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 · MRI와 달리 분자 수준의 변화까지 확인… 분자에 붙는 형광물질의 안전성이 관건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어느 날 갑자기 회사원 김민철(38)씨는 심한 복부 통증을 느꼈다. 무엇을 먹을 수도 없었고 때론 숨을 쉬기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종합검진 초음파 검사에서 담낭 결석(結石)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김씨는 거의 한달을 주기로 담석으로 인해 30여분씩 참을 수 없는 통증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복부 통증은 담석 증세와 달리 시간이 지나도 통증이 멈추지 않았다. 결국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공휴일에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몇 가지 검사를 하더니 ‘급성 췌장염’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담석이 담도를 막으면서 통증이 생겼다는 것이다. 문제는 담석이 담도 속에 있는지였다. 이를 확인하려면 인체 내부에 불을 밝히고 담도를 들여다봐야 했다.
MRI는 자기공명, PET는 방사성 물질로
여기에서 김씨는 현대의학의 성취로 꼽히는 ‘자기공명영상’(MRI)을 체험했다. X선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의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로 확인할 수 없는 인체 장기의 상태를 인체의 70%를 차지하는 물에 든 수소원자핵(양성자)이 일으키는 자기공명을 이용한 MRI로 살핀 것이다. 만일 MRI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김씨는 담도에 없을지도 모르는 결석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김씨는 MRI 장치에 누워 고주파의 흡수·방출에 따라 담도 내부를 보여주는 영상을 얻었다. 다행히 담도 영상에는 결석이 보이지 않았다. 일반 방사선과에서 보험 처리도 되지 않아 35만원을 내고 MRI를 찍었지만 수술을 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MRI 장치에 필요한 강력한 자기장은 초전도체에서 얻는다. 초전도체에는 전기저항이 없어 전류를 많이 흘려 강력한 자기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로 심장이나 혈관, 연골, 뇌 질환 등을 규명하는 데 쓰이는 MRI는 촬영 시간이 길어 폐나 위처럼 움직이는 장기를 찍기 어렵다. 흉부나 복부 장기의 진단에는 저렴한 CT를 이용하면 된다. MRI와 CT는 장기의 모양을 관찰하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장기의 기능을 파악하는 능력은 젬병에 가깝다. 만일 김씨가 췌장의 기능에 문제가 있었다면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positron emission tomography)으로 장기를 살펴야 했을지도 모른다. PET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포도당이나 당·단백질 등에 섞어 주사한 뒤 이들의 합성 여부를 살펴 암을 진단한다.
PET는 CT나 MRI에 비해 암, 뇌질환, 심장질환 등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PET에 쓰이는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인 FDG의 반감기가 105분에 지나지 않는다. PET를 제대로 운용하려면 FDG를 생산하는 가속기 ‘사이클로트론’까지 구비해야 하기에 수십억원이 들어간다. 국내에 사이클로트론은 8기, PET는 10여기가 수도권 병원에 설치돼 있다. PET 검사를 받으려면 먼저 포도당에 방사성 물질을 붙여 만든 주사액을 맞아야 한다. 암세포는 정상세포보다 빠르게 증식하기에 많은 포도당이 필요하다. 방사성 물질을 꼬리표로 삼아 암세포를 추적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소 박경배 박사는 “PET 검사를 위해 몸 안에 주사하는 방사성 물질은 인체에 악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극히 적은 양의 방사선을 방출하도록 개발한다”며 방사성의 폐해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설령 방사성 동위원소가 불안할지라도 PET가 검진에 탁월한 성능을 보인다면 고가의 비용을 감당할 만하다. 최근에는 기존의 PET 기능에다 CT 기능을 더한 ‘차세대 PET’까지 의료 현장에 등장했다. 하지만 김씨처럼 담낭을 떼어내면 완치될 병세라면 굳이 고가의 검진을 받지 않아도 된다. 건강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면 차세대 PET를 이용해도 암 진단이 기대만큼 탁월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첨단 영상 진단기기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아무리 의사들이 방사성 동위원소를 추적해 장기 상태를 살펴도 종양의 크기와 같은 해부학적 정보를 판독하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세포 덩어리 속에 특이한 단백질이 들어 있어도 이를 제대로 해독하지 못한다. 그런 탓에 첨단 영상기기로는 장기나 조직의 내부에서 이뤄지는 분자적 문제에는 손을 쓰지 못하다.
발병 몇년 전에 암의 신호 확인
그렇다면 핵의학적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인체의 변화를 읽어낼 방법은 없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답으로 떠오르는 게 ‘분자영상’(Molecular Imaging)이다. 분자영상 기술은 세포생물학이나 생화학적 물질, 컴퓨터 분석 등의 진전에 힘입어 놀라운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분자영상을 이용하면 분자 수준에서 인체를 샅샅이 살펴볼 수 있기에 병의 원인을 알아내는 데 효과적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분자영상연구센터는 살아 있는 쥐의 표피를 디지털 카메라로 관찰하면서 종양이 커가는 과정을 파악한다. 형광물질과 보정 필터를 이용해 종양에 의해 분비되는 효소들을 컴퓨터 스크린상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빨강·노랑·녹색 등의 반점으로 보이는 형광물질을 이용해 질병을 검진하고 치료에도 적용한다.
활동하는 인체 세포에서 특정 분자를 검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분자들의 움직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기 때문이다. 분자에 표찰을 주입해도 다른 물질과 결합이 이뤄지면 표찰 구실을 다하지 못한다. 그래서 분자영상연구센터의 우마르 마흐무드 박사는 ‘스마트 검출자’를 개발했다. 스마트 검출자가 과적 분자와 결합하면 밝기나 자기적 성질이 변하는 형광물질이 된다. 스마트 검출자를 이용하면 기존 기술로는 잡아내지 못하는 특정 단백질과 효소들을 볼 수 있다. 기존의 장비가 종양 덩어리를 발견하는 데 그쳤다면, 스마트 검출자는 분자 수준에서 종양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세포 변화를 눈으로 살피기에 질병의 원인을 따져 맞춤치료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아직까지 스마트 검출자는 인체에 들어가지 못했다. 형광물질이 육안으로 살필 수 없는 인체 내부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생쥐를 이용해 실험하고 있다. 암에 걸린 쥐에 종양 성장을 촉진하는 효소가 나오지 않도록 약물을 투여한 뒤 형광 물질을 주입하는 것이다. 실험에서 치료된 종양은 치료되지 않은 것보다 형광색이 밝지 않았다. 지금 병원에서 종양의 치료 여부를 살피려면 적어도 몇달을 기다려야 하는데 형광물질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치료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분자영상을 이용하면 몇달 혹은 몇년 전에 나타난 암의 신호를 살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검진을 하기 위해 조직의 일부를 떼어내지 않아도 된다. 물론 그 모든 것은 형광물질의 안전성이 확인된 뒤에야 가능한 일이다.
검사의 고통 줄인다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면 온갖 검사를 받으며 곱절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검사가 환자를 두번 죽인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만일 안전한 형광물질이 개발된다면 검사 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크게 줄이고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자들은 앞으로 10년 이내에 분자영상 기술이 유방 X선 검진, 생체 조직검사 그리고 기존의 검진 기술을 대체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종양에만 붙는 형광물질이 인체에 들어가면 암세포가 전이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다. 분자 수준에서 치료하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고 기존의 검진 기술을 완벽하게 대체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MRI·PET 등의 핵의학적 방법이 해상도를 높이려고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사선 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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