서 비롯됐다?
국내 이동통신 단말기 업계 3위인 (주)팬택의 노동조합이 내년 임금 동결을 먼저 선언한 데 대해 경영진은 되레 10% 안팎 올려주겠다고 결정하는 희한한 주객전도가 화제를 뿌리고 있다. 임금 협상에서는 노사가 멱살잡이 직전까지 가는 드잡이를 하고, 코피 터지는 아귀다툼과 신경전이 벌어지는 게 다반사인데, 양쪽의 주장을 고스란히 뒤집어놓은 팬택의 비상식은 어찌된 것일까?
소박한 ‘양말 선물’이 준 큰 의미
팬택 노조가 임금 동결을 선언하기로 잠정 결정한 것은 지난 12월8일이었다. 노조는 이날 김포공장에서 박덕규 위원장 주재로 연 대의원회의를 통해 “내수 경기가 좋지 않은데다 환율 하락으로 수출 여건도 나빠지고 있는 점을 감안해 자발적으로 내년 임금을 동결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튿날 노조는 추가적인 논의를 거쳐 만든 임금동결 선언문을 경영진에 전달하기로 하고, 이런 뜻을 이성규 사장에게 알렸다.
즐거운 ‘사단’은 그 다음날인 12월10일 벌어졌다. 노조의 뜻을 전달받은 이성규 사장이 이날로 예정된 임금동결 선언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본사를 떠나 김포공장으로 향하면서 박병엽 부회장에게 이런 사실을 보고했고, 박 부회장은 오후에 긴급경영위원회를 소집했다. 팬택 창업자인 박 부회장은 경영위원회를 주재한 자리에서 “노조가 자랑스럽다”며 “올해 실적도 괜찮으니 노조의 뜻만 받고 임금은 올려주자”고 제안해 임금 인상을 관철(?)하기에 이르렀다.
여기까지만 보면, 자본주의적 이기주의 논리를 이례적으로 배반한 훈훈한 미담쯤으로 여겨질 법한데, 팬택 노사에 형성된 신뢰의 뿌리는 결코 얕지 않다. 이를 보기 위해선 팬택에 노조가 생겨나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팬택 노조는 올 3월 팬택 계열인 팬택앤큐리텔의 이천공장이 팬택의 김포공장과 합쳐지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두 회사의 생산직군이 한 곳으로 합쳐지면서 팬택앤큐리텔 노조는 해산하고 팬택으로 옮아온 것이었다. 팬택앤큐리텔은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에서 2001년 5월 분사된 현대큐리텔을 박병엽 부회장이 인수해 탈바꿈시킨 회사이니, 팬택 노조는 하이닉스반도체 출신에서 비롯된 셈이다.
박 부회장이 현대큐리텔을 인수한 2001년 12월, 인수자와 피인수 회사의 노조 임원진은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의 소머리국밥집에서 처음으로 대면했다. 노조 간부들이 워크숍을 떠나는 날이었다. 이 자리에 동석했던 신재덕 팬택 노조 사무국장(당시 현대큐리텔 노조 사무국장)은 “(박 부회장이) 첫 만남 때부터 대단히 정중하게 대해줬다”고 전했다. “사업을 시작한 이유부터 말하더라. ‘처음엔 돈 벌고 싶어 사업했는데 돈을 많이 벌고 나니 돈 말고도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또 ‘제조업에 승부를 걸어 재계에 새로운 역사를 남기겠다’고도 했고, ‘이름 석자가 언론 구설수에 오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하더라.”
이때의 재미있는 일화 한 가지가 남아 있다.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박덕규 위원장을 비롯한 당시 현대큐리텔 노조 임원진은 회사 인수자인 박 부회장에게 ‘양말’을 선물했다. “하이닉스에서 분사되고 나서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해 조직 구성원들이 길거리로 쫓겨날 판이니 ‘양말’ 신고 앞장서서 열심히 뛰어달라”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고 신재덕 국장은 전했다. 신 국장은 “선물을 주려 하니 (박 부회장은) 옷을 다시 갖춰입고 일어서서 두 손으로 받더라”고 말했다. 노조의 소박한 ‘선물’과 사용자의 사소하지만 정중한 ‘몸짓’을 고리로 양쪽 사이에 신뢰의 첫 벽돌이 쌓이는 순간이었다.
