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전국민의 댄서화’ 진행중인 한국, 춤은 과학적으로 어떤 효능 있을까… 심혈관계 질환 예방하고 짝을 찾거나 인간관계 신뢰도 높이는 데 특효</font>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대학강사 송아무개(37)씨는 매사에 의욕이 없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습관에 가까운 일이 되고 말았고, 자녀는 자신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너 해 전부터 송씨에게서 남편의 자리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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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미로에 갇혀 몸과 마음의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처지였다. 신경정신과 의사를 만나봐도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그렇게 지겨운 나날을 보내던 송씨는 우연히 댄스클럽의 발표회장을 찾았다. 탱고를 추는 친구가 공연을 하는 날 초대받은 것이었다. 그 뒤 6개월이 흐른 지금 송씨는 탱고 동작을 연마하며 지내고 있다. 춤을 통해서 사람과의 관계가 일상의 활력이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일찍 사망할 가능성 47% 줄어
사실 춤이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것은 오래된 일이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릴 때마다 온갖 춤이 등장하고 흥겨운 몸놀림에 빠져들지 못하면 ‘몸치’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게다가 방송에 선보인 ‘꼭짓점춤’은 월드컵 공식 댄스로 지정될 기미를 보이며 근육을 단련시키는 피트니스 클럽에 댄스 피트니스 강좌가 속속 개설되기도 한다. 여기에선 힙합과 솔 등에 심폐 기능, 유연성, 근력 강화 등의 운동 효과가 있는 동작을 넣는다. 온 국민의 댄서화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은 형국이다. 누구나 송씨처럼 춤으로 자신에게 드리운 심신의 그늘을 지울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정말로 송씨는 몸짓으로 심신의 활력을 얻은 것일까.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춤의 효과는 놀라울 정도다. 춤은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는 운동요법으로 널리 알려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심혈관 활동을 개선하고 심장질환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춤을 권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실험을 통해 검증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팔바로로재단 로페르토 페이도르 박사는 탱고와 밀롱가 등의 춤이 심장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연구자들은 남녀 댄서 20명이 참여한 실험에서 춤을 추기 전과 후에 산소소비량·심박수·호흡수 등을 검사했다. 특수 마스크를 쓰고 춤으로 인한 인체 변화를 측정한 것이다.
여기에서 춤이 심혈관 계통의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를 보이려면 최대 심박수의 50% 이상의 수치가 나와야 한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댄서들이 춤을 추었을 때의 심박수가 최고치의 60%에 이르렀다. 다른 심호흡 관련 수치들도 충분한 운동 강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실험을 진행한 페이도로 박사는 “아르헨티나의 대표적 춤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심혈관 계통의 질병을 예방하는 데 춤이 효과적인 것은 사실이다. 춤 동작이 심장질환 예방 차원에서 권장하는 운동 강도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환자들이 춤을 추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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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춤은 심장질환을 예방하면서 삶의 활력을 느끼게 한다. 만일 하루에 54㎈ 이상을 소모하는 춤을 춘다면 일찍 사망할 가능성은 47%, 심장질환으로 사망할 가능성은 62% 줄인다. 이 칼로리는 뜀뛰기나 테니스 경기를 9분, 계단 오르기를 7분가량 했을 때 소모되는 양이다. 이것을 춤으로 소화하려면 적어도 1시간 동안 강렬한 몸짓을 선보여야 한다. 물론 모든 춤에 적정 칼로리 감소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스포츠과학 연구자 정민욱씨는 “하루에 적당한 강도로 30분가량 춤을 추면 건강에 유익하다. 하지만 심장질환 예방 등의 효과까지 기대한다면 높은 강도로 춤을 추는 댄스 피트니스 등이 효과적이다”라고 말한다.
뛰어난 사냥꾼 찾는 본능
설령 운동 강도가 약한 춤이라 해도 나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춤은 짝을 찾기 위한 구애행동의 하나로 쓰인다. 나이트클럽이나 텔레비전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은 파트너를 쉽게 만난다. 여기에도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미국 럿거스대 윌리엄 브라운 박사팀은 여성들이 균형 잡힌 몸매를 가진 남성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브라운 박사팀은 자메이카 댄서 183명이 춤추는 동작만을 특수 카메라로 촬영해 여성들에게 보여줬다. 댄서의 용모는 드러나지 않고 팔꿈치, 귀, 손가락 등만 보이는 필름에서 여성들은 균형 잡힌 몸매를 지닌 댄서에게 호감을 보였다.
