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사태를 증폭시킨 범인들을 찾아내지 못한 채 마무리된 검찰 조사… 묻지마 투자로 무한의 경쟁 부추키는 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부터 바꿔야
▣ 김동광 고려대 강사·과학저술가
얼마 전 인터넷 과학신문 는 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MRI)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화학상(1991)을 수상한 리처드 언스트 교수의 ‘21세기 사회상과 과학자’에 대한 의미심장한 강연 내용을 “부정한 과학을 몰락시켜야…”(이강봉 편집위원)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국내의 한 연구소 개원식 기념 세미나에 참석한 그는 오늘날 사회와 과학이 공통으로 처한 상황을 ‘무제한’(unlimited)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즉, 개인의 자유, 자유시장 경제에 대한 신뢰, 부자와 빈자 사이의 격차 등이 무제한으로 벌어지는 반면, 협력은 사라지고 무한 경쟁이 횡행하고, 윤리적 토대가 무한정으로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김우식 성명, 문제 덮고 잔치 벌여?
언스트 교수는 이러한 사회상이 곧바로 과학자의 환경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21세기는 과학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부자들은 과학에 무제한의 지원을 하고, 그로 인해 과학자들의 격차는 무제한으로 벌어지고 과학자들 사이의 협력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무한 경쟁이 채우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무한 경쟁에 떠밀려 힘겨운 부담을 안고 있는 과학자들은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서 거짓말이나 부정행위에 무감각해지고 이른바 ‘부정한 과학’(unjust science)을 양산하게 된다. 그는 21세기 과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 속도경쟁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부정한 과학을 몰락시키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황우석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던 당시 이 노과학자는 우리가 겪고 있던 사건의 본질, 그리고 이 사건을 둘러싼 좀더 넓은 정치경제적 맥락을 정확하게 짚어주었다.
그의 지적은 황우석 사태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검찰의 황우석 사태 최종 조사 결과 발표는 그동안 밝혀졌던 사실을 확인해주는 차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사실 검찰에 그 이상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들이 모두 손을 놓고 검찰과 황우석의 등 뒤로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도 칼을 빼들지 않고 눈치만 살피는 상황에서 황우석 사태의 사후 처리를 도맡으면서 지게 된 엄청난 부담감, 그리고 발표 시기와 처벌 수위를 놓고 고심한 흔적이 발표문 곳곳에 묻어 있다.
앞으로 법정 공방을 남겨두고 있지만, 검찰의 발표로 사실상 황우석 사건은 짧게는 지난해 11월 섀튼 교수의 결별 선언이 있은 뒤 6개월, 길게는 처음 에 논문을 발표한 2004년 이후 2년여의 기나긴 논쟁이 마감되는 셈이다. 검찰 발표가 있자 정부와 정치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태를 종결하려고 서둘렀다. 그동안 황우석 효과에 편승해 후광효과를 누려보려고 온갖 줄을 대고 후원회를 만들어주면서 문제를 은폐하고 사태를 악화시킨 장본인들은 뒤가 구린 탓에 입으로만 철저한 대책 마련 운운했을 뿐 하루빨리 악재에서 벗어나 선거판으로 달려가고 싶은 속내를 드러냈다. 야당들도 민주노동당만이 국정조사를 비롯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 추궁을 요구했을 뿐 한나라당은 정작 마음에도 없이 특검을 통한 규명을 주장했다.
더구나 김우식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이 지난 5월18일 취임 100일을 맞이하며 발표한 성명에서는 황우석 사태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그대로 드러냈다. 가장 첫머리에 나온 내용은 추락한 생명공학계의 사기 진작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생명공학 육성 보고대회를 열고 지속적인 연구지원 방침을 밝히겠다는 계획이었다. 황우석 사태에 대한 대응책은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은 연구비 부당 사용분의 회수, 연구윤리 체계 구축을 위해 27개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 대한 연구 진실 검증 시스템 구축이 전부다. 결국 정부 쪽에서는 이 사태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자세인 셈이다. 물론 이번 사태로 사기가 저하된 생명공학을 비롯한 과학계 전반의 분위기를 고무하기 위한 행사는 필요하다. 그렇지만 더욱 시급한 것은 이번에 드러난 과학계의 문제점, 그리고 정부의 과학정책 기조에 대한 반성과 대책 마련일 것이다. 문제를 대충 얼버무리고 덮은 채 잔치를 벌인다고 사기가 올라가겠는가?