경영진은 언제나 전향적이었다
인수 당시 이런 일도 있었다. 박 부회장이 KTB네트워크와 컨소시엄을 이뤄 300억원으로 현대큐리텔을 인수한 직후인 2001년 12월 어느 날, 서울 서초동 현대큐리텔 본사를 방문했을 때였다. 수행원 없이 홀홀단신으로 나타난 박 부회장은 직원들에게 “내가 먼저 여러분에게 1등 대우를 해줄 테니 여러분은 1등으로 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이닉스반도체에서 분사돼 생존조차 불투명하던 시절이었으므로 1천명 안팎의 피인수 회사 직원들에게는 대단히 고무적으로 들렸음직하다.
인수 초기에 형성된 이런 우호적인 분위기는 그 뒤 이어진 노사 협상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굳어졌다. 이는 노조쪽에서도 평가하는 바다.
박 부회장의 현대큐리텔 인수 당시 노조쪽은 우리사주 배정을 통한 자본이득 기회 부여, 고용 보장, 월급을 비롯한 근로 조건 현행 유지 등 모두 12가지 조건을 내걸었는데, 11가지 사항이 수용됐다. 이듬해인 2002년 임금 협상도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돼 두 자리 수(10.1%) 인상을 이뤘다. “경영 상태가 썩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성과급까지 지급함에 따라 신뢰 관계가 형성됐다. 두 자리 수 인상은 당시 경기도 이천 아미공단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대다수 기업들이 두 자리 인상을 단행하는 기폭제가 됐다.”(신재덕 국장) 신 국장은 “신뢰 관계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임금 협상은 실무 교섭 단계에서 대부분 마무리돼 2월에 시작해 3월 초면 끝난다”고 말했다.
경영진의 전향적인 태도는 지난해 3월 임금 협상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노조(당시는 큐리텔 노조)가 자체적인 경영 분석을 통해 17.01%의 요구안을 마련해 실무 교섭에 나선 데 대해 회사쪽에서는 15% 인상안을 제시했다. 양쪽의 차이는 미미해 16.5%에서 금방 타결됐다. 당시 실무 협상에 나섰던 노조 관계자는 “호봉 테이블을 조정한 데 따른 효과까지 감안한 실질적인 인상률은 애초 노조 요구안보다 높았다”고 귀띔했다.
팬택 노사 관계에도 금이 갈 수 있는 위기가 있었다. 올 3월 팬택앤큐리텔 이천공장을 팬택 김포공장으로 통합할 때였다. 이천공장에 근무하는 550명의 생활 터전을 옮기는 일이 간단할 리 없었다. 직원들 사이에는 난상 토론과 삿대질이 오가고, 일부 직원들은 노조 사무실을 엎어버리겠다며 격앙된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전 대상 직원의 98%가 옮겨올 정도로 무리 없이 공장 통합을 이룬 것은 팬택과 팬택앤큐리텔 두 회사의 복지 제도를 합치되 모든 부문에서 좋은 점만 따오는 등 전향적인 조처에 힘입은 바 컸다. 예컨대 팬택앤큐리텔 시절 기본급 외에 각종 수당으로 나뉘어 있던 것을 전부 묶어 기본급으로 통합하고, 동일직이면 남녀 임금 차이도 없앴다. 이에따른 임금 인상 효과는 20.1%였다고 노조 관계자는 전했다. 이와 함께 직제를 바꿔 생산직군이 45살(그 당시까지는 40살) 때 최고 직위에 이르도록 연장함으로써 장기 근속을 유도하는 조처도 이뤄졌다.
하이닉스 출신들이었기에…
물론, 팬택 노사의 원활한 관계를 경영진의 공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내년 임금을 동결하겠다고 자체 선언하고 나선 데서 볼 수 있듯 팬택의 노조도 다른 사업장과는 다른 독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조쪽의 임금 동결 선언을 이끌어낸 계기가 됐던 9~11월의 판촉 활동이 노조에서 먼저 제안해 이뤄진 행사였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이 판촉활동을 통해 노조원들은 불황의 현장을 피부로 느끼고 임금 동결을 선언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한다).