그렇다면 춤꾼의 균형 잡힌 몸매가 이성을 자극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단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한다. 얼굴 생김새보다 균형 잡힌 몸매의 남성이 더 빨리 달리면서 사냥감을 조준할 능력이 좋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식에 관한 부담을 떠맡은 여성들이 유전적으로 우수할 가능성이 높은 파트너를 선택한다는 말이다. 남성 춤꾼이라면 춤을 신체의 대칭성을 알리는 구애 수단으로 활용해볼 만하다. 하지만 생존 본능 차원에서 댄스 플로어에서 화려한 몸짓을 선보이는 춤꾼을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쯤 되면 춤꾼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뛰어난 사냥꾼 기질만 있었던 게 아니라 사회적 성취를 이룰 비법이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도 있다. 영국 리딩대 스티븐 미슨 교수가 주목한 게 바로 그것이었다. 미슨 교수는 선사시대의 인류에게 춤추는 능력은 살아남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을 것으로 여긴다. 혹독한 기후에서 생존해야 하는 이들에게 춤이 결속력을 다지고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구실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탁월한 실력을 지닌 댄서들의 유전자에 특별한 게 있는지를 살펴보는 실험을 했다. 인류의 춤추는 능력과 생존의 관계를 따지는 것이었다.
실제로 춤꾼들에겐 특별한 게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미슨 교수팀은 85명의 뛰어난 댄서와 그들의 부모에게서 DNA를 추출했다. 춤꾼들이 특정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는 의도였다. 예상대로 춤꾼들에겐 신경세포를 조절하는 두 개의 화학물질이 많이 있었다. 바로 세로토닌과 바소프레신이었다. 이들 신경호르몬은 의사소통에 깊이 개입한다. 탁월한 춤꾼은 신체적인 능력의 차이보다 유전자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겠다. 예컨대 바소프레신은 스트레스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면서 인간관계의 신뢰도를 높여 사회적 만족도를 높이는 구실을 한다. 송씨의 활력도 여기에서 비롯된 셈이다.
춤 잘추는 유전자 있다
지금이라도 각자의 춤꾼 기질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인체 어딘가에 숨겨진 춤꾼 유전자를 깨우면 심장질환을 예방하면서 사교성을 높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송씨처럼 춤에 빠져 그늘진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 구조가 춤을 위한 진화 경로를 밟을 것은 아니다. 아무나 균형 잡힌 몸매로 무대를 휘어잡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도 춤꾼의 꿈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유전적으로 물려받지 못한 춤꾼 기질을 꾸준한 노력으로 생성시킬 수도 있지 않은가. 일단 간단한 동작으로 이뤄진 꼭짓점춤을 따라 하면서 자신의 춤에 관한 기본적 자질을 살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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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꼬리춤의 비밀</font>
<font color="darkblue"> 먹이의 위치와 먹이와의 거리를 동료들에게 보여줘</font>
숨은 1mm의 과학
꿀벌들도 춤을 춘다. 그것도 거의 언어 수준의 정교한 동작을 보여준다. 네안데르탈인이 춤으로 의사소통을 했듯이, 벌들도 춤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다. 한 무리의 벌이 있을 때, 정찰벌은 앞으로 나가서 ‘사냥감’을 찾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만일 꿀이 있을 만한 꽃을 발견하면 무리로 돌아와 숫자 8을 옆으로 뉘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꼬리춤’을 춘다. 이 춤 동작을 확인한 채집벌들은 어딘가로 날아가 사냥을 시작한다.
꿀벌의 꼬리춤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양봉인이라면 꿀벌이 먹이활동을 마치고 벌통으로 돌아와 동료들을 위해 춤추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독일의 동물행동학자 카를 폰 프리시는 곤충의 ‘각인’ 효과를 연구해 노벨생리학상(1973)을 받았다. 그는 꿀벌이 춤을 추면서 지시하는 방향이 태양을 이용해 밀원의 방향을 암시하고, 배를 흔드는 강도(속도)는 밀원과의 거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태양을 향한 춤은 먹이와의 각도를 뜻하고, 춤의 속도가 빠르면 거리가 가깝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기는 쉽지 않았다. 벌들이 춤을 해독할 수 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꿀벌의 꼬리춤이 벌통 안에 있는 다른 꿀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꼬리춤은 밀원 냄새를 풍겨 다른 꿀벌들을 끌어모으는 수단일 뿐이다.
이처럼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꿀벌의 꼬리춤에 관한 비밀이 밝혀졌다. 영국 로담스테드 농업연구센터의 재닛 라일리 박사는 인위적으로 먹이원을 설정한 뒤 꿀벌에 레이더 무선기를 장착해 꼬리춤 가설을 검증했다. 이 실험에서 정찰벌의 꼬리춤을 확인한 꿀벌들은 벌통에서 250m나 떨어진 밀원까지 곧장 이동했다. 꼬리춤 동작으로 밀원의 위치를 확인했기에 거리낌없이 비행을 했던 것이다. 춤으로 말하는 생각하는 꿀벌들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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