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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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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강국’을 향한 카운트다운

등록 2005-05-05 00:00 수정 2020-05-03 04:24

우주개발 다극화 시대 맞아 한국도 야심찬 계획 설립… 국내 기술로 인공위성 발사하는 것이 첫 관문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우주의 붉은 별이라 불리는 아시아 최초의 우주비행사 양리웨이가 지난 2003년 10월16일 무사히 착륙 기지에 귀환했을 때 우리는 중국의 우주 기술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주개발 반세기 만에 11세기에 화전(불화살)으로 우주를 향했던 천년의 꿈을 이뤄낸 때문이다. 양리웨이는 ‘겨우’ 21시간 동안 지구 상공 350km 고도의 원형 궤도를 14바퀴 돌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수많은 실험 과정에서 적잖은 인명피해에 대한 ‘넉넉한 보상’으로 손색이 없었다. 미국과 러시아의 아성을 허물며 과학기술 강대국임을 전세계에 과시한 것이다. 그리고 1년6개월이 지난 지금, 중국이 달 탐사 프로젝트로 우주에 깊숙이 다가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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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개발진흥법 제정안, 밑거름 될까

중국이 우주개발 다극화 시대를 주도하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우주 러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를 우주개발 원년으로 삼아 2015년 세계 10위권의 우주 강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10여년 전에 ‘국가우주개발 중장기계획’을 수립해 우주 프로그램 가동을 예고했다. 하지만 연구원 중심의 백화점식 프로젝트에 치중한 탓에 장기적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6월 우주개발중장기계획 기획사업팀(팀장 장영근 항공대 교수)을 꾸려 국내외 우주개발 환경의 변화를 반영해 국가 차원의 개발을 촉구하는 세 번째 수정안을 마련했다.

우주 정복의 야망이 아시아 각국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우주개발을 늦출 수는 없었다. 예상대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는 지난 4월22일 전체회의를 열어, 우주개발 사업의 체계적 추진을 위해 ‘국가우주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뼈대로 한 우주개발진흥법 제정안을 가결했다. 오는 5월4일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될 예정인 이 법안은 우리나라의 우주 강국 도약에 밑거름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신설되는 대통령 직속 국가우주위원회(위원장 과학기술부 장관)는 우주개발과 관련한 주요 정책을 심의·조정하며,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을 5년마다 새롭게 수립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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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우리나라가 우주 강국으로 발돋움하게 되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지난 1992년 8월 영국 서레이대학의 기술지원으로 소형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프랑스의 아리안 로켓을 이용해 쏘아올려 세계에서 22번째의 상용위성 보유국이 되었다. 이것을 발판으로 우주에 대한 꿈을 키웠지만 아직까지 획기적인 진전은 없었다. 인공위성 기술력만 해도 미국, 러시아, 유럽, 일본, 중국은 물론 인도, 브라질 등에 비해서도 뒤떨어진 게 사실이다. 조선대학교 우주항공학과 김재수 교수는 “우리나라도 위성체를 발사하고 관리하면서 기술적 잠재성을 인정받고 있다. 위성 개발과 활용, 발사체 등의 기술력을 동시에 갖춰야 우주 강국의 토대를 갖출 수 있다”고 말한다.

후발주자의 설움, 정지궤도 포화 상태

최근 우주 선진국들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만 해도 올해 항공우주국(NASA)의 예산으로 165억달러를 배정해 우주 정복의 야망을 재점화했다. 우선 지난 2003년 2월 콜롬비아호가 지구에 재진입하면서 일어난 폭발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사고로 발이 묶인 우주왕복선의 비행 재개를 신호탄으로 인간의 달 정복, 민간 참여형 우주 프로그램 육성 등에 나설 예정이다. 오는 20일 발사 예정인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국제 우주정거장에서 임무를 완수하고 성공적으로 귀환하는 게 일차적인 목표다. 여기에 CEV(Crew Exploration Vehicule)라는 새로운 유인 우주선을 개발해 2014년부터 운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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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중국은 우주를 향한 야망을 숨기지 않는다. 러시아의 소유주 우주선을 업그레이드한 선저우로 우주 기술력을 한껏 뽐낸 중국은 지난해만 해도 8차례에 걸쳐 10개의 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게다가 유인 우주비행으로 달 표면에 대한 탐측 공정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중국의 숨가쁜 도전은 올해 선저우 6호의 우주 비행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때는 비행시간이 5일로 우주 비행사도 2명으로 늘어난다. 이때 1명은 비행선을 조종하고 1명은 궤도 선창에서 과학실험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중국은 10년 내에 러시아와 유럽의 우주기술을 따라잡으려고 한다.

