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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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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우리를 무력하게 한다

등록 2004-04-23 00:00 수정 2020-05-03 04:23

먹고 자고 소비하는 것만 허용하는 주거 형태… 효율성의 지배 아래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

김동광/ 과학저술가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집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일이 있었다. 주된 내용은 새로 짓거나 수리를 한 집의 내장재와 페인트 등에서 나오는 유독성 물질이 거주자의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극단적인 사례를 많이 다루어서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 새집에 들어가기를 꺼리는 신종 증후군을 낳기도 했지만, 모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둘러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과연 집의 내장재와 페인트에서 나오는 유해물질만이 사람을 공격하는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주택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공간의 특성, 그리고 우리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아파트 중심의 주거 형태는 우리에게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일까?

‘집장사’ 주택들의 업그레이드

최근 한 일간지에 경기도의 전체 주택수 대비 아파트 비율이 54.4%에 이르렀고, 경기도에 새로 조성된 어떤 도시의 경우 아파트 비율이 무려 90%나 된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굳이 이런 수치를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주거 형태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높은지는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이처럼 수도권에서 아파트의 비율이 높은 까닭은 인구밀집에 따른 주택 수요를 해소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땅은 좁은데 인구밀도는 높으니 당연히 토지 이용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아파트를 짓고, 아파트들이 점차 고층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설명만으로는 인구밀도가 그리 높지 않은 지방이나 농촌 지역에까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는 고층 아파트 건설 현상을 이해하기 힘들다. 또한 이를 집값 상승을 노리는 투자와 같은 경제적인 요소만으로 환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미 아파트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서 선호받는 주거공간으로 자리잡았고, 다른 한편으로 아파트를 선호하게 만드는 사회문화적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아파트 문화라 부를 수 있는 일련의 선호 체계들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아파트 문화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경제발전을 이룬 우리의 근대사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 와중에 우리는 모든 것을 얼마나 효율적인가, 얼마나 생산적인가라는 잣대로 가늠하는 데 익숙해졌다. 40대 이상이면 누구나, 1960년대 서울 외곽지역에 벽돌을 찍어내듯 똑같은 모습을 한 주택들이 당시 이른바 “집장사”라 불리는 주택건설업자들에 의해 줄지어 지어졌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이 집장사 주택들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이 오늘날의 아파트 단지들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아파트에 길들여졌다. 그 이유는 아파트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장려하는 덕목과 일치하는 구조를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아파트는 무척이나 편리하고 효율적인 공간이다. 웬만한 규모의 아파트 단지들은 거의 중앙난방 체계를 채택하며, 쓰레기 수거와 하자 보수 등 일상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문제를 비교적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은 규격화를 통한 효율성의 극대화라고 할 수 있다. 즉, 주거 개념을 낮의 직장생활을 떠받쳐주는 수면, 취사나 세탁과 같은 필수적인 기능들 중심으로 환원하고 그 밖의 요소들을 대폭 버리는 방식이다. 1960년대 주택업자들에 의해 공급됐던 규격화된 집들도 손바닥만한 마당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만발한 뜰의 이미지를 간신히 집의 구조 속에 허용할 수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가 집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이런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당시 주택에는 대부분 속칭 ‘식모방’이라 불리는 관보다 조금 큰 크기의 방이 부엌에 붙어 있었다. 이 방은 여성 노동력의 수도권 집중을 가능하게 하면서 이후 공단으로 흡수될 ‘여공 예비군’들을 키워낸 공간이었다.

그러나 아파트는 그런 잔존물마저 털어내고 이른바 베드타운이 요구하는 핵심 요소들만을 집약한 구조를 정착시켰다. 따라서 아파트의 구조는 한치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 우리들의 바쁜 도시 생활을 투영한다.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또 다른 방식은 밀폐성의 추구다. 철문을 닫으면 아파트의 공간은 외부와 거의 완벽하게 단절된다. 역으로 열쇠와 보조키만 채우고 나오면 누구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집을 비우며 가족 구성원들 모두 바삐 움직여야 하는 우리 가족들은 이 밀폐성을 얻기 위해 기꺼이 다른 요소들을 포기한다.

이처럼 아파트는 우리에게 어떤 주거 형태와도 비교할 수 없는 효율성을 부여했지만, 모든 기술이 그러하듯 처음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면·취사·세탁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철저히 한정된 아파트는 손바닥만한 마당이나 헛간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곳은 직장생활을 뒷받침하는 필수 기능들 이외에 다른 활동을 허용하지 않는 공간이다.

공동체 문화 붕괴의 일등 공신

한겨울에 눈이 쏟아져도 아파트 주민들은 별반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파트에는 그 흔한 빗자루, 삽 한 자루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도구들은 단지 물질에 그치지 않지만, 우리를 마을 공동체와 연결해주는 소통 수단이 된다. 따라서 아파트의 공간이 웬만해서는 이런 물건들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한 집에서 쓰는 의자나 탁자가 고장나도 아파트에서는 손수 수선하기 힘들다. 변변한 연장도 없을 뿐더러 망치 두드리는 소리라도 날라치면 곧바로 아랫집에서 항의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파트에는 고장난 물건을 쌓아둘 여유공간도 없다. 따라서 이 구조는 우리에게 “고장나거나 쓰지 않는 물건은 빨리 버려라. 그리고 새것을 다시 사라”고 부추기는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파트의 구조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미덕을 체화한다. 우리나라에서 DIY(Do It Yourself)라는 자작 목공 취미가 널리 확산되지 못하고, 요즘 들어 부쩍 공작이나 모형 제작 취미를 가진 중고등 학생들을 찾아보기 힘든 원인도 그런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 아파트의 기본구조와 연관될 것이다.

또한 아파트의 밀폐성은 우리 사회의 공동체 문화를 매우 빠른 속도로 붕괴시켰다. 아파트에서는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활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전통적으로 장례는 자신이 살던 집에서 치러졌지만, 아파트는 가족 구성원의 장례식마저 허용하지 않는다. 이 구조에서 장례는 병원의 영안실로 대표되는 장례 시설의 규격화된 상품을 소비하는 행위로 변화된다. 아파트는 살아서 활기차게 경제활동을 하는 연령층의 사람들을 위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고층 아파트가 노약자와 아이들에게 친화적이지 않은 공간임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사 역시 품앗이에서 규격화된 아파트의 이사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이삿짐센터에 맡겨진다. 이사와 장례로 대표되는 주요한 가정의 행사들이 불과 수십년 동안 급격하게 바뀐 것은 그동안 다양한 공동체를 유지시키던 활동들을 집에서 몰아내어 또 다른 소비활동으로 대체시키는 기본적인 메커니즘을 갖는다. 아파트는 우리를 먹고 자고 소비하는 것 이외의 모든 일에 서툴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제는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면서 그 구조가 당신에게 무엇을 강요하는지 둘러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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