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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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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성을 건 협상, 혹은 도박

등록 2006-07-14 00:00 수정 2020-05-03 04:24

북 미사일과 MD·디스커버리호 발사를 통해 살펴본 과학의 정확도 신화… 애초에 검증되기 어려운 문제, 돈과 정치를 위해 인명을 건 도박을 하는가

▣ 김동광 과학저술가·고려대 강사

요즈음 사람들의 머리는 꽤 복잡하다. 며칠 전 새벽녘에 월드컵 축구 삼매경에 빠졌던 사람들은 갑자기 커다란 자막으로 나타난 북한 미사일 발사 소식을 접하면서 무척이나 당황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문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가 과연 성공이냐 실패냐를 둘러싸고 추측성 분석 보도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편에서는 기술력의 문제로 40여 초 만에 오작동이 발생한 상태에서 비행하다가 추락했다고 하고, 당사자인 북한은 성공적인 발사였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일부 평자들은 국제적인 파장을 막으려고 북한이 일부러 도달 거리를 줄여서 동해상에 떨어지게 한 것이 아니냐는 의도적 추락설까지 제기했다. 여기에서 세인의 관심을 끈 것 중 하나는 북한산 미사일 성능 문제였다. 기존 강대국들을 제외하고 미사일 강국으로 꼽혀온 북한 미사일의 정확도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격 미사일이라는 꿈과 환상

또 다른 관심사는 미국이 오랫동안 공들여왔고 최근에는 일본과 공조 체제까지 구축한 ‘미사일 방어체제’(MD)를 둘러싼 것이었다. 대포동 미사일이 언제든 다시 발사될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1980년대 이래 900억달러 이상을 쏟아부은 대미사일 요격 방어 시스템이 실제로 가동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이 계획은 날아오는 적의 미사일을 방어 미사일로 맞혀 떨어낸다는 발상이다. 그러니까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상대가 던진 돌을 내가 던진 돌로 맞혀 떨어뜨리거나 상대가 쏜 화살을 다시 화살로 명중시킨다는 이야기나 진배없다. 이론상 북한에서 대포동이 발사되면 한반도 주변에 배치된 이지스함과 조기경보 정찰위성들이 레이더 추적을 시작하고 알래스카 공군기지를 비롯한 여러 공군기지에서 요격 미사일을 발사해, 미국 본토에 진입하기 이전에 태평양 상공에서 대포동 미사일의 탄두를 명중시켜 공중에서 폭파시키게 되어 있다. 이 계획은 이미 출발 단계부터 실현 가능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빚어졌다. 시속 수만km의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미사일의 탄두를 역시 같은 속도의 다른 미사일로 맞힌다는 것은 아무리 첨단과학을 총동원한다고 해도 꿈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MD가 실효성이 없이 시늉에 불과한 허수아비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런데 미사일 발사 소식으로 뒷전으로 밀려나 별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직전인 지난 7월4일 미국은 디스커버리호를 발사했다. 미국은 이번 발사에서도 잔뜩 가슴을 졸였다. 혹시라도 악몽 같은 과거의 참사가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지난 1986년에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직후 공중 폭발해 승무원 7명이 사망했고, 2003년에는 컬럼비아호가 귀환 도중에 폭발해 역시 승무원 전원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절치부심하며 사고 원인을 찾고 어수선한 민심을 수습한 끝에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발사에 성공한 디스커버리호는 이번에도 안전 문제와 기상 악화 등의 악재가 겹쳐 여러 차례 발사가 연기되다가 독립기념일에 맞춰 간신히 발사대를 떠났다. 여기에서도 정확성을 둘러싼 지루한 논쟁과 타협이 계속되었다. 일각에서는 안전을 문제 삼아 우주왕복선 계획 자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향후 우주개발에 송두리째 차질이 빚어질 뿐 아니라 스스로 존립 근거까지 크게 흔들릴지 모르는 위기감을 느낀 항공우주국(NASA)과 역시 우주강국의 자존심 회복을 강력하게 희구한 미 정부는 발사를 강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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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며칠 동안 우리 머리 위를 위태롭게 날아오른 여러 발사체들을 둘러싼 논의는 우리에게 “과연 정확성이란 무엇인가. 어디까지 정확해야 정확한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져준다. 어지럽게 오버랩되는 사건들 속에서 공통된 한 가지 요소는 과학기술의 정확성에 대한 가정과 주장들이 숨가쁘게 돌아가는 현실에서 경합을 벌이고, 동원되고, 협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엄밀과학’(exact science)에 대한 가정은 근대과학이 출발하면서부터 깊이 내장된 믿음 중 하나다. 다시 말해서 과학기술을 통해 엄밀함 또는 정확성에 그 자체로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그러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많은 시간이 흐르겠지만 어쨌든 정확성은 저 너머에 있는 무엇이고 궁극적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정확성의 범위도 사회적으로 결정