“누구를 위한 과학인가”라는 물음부터
이번 사태에서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는 누구보다 부정을 직접 지시한 황우석, 부정을 행하거나 방조한 그의 공동 연구자들이다. 그들은 어떤 변명으로도 책임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설령 서울대와 순천대를 비롯한 소속 기관들의 솜방망이 처벌과 눈치보기로 아직 직위를 유지한다 해도 논문에 이름을 함께 올린 박기영을 비롯한 공동 연구자 전원은 스스로 모든 공직을 사퇴하고 연구 일선에서 영원히 물러나야 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과학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또한 이번 사태의 구조적 원인은 정책 실패이다. 그동안 쏟아진 숱한 진단과 분석에서 언론을 비롯한 여러 요인들이 거론됐지만 실질적으로 이번 사태를 배태하고 촉발한 가장 큰 요인은 대통령을 위시한 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기조 자체다. 앞에서 거론한 언스트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제한의 연구비를 쏟아붓고, 윤리적 토대를 무한정 무너뜨리고, 무제한의 스트레스를 주어서” 부정한 과학을 만들어낸 1차적인 원인이다.
과기부는 영수증 확인과 같은 기본적인 자금관리 체계를 무시하고 엄청난 연구비를 황우석에게 몰아주었고, 정부는 최소한의 형식적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최고 과학자’ 지위를 부여했다. 이러한 묻지마 지원은 결과적으로 독이 되어 돌아왔다. 검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종혁과 김선종 연구원은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확립이 실패를 거듭하자 황우석이 입버릇처럼 “이것만 되면 되는데… 나는 여한이 없는데”라며 독려하는 바람에 엄청난 심리적 중압감을 느껴 부정을 저지르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돈을 쏟아붓고 무조건 칭찬을 해대면 노벨상이 나올 것”이라는 천박하기 그지없는 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부정한 과학을 무한정 양산하는 구조인 셈이다. 이러한 부정의 정치경제학을 근본적으로 검토하고, 기조 자체를 “무엇을 위한, 그리고 누구를 위한 과학인가”라는 물음 위에 올려놓지 않는 한 부정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될 성싶지도 않은 황우석의 연구비 몇 푼을 회수하는 것으로 마치 할 일을 다했다는 듯이 다시 묻지마 투자를 계속하겠다는 과기부는 현재 부정의 정치경제학에서 핵심 축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언스트 교수의 말처럼 우리 과학자들은 오늘날 과학을 둘러싼 세계의 상황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는 황우석 사태를 무제한 경쟁이라는 세계 과학계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가 한국에서 곪아터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학자들에게 과도한 경쟁 구도 속에서 부정을 양산하도록 부채질하는 21세기의 사회적 상황을 똑바로 이해할 것을 촉구했다. 무제한의 투자, 무제한의 경쟁, 그리고 성과에 대한 무제한의 압력이 거침없이 실험실과 교실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아무도 이 ‘닦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연구자들 스스로 나서라
며칠 전 한 시민단체와 과기부가 공동으로 이공계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연구 진실성 간담회를 열었다. 황우석 사태에서 드러난 연구실의 비민주적 구조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려는 것이 이 간담회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꺼려 참석자를 구하기 힘들었다는 실무자들의 뒷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우리의 연구 환경이 아직도 많이 경직돼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그러나 연구자들 스스로 나서서 ‘무제한 경쟁’의 압력을 차단하지 않는 한 문제는 해결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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