아시아 최초의 유인 우주선 발사 성공을 중국에 내줘 자존심이 구겨진 일본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얼마 전 일본 과학기술심의회는 ‘2006~2010 과학기술 기본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미래를 먹여살릴 10대 꿈의 기술’을 발표했다. 놀랍게도 10개 가운데 3개가 우주에 관련된 기술(위성 기술, 지구 통합관측, 우주 수송)이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동안 미국의 우주왕복선을 임차하던 데서 벗어나 위성의 수리와 회수, 행성간 수송이 가능한 우주 수송 시스템을 2015년까지 갖추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미국의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을 본떠 시행하다 1990년대 중반에 포기한 ‘HOPE 프로젝트’를 재가동하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주 선진국들이 달과 화성, 그 너머의 먼 우주로 향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후발주자의 ‘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예컨대 방송·통신 등에서 활용도가 높은 정지궤도 위성을 쏘아올릴 자리가 부족한 것이다. 일본의 정지궤도 위성은 18개, 중국은 14개, 우리나라는 3개이다. 한·중·일이 보유한 35개의 위성은 지구 적도 상공(위도 0도)의 고도 3만6천km 안팎의 지점에서 동경 2도 간격으로 놓여야 제구실을 한다. 모두 180개가 적정 위성 개수임에도 벌써 338개가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이런 까닭에 무궁화 5호(2006년 발사 예정)와 통신해양기상위성(2008년 발사 예정)의 자리를 아직까지 확보하지 못했다.

‘스페이스 클럽’ 2007년에 가입 예정

인공위성의 서비스 영역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위치 확보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우주 기술력 못지않게 지구 협상력이 우주개발의 관건으로 떠오른 셈이다. 만일 우리나라가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우주 강국 원년은 한낱 빛바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위성 50여개의 자리를 신청하고 중국, 일본, 베트남 등 관련국과 협상에 나섰다. 중국 광저우 인근에서 지난 4월25일부터 열린 ‘한-중 양자협상’에 참석한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현재의 정지궤도 위성만으로는 서비스에 한계가 많다. 하지만 한반도 상공을 확보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사정이 어찌됐든 우주를 향한 우리나라의 발걸음은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아시아 네 번째 ‘스페이스 클럽’ 가입국이 되겠다는 국가적 숙원을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스페이스 클럽은 자국의 로켓으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우주산업 분야 선진국들의 모임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중국, 인도 등이 가입했으며 북한이 준가입국으로 대접받는다. 일본은 소형 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우주발사체 ‘람다(L)-4S’를 이용해 1970년 2월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 이보다 두달 늦은 1970년 4월 중국은 러시아의 지원으로 개발한 중거리탄도미사일을 개량한 우주발사체 ‘창정(CS)-1’로 위성을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나라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은 인공위성을 순수 국내 기술로 발사하는 것은 2007년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때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에 한국형 우주센터가 완공돼 100kg급 저궤도 과학기술위성 2호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개발한 소형 위성 발사체(KSLV-1)로 쏘아올려 스페이스 클럽에 가입할 예정이다. 그 뒤를 이어 과학기술위성 3호, 1t급의 다목적 실용위성 5호 등 2015년까지 모두 9기의 인공위성을 우리의 발사체에 실어 우주공간에 올릴 계획이다. 국내 최초의 지구 관측용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1호를 지난 1999년 12월 미국 서부 반덴버그 발사장에서 쏘아올리는 데 252억원이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예산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양한 기술력 확보하는 것이 중요