이는 하이닉스반도체에서 분사되는 과정에서 혹독한 어려움을 겪었던 탓에 고용 안정에 대한 열망이 무엇보다 강한 데서 비롯되는 듯하다. “2001년 5월 하이닉스반도체에서 분사하던 때 별별 소문이 많았다. ‘급여는 3개월치밖에 못 받고 6개월 안에 망할 거다’ ‘누적 적자가 1200억원인데, 희망이 있겠나’ 등 낙담하는 얘기들이 잇따랐다”(현대큐리텔 출신의 팬택 직원). 노조 관계자는 “520여 노조원들 가운데 이런 아픔을 겪은 하이닉스 출신들이 절반에 이른다”며 “이 때문에 당장의 임금 인상보다는 고용의 영속성에 대한 욕구가 훨씬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업종(통신업)의 특성상 지속적인 기술투자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데 대한 직원들의 이해가 높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팬택 노조의 ‘거꾸로 임금 협상’을 이끌어낸 밑바탕에는 노사 양쪽의 이런 전향적인 태도에 덧붙여 양호한 경영 실적이 깔려 있다. 팬택은 올 3분기까지 매출 6600억원, 당기순이익 170억원을 올려 올해 전체적으로는 1조원 매출, 400억원의 순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고용 안정을 우선한 노조-비용절감보다는 직원의 기 살리기를 앞세운 경영진-양호한 실적’이 이룬 삼각축의 조화가 임금 협상의 상식 파괴로 이어진 것이다.
한편, 단위 사업장의 이런 아름다운 상식 파괴가 바깥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칫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일부 있다. 팬택 노사가 3년에 걸쳐 쌓아온 신뢰 관계의 역사를 감안하지 않은 채 ‘거꾸로 임금 요구’라는 현재적 결과에만 주목할 경우 다른 사업장의 노사가 각각 정반대의 메시지에 주목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언론에 팬택 노조의 결단이 집중 부각된 점을 감안하면, “거봐라, 팬택 노조는 스스로 임금 동결을 선언했는데, 너흰 왜 그러냐”는 식의 노조 압박이 나올 수 있다. 현재 팬택의 대졸 초임이 연 2700만원, 대리 첫해 3900만원, 과장 첫해 4500만원으로 삼성전자와 별 차이가 없다는 사정을 감안할 때 팬택의 사례를 들어 다른 사업장 노조의 양보를 강조하는 것은 경계돼야 할 것 같다.
다른 사업장과의 단순 비교는 위험
팬택 노조의 상급 단체인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속노조연맹의 허원 경기지역본부 의장은 “(팬택 노조가 임금 동결을 선언했던 일은) 앞으로 진행할 임금 협상에서 부담스런 부분”이라며 “동결 선언을 내놓기 전에 연맹과 사전에 상의를 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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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팬택은 1991년 3월 무선호출기 전문업체로 출발해 지금은 국내 3위의 휴대폰 개발 및 제조업체로 성장했다. 창업자인 박병엽(42) 부회장이 다니던 맥슨전자를 그만두고 팬택을 설립할 당시 자본금은 단돈 4천만원이었다.
이 회사는 1997년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단말기 생산 라인을 갖춘 데 이어 미국 모토롤라와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사업에 대한 전략적 제휴를 맺어 1999년 1월부터 CDMA 양산에 돌입했다. 팬택은 유럽통화방식(GSM) 단말기의 연구개발에도 뛰어든 결과, 2000년 11월 GSM 국제인증을 받았으며, 2001년 6월부터 GSM 단말기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 7월 중국 업체와 합작해 대련대현팬택유한공사를 설립해 안정적인 매출과 중국 현지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2003년에는 GSM 기술력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러시아, 중동, 멕시코 등 신흥 시장에도 진출했다.
팬택은 2002년 계열회사인 팬택앤큐리텔과 내수시장 공급 계약을 맺어 대용량 데이터를 고속 전송할 수 있는 CDMA 단말기, 다양한 부가 기능을 갖춘 카메라폰 등을 공급하고 있다. 팬택은 국내 시장에서는 팬택앤큐리텔 브랜드로 단말기를 공급하고 있다.
팬택 및 팬택앤큐리텔은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전자, LG전자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팬택앤큐리텔의 자체 조사 결과, 올 상반기 국내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 44.2%, LG전자 21.8%, 팬택 계열 14.7%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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