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수입차 사전에 불황은 없다

등록 2004-07-16 00:00 수정 2020-05-03 04:23

국내 자동차 판매 줄어드는 가운데 시장점유율 계속 상승… 한국 사회 소득격차 심화 반영

▣ 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내수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국내 자동차 판매가 지난해에 비해 급격히 줄고 있다. 자동차공업협회의 집계를 보면, 국내 완성차 5사의 올해 상반기 내수판매는 54만1577대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무려 25.3%나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중 수출이 159만대로 지난해보다 47.7%나 늘지 않았다면, 자동차 회사들은 매우 힘겨운 시절을 보낼 뻔했다. 자동차 회사들은 하반기 자동차 내수판매도 좋아질 것 같지 않다고 내다보았다. 그런 가운데 수입 외제차의 시장점유율이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우리나라에 외제차가 처음 수입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87년부터다. 하지만 94년 이전까지만 해도 외제차가 국내에 발을 붙이기는 쉽지 않았다. 외제차는 크기가 매우 커서 국내 도로 여건에 잘 맞지 않았다. 또 국민들의 소득수준에 비해 너무 비쌌다. 외제차를 타는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세무조사 등 국내 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장벽도 있었다.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0년 1월 현재 국내에 등록한 자동차 중 수입차는 0.7%에 지나지 않았다.

제2의 수입차 거리 대치동에

그러나 최근 들어 수입차의 점유율이 빠르게 늘고 있다. 2002년 3월 1%를 넘어서고, 2003년 5월 처음으로 2%를 넘어선 뒤, 가장 최근 집계인 지난 3월에는 2.56%에 이르고 있다. 올 들어 국내 자동차 회사들이 내수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것과 달리, 외제차 판매는 계속 호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5월 말까지 외제차는 8525대가 팔려, 지난해 같은 기간의 7819대보다 9%가 늘었다. 지난 2001년 1월 466대에 그쳤던 판매대수도 최근에는 월 2천대 가까이로 늘었다.

지난 6월16일 메르세데스벤츠가 서울 대치동에 새 전시장을 연 것은 수입차들의 적극적인 시장 공세를 상징한다. 그동안 서울의 외제차 거리는 강남의 도산대로 일대였다. 지난 2000년 말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렉서스가 대치동에 처음으로 전시장을 연 이래, 국내외 브랜드 대부분이 이 일대에 새로 전시장을 열기 시작했다. BMW, 아우디, 폭스바겐, 볼보, 포드 등이 최근 2~3년 사이 하나둘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최근 벤츠의 전시장 개설은 극심한 내수 침체에도 수입차들은 여전히 시장을 확대할 여지가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읽힌다.

제2의 수입차 거리가 대치동에 있다는 것은 수입차는 역시 ‘보통사람’이 타는 차는 아님을 보여준다. 대치동 수입차 거리는 왼쪽으로는 다국적기업과 벤처기업, 비즈니스 호텔이 몰려 있는 테헤란로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타워팰리스, 아이파크 같은 최고급 주상복합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구매력을 갖춘 계층이 몰려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외제차 브랜드는 역시 BMW다. BMW는 올 들어 5월까지 모두 2059대를 팔았다. 이는 5월까지 팔린 전체 외제차 8525대의 24.2%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BMW는 지난해 같은 기간 2394대보다 판매대수가 14% 줄었다. BMW의 최고 인기모델은 BMW530으로, 5월 한달에만 104대가 팔렸다. BMW530의 가격은 8850만원에 이른다. BMW 대치 전시장 이학민 과장은 “벤츠가 별도의 운전자를 두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차라면, BMW는 직접 운전을 하면서 다이내믹한 운전감을 느끼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렉서스, 최근 인기 급등

최근 인기가 오르고 있는 수입차는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렉서스다. 렉서스 브랜드는 올 들어 5월까지 2024대가 팔렸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1301대보다 무려 55.6%나 늘어난 것이다. 5월 한달 동안 판매대수는 BMW의 398대를 크게 넘어선 435대로, 5월 중 판매된 전체 수입차 1599대의 27.2%를 차지한다. 모델별로 보면 4950만~5620만원인 ES330이 242대로 가장 많이 팔렸고, 1억790만~1억1120만원인 LS430이 104대 팔렸다.

D&T모터스가 운영하는 렉서스 대치 전시장의 정석훈 과장은 렉서스가 국내에서 잘 팔리는 이유에 대해 “세계적인 고급차 가운데 가격이 덜 부담스럽고, 일본차의 디자인 컨셉트가 한국인에게 익숙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렉서스 전시장을 찾는 사람은 하루 10~15팀, 주말에는 20팀 안팎이라고 한다. 정 과장은 “중소기업 대표와 자영업자, 전문직 인사들이 주고객”이라며 “한대 가진 사람이 추가로 구매하는 등 재구매율이 높은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렉서스는 다른 수입차와 달리 국산차를 타던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월 뒤늦게 대치동에 전시장을 열어, 외제차 ‘빅3’ 중 마지막으로 대치동에 안착한 메르세데스벤츠는 국내 판매대수로 3위를 차지한다. 올 들어 5월까지 1331대가 팔려 외제차 시장점유율은 15.6%다. 그러나 벤츠의 모델들은 BMW나 렉서스보다 값이 비싸서, 매출액으로 보면 벤츠가 크게 뒤처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인 S350은 값이 1억4850만원, E320은 9390만원이나 한다. 대치 전시장의 이승희 차장은 “경기가 안 좋지만, 사전에 충분한 마스터플랜을 갖고 전시장을 연 것”이라며 “잠재고객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누가 살까 싶을 만큼,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값이 비싼 외제차들의 판매도 눈에 띈다. 지난 6월 말 대치동 전시장을 연 기념으로 벤츠가 전시와 판매를 시작한 마이바흐는 가격이 ‘57’모델의 경우 6억원, ‘62’모델은 7억2천만원에 이른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국내 시판 전 비공식 채널을 통해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은 마이바흐는 그 비싼 가격에도 국내 시판 1주일 만에 6대나 계약이 이뤄졌다. BMW그룹은 이에 뒤질세라 7월부터 발류 롤스로이스 팬텀을 팔고 있다. 팬텀의 국내 판매가격은 6억5천만원으로 마이바흐와 별 차이가 없다. 팬텀도 일주일 만에 마이바흐에 버금가는 계약이 성사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고급차의 판매도 나쁘지 않아

국내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도 이처럼 고급 외제차의 판매가 늘어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소득격차가 갈수록 확대되는 최근 몇년간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외제차뿐 아니라, 국내 고급차의 판매도 결코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쌍용차의 간판인 뉴체어맨은 올해 상반기 판매대수가 지난해보다 35.6% 늘어났다. 현대차 에쿠스의 경우 지난해보다 판매가 16%가량 줄었는데, 이 또한 현대차의 소형차 판매가 40% 안팎 줄어든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선전한 것이다. 한편 외제차 ‘빅3’ 다음으로 국내에서 많이 팔리는 브랜드는 크라이슬러(5월까지 605대), 포드(556대), 볼보(457대), 폭스바겐(362대), 아우디(252대) 순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