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태그와 비행기·자동차 제작에 활용되며 가장 유망한 소재로 떠올라
환경오염의 치명적 약점 극복하기 위한 생분해성 플라스틱 개발도 시동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만일 플라스틱이 없다면 우리의 일상생활은 지속될 수 있을까. 아마도 문명의 이기를 벗어나 산간벽지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제대로 지내는 게 불가능할 것이다. 주방에서 밥상을 차리는 게 거의 불가능할 것이고 거실에서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생각하기 힘들다. 온갖 가전기기와 컴퓨터, 자동차 등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이 스며들지 않은 게 거의 없다. 최근에는 플라스틱이 금속과 실리콘의 영역까지 넘보며 가장 유망한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기존의 플라스틱에 유리섬유나 탄소 등을 첨가해 만든 ‘엔플라’(Enpla·엔지니어링 플라스틱)는 자동차와 전기·전자 산업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렇게 기존의 플라스틱이 다양한 진화의 경로를 밟고 있다. 문제는 석유에 기반을 둔 플라스틱이 기능을 확장해 쓰임새를 넓히더라도 언젠가는 폐품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데 있다. 그래서 환경에 덜 해로운 물질과 식물을 이용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사용 뒤에 토양으로 환원돼 미생물이나 효소에 의해 완전히 분해된다. 앞으로 석유 합성 플라스틱은 일상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면서 특수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대신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일상용품 소재로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친환경 제품이 경제성을 얻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일상 속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플라스틱의 다양한 진화 경로를 따라가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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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태그 플라스틱
이른바 마법의 돌로 불리는 전자태그(RFID·무선주파수인식칩)는 일상생활에 일대 혁명을 일으킬 주목받는 전자기기다. 바코드를 대신해 상품의 유통 과정을 추적하고 재고를 파악하는 등 업무의 효율을 높이면서 사람의 잇몸이나 피부 속에 이식되어 신용카드나 신분증으로 활용되는 생체 서비스를 실현할 예정이다. 애당초 전자태그는 탄도미사일을 추적하기 위해 1970년대에 개발됐다. 작동 원리도 간단하다. 전원이 필요 없는 태그 안에 전자회로를 심어 멀리 떨어져 있는 판독기에서 에너지를 받아 정보를 교환하는 식이다. 핵심 구실을 하는 실리콘 칩과 주파수를 감지하는 안테나를 유리나 플라스틱 모듈에 넣어 만든다.
문제는 전자태그가 간단한 원리에도 실리콘 칩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가벼워져서 일상의 모든 물건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도 실리콘을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 히타치사가 개발한 극소형 전자태그 ‘뮤u칩’도 가로세로 0.4mm로 좁쌀 크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데이터를 실리콘 칩에 담아야 했다. 이렇게 전자태그가 실리콘 칩에 매인다면 할인점에 가득한 상품에 매달리는 게 쉽지 않다. 1천원짜리 상품에 수백원이나 들여 전자태그를 매달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순천대학교 지역협력연구센터(센터장 조규진 교수)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유기물질과 잉크젯 프린터만을 사용해 만드는 저가형 RFID 칩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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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플라스틱 전자태그는 반도체 공정에 따라 제작할 필요가 없다. 종이나 플라스틱, 나무 등 이용 가능한 모든 기판에 인쇄를 할 수 있기에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기존 실리콘 전자태그보다 100배나 저렴한 5원이면 만들 수 있다. 아주 단순한 기능만 넣는다면 1원짜리 제품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순천대 연구팀이 개발한 플라스틱 전자태크는 (주)파루가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동네 슈퍼마켓에 전자태그 판독기가 설치되는 날도 다가오고 있다. 머지않아 대형 할인점 계산대에서 쇼핑한 물건을 일일이 풀어놓는 수고도 사라질 것이다. 물론 주파수 해킹으로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일을 막는 기술 개발도 절실하다.
