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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정치의 장난감이 아니다

등록 2004-12-03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정치적 이익 위해 연구과정 조작하는 부시 정부…‘스타 과학자’ 이용하는 노무현 정부도 위험 </font>

▣ 김동광/ 과학저술가·고려대 강사

오늘날 우리는 빠른 과학발전의 속도에 경탄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나오는 새로운 연구 결과들에 대한 보도를 접하다 보면 일반인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해당 분야의 연구자나 기술자들도 새로운 진전을 따라잡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것이 과학지식이나 기술만은 아니다. 현란한 신기술의 등장 뒤에 가려져서 우리가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과학의 성격이 크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들 중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최근 부쩍 그 심각성이 드러나고 있는 ‘과학의 정치화’이다.

자문 과학자 입맛 맞는 사람으로

지난 2월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관심 있는 과학자 연합’(UCS·Union of Concerned Scientist)에 속한 62명의 저명한 과학자는 부시 행정부를 대상으로 ‘정책 결정 과정에서 과학의 순전성을 복원하라’(Restoring Scientific Integrity in Policymaking)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가운데는 데이비드 볼티모어, 레나토 둘베코와 같은 노벨상 수상자들도 여럿이 포함됐다. 그리고 지난 7월8일에는 다시 4천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부시 행정부에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과학을 조종하고 억압하는 처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번에는 48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127명에 달하는 미 국립과학아카데미(NAS) 회원들이 대거 포함되어 성명서에 한층 무게를 실어주었다.

이렇게 많은 과학자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UCS 의장 쿠르트 고트프리드는 지난 7월에 발표한 ‘21세기 미국의 과학 정치화’에 대한 성명에서 부시 행정부가 집권한 이래 줄곧 자신의 “편협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어젠다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과학을 왜곡했다”고 비판하면서, 그 사례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우선 가장 큰 사례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교토 기후협약의 비준 거부를 위한 일련의 조치들이었다.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대기오염 물질 방출에 대한 규제를 피하려는 부시 대통령의 결정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행정부는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과학자 단체인 NAS와 정부 과학자들, 그리고 전문가 집단들에서 나온 발견들을 거짓 설명했다. 그 결과 2003년 환경보호국(EPA)에서 나온 보고서 중에서 기후변화 부분을 대폭 수정할 것을 요구했고, EPA 관계자들은 어쩔 수 없이 골자에 해당하는 기후변화와 그 결과에 대한 토론 부분을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대기오염 방지를 위한 두개의 법안에 대한 해석에서도 마찬가지의 왜곡이 빚어졌다. EPA는 민주-공화 양당 제휴로 상원이 제안한 법안이 행정부가 제출한 법안보다 국민 건강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행정부는 자신들의 법안이 더 향상된 것이라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닉슨과 포드 대통령 시절에 EPA 책임자를 맡았던 러셀 트레인은 “과거 책임 있는 기관이 행한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발견을 기초로 이루어지던 규제가 오늘날 급속도로 백악관과 정치적 고려에 기초한 규제로 바뀌고 있다”라고 한탄했다.

연구지원, 투명한 선정 거쳤나

이러한 왜곡은 정부와 유엔에 중요한 과학적 자문을 담당할 과학자들을 실력이나 분야 적합성보다는 부시 행정부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채워넣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졌다. 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가 미 국립보건원(NIH)의 과학자문위원회를 과학자로서는 별반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부시의 정치적 어젠다를 지지하는 인사들로 채워넣었다고 한다. 또한 세계보건기구(WHO)에 자문역으로 파견하는 전문가의 선발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조치를 취했다. 그동안에는 WHO가 미국의 정부 과학자 개인에게 국제 과학자 패널에 참여해달라고 초청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미국 정부가 역사상 최초로 전문가 파견 요청을 보건사회복지성을 경유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또 보건사회복지성은 파견하는 전문가에게 “항상 미국 정부와 미국 정부 정책을 대표한다”는 점을 염두에 둘 것을 촉구했다고 한다.

지난 10월9일치 는 ‘미국 정부, 과학을 놓고 정치놀음을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 정부가 자신들이 과학에서 나오기 원하는 대답을 기초로 판단을 내리고, 그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과학적 과정을 조작한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과학의 정치화로 인한 폐해를 지적했다.

그동안 과학기술 정책에서 잇달아 무리수를 두고 있는 노무현 정부도 ‘과학의 정치화’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 것 같다. 특히 최근 과학기술부는 국회에 2005년도 과학기술진흥기금 운영계획안을 제출하면서, ‘최고 과학자 연구지원’ 사업을 신설해 2014년까지 모두 54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인터넷 저널 에 실린 한 기사는 “이 ‘최고 과학자 연구지원’ 사업은 사실상 황우석 교수를 위해 만들어진 사업”이라고 꼬집었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05년 한해에만 황우석 교수에게 265억원이라는 큰 연구비가 지원된다고 한다.

물론 중요한 연구에 대해서라면 200억원이 아니라 2천억원이 지원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식적이고 투명한 선정 과정이나 연관 분야 과학자들을 비롯한 포괄적인 의견 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지원계획을 수립한다면 현 정부는 ‘과연 막대한 연구비를 공정하게 배분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해야 할 것이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생명공학계 내부에서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해당 연구가 그 정도의 연구비에 걸맞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 좀더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중요한 점은 현 정부가 유명세를 타고 있는 특정 과학자나 그 연구 주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노골적인 경향이다. 다시 말해서 정치·경제·외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패착을 거듭해온 노무현 정부가 대중적으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과학자를 집중적으로 지원해서 다른 분야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한 강연회에서는 유명 과학자와 사진을 찍으려고 여야 국회의원들이 줄을 서 기다리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생명윤리기본법 사문화하나

더구나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윤리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다. 사회 일각에서는 배아연구의 윤리 문제를 다루는 생명윤리기본법이 내년부터 발효될 시점에서, 정부가 미리 나서서 윤리법의 의미를 퇴색시켜 사문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UCS 의장 고트프리드는 “부시가 과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과학적 주제에는 관심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목적에 맞게 연구 프로세스를 조작하려고만 했고, 그 결과 기후변화, 에너지, 생식기술, 환경 등에서 잘못된 결정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노무현 행정부는 그의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과학자 사회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한 일방적인 정책 결정과 지원은 특정 분야의 편향적 비대화를 낳을 수 있고, 행정부의 인기몰이식 정책으로 인한 과학의 정치화는 한 나라의 과학 연구와 그 성격까지 심각하게 왜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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