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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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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들의 통신을 감청하라

등록 2006-06-14 00:00 수정 2020-05-03 04:24

최근 유성호 교수팀이 수용체의 반응 속도를 결정하는 단백질 규명… 세포통신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단계, 세포 사멸까지 재구성할까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는 대략 50조~100조 개의 세포로 이뤄졌다. 이 세포들은 각자 임무에 따라 다른 구실을 하면서 사람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공동체를 이루듯 상호 작용을 한다. 이들의 정보 교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생명현상도 위협받는다. 세포들은 사람이 통신수단을 이용해 정보를 주고받듯이 외부의 신호를 받아들이고 내부에 전달하는 수용체를 가지고 있다. 고성능의 네트워크 장비를 보유해 의사소통에 능해야 고등동물로 진화할 수 있다. 만일 세포의 통신수단이 고장 나서 오류를 일으키면 질병을 일으키게 된다. 이때 투입되는 약물은 세포의 소통을 원활히 하는 구실을 한다. 과학자들이 세포의 통신 메커니즘을 밝혀내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포스포리파제 D, 호르몬 분비의 타이머

모든 세포의 삶과 죽음에 관련된 분비·흥분 등의 반응은 통신을 통해 이뤄진다. 세포통신의 일반적인 메커니즘은 세포 표면의 수용체에 단백질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과정에 전령세포와 수용세포가 만나서 통신 내용을 파악하는 식이다. 예컨대 취장세포들은 에너지를 얻으려고 인슐린을 분비해 근육세포에 메시지를 전한다. 혈액에 있는 당분을 올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만일 인슐린을 분비하는 통신체계에 문제가 있으면 당뇨병에 걸리기 십상이다. 각종 세균성 질환이나 노인성 질환도 세포통신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면역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세포 원형질막을 통해 세포질과 핵으로 운반하는 몇몇 세포의 통신 메커니즘을 파악했다. 하지만 단백질 분비에 따른 거대한 세포통신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포스텍 분자생명과학부 류성호 교수팀이 수용체를 매개로 한 단백질 작용에서 ‘포스포리파제 D’(phospholipase D)라는 단백질이 호르몬 분비에 관련된 타이머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 에 발표했다. 수용체를 세포 속으로 끌어들여 잘라내는 가위 구실을 하는 단백질인 다이나민에 포스포리파제 D가 “자르라”는 명령을 전달해 수용체 반응 속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세포가 통신을 할 때 작동되는 볼트와 너트, 안테나, 콘덴서 등 말단의 통신장치에 대한 연구에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 류 교수팀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웃 세포들과 접합을 시도할 때 외부 환경신호에 둔감한 원인을 밝혀냈기에 세포 생리에 걸맞은 약물을 개발할 수도 있다. 예컨대 인슐린 수용체가 인체에 너무 빨리 들어가지 않도록 포스포리파제 D의 양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포 내의 특정 부위에 있는 다중 복합체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제대로 규명해야 세포의 통신 네트워크를 조절할 수 있다.

생체칩이 세포통신을 거들 수도

이런 세포통신에 관련된 연구에 따르면 세포의 통신 메커니즘은 동역학적 구조를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이차원적으로 이뤄지는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는 세포 사이의 접합이 다앙 환경신호에 따라 분리와 재접합 과정을 능동적으로 반복한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우리가 무질서하게 놓여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세포 안의 단백질도 알고 보면 매우 정교한 네트워크를 이루며 특정 자리를 지키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세포 사이에 이뤄지는 통신의 원리를 포괄적으로 밝히면 수용체들의 자극 시간을 원하는 대로 조절하는 신물질을 찾아낼 수도 있다. 언젠가는 세포 사멸에 관련된 네트워크를 재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신경생물학자들의 최근 연구는 세포통신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단백질 사이의 결합을 통해 조절되는 세포 반응을 전달체만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신경세포의 흐름을 조절하는 단백질도 있다. 예컨대 요티아오(Yotiao) 단백질은 신호전달 물질이 적절한 위치에 놓이도록 한다. 이때 미세 생체칩이 세포통신을 거들 수도 있다. 세포막이 특정 전압에 노출됐을 때 막공이 열리는 세포통신의 원리를 받아들인 생체칩이 세포활동을 조절하는 것이다. 만일 생체칩이 컴퓨터로 정교한 세포통신을 유도한다면 약물이나 유전물질의 주입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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