탄소섬유 플라스틱
자동차의 연료 효율을 높이려면 차체의 무게를 줄이는 게 관건이다. 그래서 자동차 회사들은 가볍고도 강한 신소재를 개발해 차체와 부품에 적용하려고 한다. 대표적인 게 탄소섬유다. 탄소섬유 합성물질은 kg당 강철보다 6~12배의 충돌 에너지를 흡수하는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문제는 자동차에 적용하기에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데 있다. 아무리 자동차 제작 비용을 줄인다 해도 고가의 탄소섬유를 적용하기엔 어려움이 많은 것이다. 이렇게 고가의 장벽을 뚫지 못하던 탄소섬유가 날갯짓을 하고 있다.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CFRP·carbon fiber reinforced plastic) 형태로 항공기에서 경제성을 인정받아 자동차로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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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항공사들이 연속압축 성형기술로 만든 탄소섬유 플라스틱을 비행기 제작에 적용하고 있다. 예컨대 ACM 마르크로드프사가 독일 라우페임에서 개발하는 에어버스 A340은 객실 측면 패널에 탄소섬유 보강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이렇게 줄인 무게는 비행기당 11kg에 지나지 않는다. 비행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지만 경제적인 효과는 예상 밖으로 많다. 그만큼만 가벼워져도 연간 100억원 이상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게 제작사의 판단이다. 비행기의 무게를 1g만 줄여도 10만원가량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몇g이라도 줄여야 이익을 남기는 처지에서 탄소섬유 플라스틱만 한 대안은 없어 보인다.
이렇게 탄소섬유 플라스틱은 항공기의 무게를 줄이면서 자동차에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감량보다 효과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우선 차량 무게의 30%를 차지하는 섀시는 차량 경량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이를 줄이는 신소재로 탄소섬유 플라스틱만 한 것은 없다. 만일 자동차 구동축에 탄소섬유를 사용하면 강도와 내구성은 철강에 비해 손색이 없으면서도 무게를 150kg이나 줄여 연비를 10% 이상 높인다. 이미 경량화 소재로 채택된 알루미늄(후드, 브레이크 등)은 주철보다 30~35% 가볍고, 마그네슘(시트 프레임, 에어백 프레임 등)은 40~50%나 가볍다. 이들도 언젠가는 고온에서도 활동도를 높인 탄소섬유 플라스틱에 자리를 내줘야 할 것이다.
생분해성 플라스틱
이미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일회용품이나 쓰레기 봉투 등의 형태로 널리 쓰이고 있다. 국내에서만 해도 40여 개의 생분해성 플라스틱 제조업체가 옥수수·밀·고구마 전분, 밀대, 갈대펄프, 왕겨 ,목재펄프 등을 이용해 천연물 용기를 개발하고 있다. 문제는 천연물 소재의 가공성이나 유연성이 기존의 석유합성 플라스틱보다 떨어져 일부 제품에만 한정돼 사용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SK네트웍스와 에콜그린이 일반 석유합성 플라스틱보다 성능이 뛰어난 생분해성 플라스틱 소재 ‘에콜그린 PLA(Poly Lactic Acid)’를 공동으로 개발해 상용화에 나섰다. 이 플라스틱은 휴대전화나 컴퓨터·공기청정기·정수기 등의 외장재와 가구 등에 적용될 예정이다.
에콜그린 PLA는 옥수수 전분을 발효시켜 만든 고분자에 무기광물계 첨가제를 마이크로캡슐 코팅으로 복합하는 기술로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만들었다. 그동안 제기된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한계도 거뜬히 돌파했다. 굴곡이나 인장력·충격 강도 등 기계적 물성치를 석유 합성 플라스틱 수지 이상으로 높인 것이다. 이미 공기청정기·비데 등의 사출성형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쳐 시장에 진입하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수요가 1억t에 이르는 상황에서 에콜그린 PLA가 얼마나 시장을 장악할지 주목된다. 생분해성 플라스틱 업계에 따르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시장 규모만 해도 10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앞으로 식물 유래 수지는 자동차 내장용 수지 재료로도 쓰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는 사탕수수나 옥수수 등의 당류와 전분을 발효시켜 얻은 호박산에 대나무의 섬유를 조합한 ‘그린 플라스틱’을 만들었다. 그린 플라스틱은 석유화학 수지나 목재 하드보드 등의 대체품으로 자동차에 장착될 예정이다. 호박산과 대나무 섬유를 이용한 수지 재료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석유 유래의 것에 견줘 절반가량 줄일 것으로 알려졌다. 휘발성 유기화합물은 목재 하드보드에 견줘 85%나 줄인다고 한다. 현재로선 기존의 것보다 비싼 게 흠이다. 하지만 미쓰비시 자동차는 대량생산이 이뤄지면 경제성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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