그러나 과학사회학자 도널드 매켄지는 1987에 쓴 ‘미사일의 정확성에 대한 기술시스템적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탄도 미사일의 정확도가 단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조직적·경제적·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밝혔다. 모든 기술이 마찬가지지만 특히 미사일과 같은 거대 기술은 그 속에 무수히 많은 이질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정확도란 이러한 요소들의 결합을 통해 나타나는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 이질적 요소들에 정치경제학적 고려가 중요하게 작동하는 것은 물론이다. 결국 정확도란 발사체의 목적과 효용성, 기술 개발에 들어가는 시간, 소요되는 비용의 한계 등에 따라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 한계치 내에 들어가면 그것은 ‘정확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성공이냐 실패도 결국 그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주변에서 정확도는 단지 구성되는 무엇일 뿐 아니라 동원되고 협상되는 중요한 자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역시 우리가 과학기술, 특히 첨단기술에 대해서 갖고 있는 고정관념, 그리고 정확성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몇 해 전 걸프전에서 미국은 전세계에서 쏟아지는 반전 여론을 무마하려고 ‘정밀 폭격’이라는 불확실한 개념에 호소했다. 당시 군 관계자들은 적의 군사시설만 족집게처럼 폭격을 가하고 민간인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는다는 환상을 불러일으켜 자신들이 벌인 전쟁을 마치 비디오 게임 비슷한 무엇으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이번에 다시 논란이 된 MD의 실효성 여부도 이미 해묵은 패트리엇의 성공률 논쟁부터 시작됐다. 미국이 자국 내 전문가들의 빗발치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MD를 추진하는 까닭은 이 거대 기술체계 속에 들어 있는 숱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들로 인해 정확성이 끊임없이 새롭게 협상되기 때문이다. 이 계획은 미국이 아니면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첨단기술의 총아라는 점에서 계획 추진 자체가 패권을 뒷받침해주고, 소요되는 천문학적 비용은 결국 군산복합체들에 돌아가고 이 계획을 추진하는 정권에 어떤 식으로든 다시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도박판을 벌일 수 있는 중요한 이유는 이 방어체제가 구축돼도 실제 가동돼 정확성을 검증할 기회는 한 번 있거나 또는 영원히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 MD가 가동될 기회가 없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NASA는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디스커버리호의 발사 역시 정확도를 둘러싼 고도의 협상 산물이다. 우주왕복선 계획에서만 두 차례 대형 사고로 10여 명의 인명을 잃었음에도, 무인 비행이 아니라 또다시 유인 왕복 비행을 고집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희생자들이 자원자라는 이유만으로 NASA와 미국은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사실 NASA는 우주계획을 세일즈하고 지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발사할 때마다 정확성에 대한 환상을 보완해가면서 인명을 볼모로 한 또 다른 도박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최근 며칠 동안 중첩된 두 건의 발사 사건과 그로 인해 새롭게 부상된 MD는 과학기술의 정확성에 대해 우리가 품고 있는 신화의 근거가 얼마나 박약한지 잘 보여준다. 따져보면 북한의 대포동이나 미국의 MD나 제각기 맥락에서 정확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셈이다. 어차피 미국 본토로 날아갈 작정이 아니었던 대포동이나 실제 가동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은 MD라면 말이다.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의 발사 역시 무모하긴 마찬가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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