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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길, ‘약달러 고금리’

등록 2004-12-03 00:00 수정 2020-05-03 04:23

레이건 행정부 시절의 ‘플라자합의’ 재연될 가능성은 없다

▣ 최배근/ 건국대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달러화가 연일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며 하락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유로 가치는 지난 11월24일 장중 1.31달러 선을 사상 처음으로 넘은 뒤 11월24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1.3187달러를 기록, 또다시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거래일수 기준으로 지난 120일 사이에 달러 가치가 가장 높았던 6월16일의 1.2006달러와 비교할 때 9.8%가 상승한 것이다. 이날 엔화에 대비해 달러 가치 역시 103엔 선을 깨며 102.80엔으로 마감했다. 거래일수 기준으로 지난 120일 사이에 달러 가치가 가장 높았던 7월29일의 111.88엔에 비해 엔화 가치는 8.1%가 상승했다.

금리 인상이 자본 유출 막을까

최근의 달러 약세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경상 및 재정수지의 쌍둥이 적자와 더불어 지난 11월17일 미국 재무장관 스노의 ‘런던선언’과 지난 19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그린스펀 의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확인된 미국의 ‘약달러 정책’에서 비롯한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서 미국의 주식·채권이 전세계 투자가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을 우려하여 그린스펀은 금리를 계속 인상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사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이 초래할 마이너스(-) 자산 효과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금리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다. 지난 상반기 미국의 개인 저축률은 사상 최저 수준인 1%대(1분기 1%, 2분기 1.2%)였는데 3분기에는 0.4%로 더욱 하락했다. 감세 효과가 소진되고 이자율 상승으로 가계부채의 부담이 증가하면서 저축률이 더욱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70% 비중을 차지하는 민간소비가 위축될 경우 경기 후퇴가 우려되기 때문에 마이너스(-) 자산 효과로 연결될 수 있는 국제자본 탈출을 미국은 결코 방치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추가적인 감세정책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따라서 재정수지 적자의 개선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미래 경제전망에 대한 불확실성 등으로 GDP 대비 기업 보유 현금 비율이 195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기업이 투자를 기피하는 상황에서 90년대 후반 같은 투자 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처럼 부시 행정부 2기의 본심이 ‘약달러-고금리’로 드러나면서 부시 행정부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의 ‘플라자합의’(1985년 선진 5개국 사이의 약달러 합의)와 비교되고 있고, 미국 내 많은 경제학자들 역시 ‘제2의 플라자합의’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플라자합의가 재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플라자합의가 성공한 유일한 이유는 참가국이 모두 각국 내부 사정으로 달러 가치 하락을 바랐기 때문이다. 현재는 세계 각국이 달러 가치의 하락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나 외국인이 보유한 미국 자산의 규모, 유가 등 현재의 상황은 1985년과 전혀 다르다. 게다가 미국의 ‘약달러-고금리’ 처방이 성공하려면 일본이나 유럽연합(EU)의 환율 협조 정책이 전제돼야 하고 금리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 플라자합의 당시에도 달러 약세로 자본의 대미 순유입이 중단되면서 87년 미국의 연준은 금리를 인상했으나 독일과 일본의 동반 금리 인상으로 효과를 내지 못했고, 그 결과가 주식 및 채권시장에 재앙을 가져다준 1987년 10월19일의 블랙먼데이였다. 이를 계기로 미국 연준의 의장이 볼커에서 그린스펀으로 교체됐는데 그린스펀이 같은 상황에 직면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국, 국내 투자 기피가 문제

이처럼 미국의 ‘약달러-고금리’ 정책의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구조적 내수 침체와 상대적으로 높은 물가상승률에 놓여 있는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파괴적이다. 지난 10월26일 1046.40원으로 마감한 한국의 (원-달러) 환율은 거래일수 기준으로 지난 120일 사이에 달러 가치가 가장 높았던 7월30일의 1170원과 비교할 때 10.6% 상승했다. 내년에는 외환위기 발발 직전인 1997년 가을의 환율 수준인 900원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 모두가 동의하는 한국 경제의 당면 문제는 국내 투자의 기피 현상이다. 한국 경제를 나홀로 지탱하던 수출에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플라자합의 이후 국제 경제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정책을 실기하여 장기 불황에 빠졌던 일본의 경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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