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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직, 부작용도 많다

등록 2004-11-04 00:00 수정 2020-05-03 04:23

주요 기업 채용비중 80% 달해…조직 부적응·잦은 이직 등 문제 발생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취업포털 사이트인 잡코리아(www.jobkorea.co.kr)에서 인터넷을 통한 ‘과장·대리 채용박람회’(10월28일∼11월21일)가 열리고 있다. 박람회에는 대기업·외국계기업·벤처기업 등에서 채용하려는 2만5천여개의 과장급 및 대리급 일자리가 업종·직종별로 올라와 있다. 잡코리아는 “그동안 사이트에 게재된 경력직 채용공고를 분석한 결과 전체의 67.6%가 대리·과장급 구인 공고인 것으로 집계됐다”며 “이에 따라 이번에 대리·과장급 채용박람회를 따로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외환위기 이후 채용시장 관행이 대규모 신규공채에서 경력직 수시채용으로 바뀌면서 이제 ‘경력직 채용박람회’까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에서 불만 더 크다

노동부에 따르면, 주요 30대 대기업과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채용 방식 변화를 조사한 결과 신규채용 비중은 1997년에 59.3%였으나 98년 45.1%로 크게 낮아진 뒤 99년 26.7%로, 2002년에는 다시 18.2%로 떨어졌다. 반면 경력직 채용 비중은 97년 40.7%에서 2002년 무려 81.8%까지 늘었다. 기업이 경력직 채용 위주로 돌아선 이유는 △신입사원을 뽑아 교육·훈련시켜 활용할 때까지 많은 비용이 들고 △키워서 쓸 만한 직원으로 성장시켜봤자 기회를 봐서 이직하려는 풍토가 퍼져 있는데다 △상품시장이 단기적 경쟁으로 급속히 바뀌어 이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기업들은 “시장 환경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단기간에 빨리 출시해 승부해야 하는 쪽으로 바뀐 만큼 경력직 채용은 앞으로 더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경력직 직원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한국인사전략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10월 1253개 중소기업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8.1%가 이미 채용한 경력직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불만으로는 △예상보다 떨어지는 실무 능력(38.5%) △사내 동화가 잘 안 된다(23.4%) △쉽게 이직(21.8%) △업무에 비해 과다한 연봉 요구(13.6%) 등을 꼽았다. 경력직을 채용하는 이유로는 △업무환경에 적응이 빠르다(59.2%) △신입사원 교육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18.9%)라고 대답했다. 한국인사전략연구소 신경민 과장은 “경력직은 다른 토양에서 자랐기 때문에 같이 생활하는 동료들과 이질감이 생기고, 그래서 경력직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며 “대기업은 사람도 물론 중요하지만 업무 중심의 기능형 조직이라서 조금 덜하지만, 중소기업은 본래 직원들간의 끈끈한 유대를 바탕으로 기업조직이 형성되기 때문에 조직 융합이라는 측면에서 경력직에 대한 불만이 더 큰 편”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근 경력직을 뽑을 때 경력사항과 전문성에 앞서 기존 멤버들과의 화학적 결합을 중시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잡코리아 정유민 본부장은 “기업마다 경력직 채용 과정에서 기업문화와 융화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고 있는지 또는 사고 패턴이 기업에서 적응할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보고 전문성과 능력은 그 뒤에 고려하는 추세”라며 “경력직에 대해서도 적성 및 인성검사를 거치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조직 융화 능력이 떨어지고, 이에 따라 기존 구성원들의 능력을 오히려 해칠 수 있는 외부 경력자의 전문성은 인정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인사직 수요가 급증하는 이유

LG경제연구원 이병주 연구원은 “회사에서 필요한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채용된 경력사원은 대개 높은 현금 보상과 빠른 승진 대상이 되고, 이는 기존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게 된다”며 “기업들이 유능한 경력사원을 대거 채용했으나 상당수가 조건과 연봉에 따라 떠도는 철새로 기업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연구위원은 “경력직 채용과 비정규직 고용이 대폭 늘면서 기업 조직의 효율성이 파괴되고 내부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말하는 인사담당자들이 많다”며 “눈에 보이는 수치로 제시된 건 아니지만 예전에 비해 조직이 잘 안 돌아간다거나 삐걱거린다고 하는데, 이는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구조 변화가 가져온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경력직종 가운데 최근 ‘인사직’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최근 2년간 채용공고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02년에 인사직(인재개발/교육기획·인사관리 등) 채용공고 수는 연간 846건에 불과했으나 2003년 1831건으로, 올 들어 9월까지 4883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당장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업·기술 분야 경력자보다는 직원을 뽑거나 교육·관리하는 전문가들이 각광받는 것인데, 이는 경력자 채용이 늘면서 조직 융화 문제가 기업의 새로운 고민거리로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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