우리나라는 스페이스 클럽 가입을 위한 기초 체력을 튼실히 할 예정이다. 일단 오는 11월로 예정된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2호를 러시아 북극해 근방의 플레세츠크 우주센터에서 고도 685km 궤도에 성공적으로 발사하는 게 급선무다. 이스라엘 연구진과 공동으로 개발한 카메라는 1m 수준의 해상도를 보여 6.6m인 아리랑 1호보다 무려 40배나 정밀한 영상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주진 다목적위성사업단장은 “인공위성 분야의 기술력은 아리랑 2호 발사를 통해 세계 6위권에 진입하게 된다. 현재 과제를 공모하는 아리랑 3호에서는 본체는 물론 탑재체 설계까지 국내 독자적으로 개발하려 한다”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의 우주기술력은 500억달러에 이르는 우주산업 시장의 중심에 다가서기 힘든 게 사실이다. 문제는 우주산업 시장이 갈수록 비약적으로 성장해 2015년이면 45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는 것이다. 군사적 관심사로 시작된 우주개발이 미래 핵심사업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물론 국가 차원의 전략적 투자가 이뤄진다고 해서 당장 기술적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우주에 관련된 다양한 기술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우주항공은 물론 정보기술, 생명공학 등도 우주라는 거대한 실험실을 이용해야 한다. 우주가 첨단기술의 산실로 떠오르는 지금, 우주 강국이 세계를 움켜쥘 게 틀림없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 언제 탄생할까



우주기술력의 핵심은 유인 우주기술이다. 요즘 우주 선진국들은 달을 우주 탐사, 특히 화성 탐사를 위한 기술 시험 기지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들 국가는 우주 탐사 기관들 사이의 달과 항법에 관한 통신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뜻을 모으고 우주 탐사에 대한 단계별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2010년까지 로봇 탐사선을 달에 착륙시킨 뒤, 15개국이 유인 탐사를 준비하면서 신기술을 시험할 수 있는 국제 로봇 빌리지를 건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언제쯤 우주인을 탄생시킬 것인가. 지난해 9월6일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은 “12월까지 우주인을 선발하는 계획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시 오 장관이 밝힌 우주인 선발 계획의 핵심은 국내 최초로 우주인 후보를 선발해 러시아에서 우주 적응 훈련을 받도록 한 뒤 러시아의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국제 우주정거장에 도착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이 ‘우주인 프로젝트’는 우주인 탄생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우주산업의 질적 도약을 이뤄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우주인 프로젝트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올해 예산으로 15억원을 배정한 게 전부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원자를 받아 6개월에 걸친 선발 심사를 공개적인 국민 이벤트로 펼치겠다고 했지만 애드벌룬성 계획이었을 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 되어 우주를 가슴에 품으려던 사람들로선 때를 미룰 수밖에 없다. 민간 우주선 ‘스페이스십원’(SpaceShipOne)이 대기권 너머 우주공간 비행에 성공했는데도 우리나라의 우주인 프로젝트가 마냥 미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기술부가 내세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과기부 우주항공기술과 김희선 서기관은 “우주인 프로젝트를 주도할 민간 사업자를 선정하지 못했을 뿐”이라며 “국민적 이벤트로 만들려고 방송사를 대상으로 사업자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방송사들이 우주인 탄생에 소요되는 200억원 안팎의 비용을 감당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방송사들로서는 제정 예정인 ‘우주개발진흥법’에 따라 정부 지원금이 확대되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200억원이라는 액수가 방송사 홍보 비용치고는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탓이다.
이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우주인 선발 공고는 내년으로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자칫 2007년쯤 국제 우주정거장에서 10여일간 머물게 한다는 계획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1차 합격자 10여명을 선발해 6개월 동안 국내 교육을 한 뒤, 예비 후보자 2, 3명이 러시아의 유리 가가린 우주비행훈련센터에서 1년6개월 동안 훈련을 받으면 2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다. 보통 우주인 배출 과정에 최소한 3년이 걸리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우주인 탄생은 2008년을 넘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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