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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정치에 디테일을 얹으니

대선 후보 풍자로 화제 된 <SNL 코리아 리부트> 제작진이 전하는 정치로 웃기는 법
등록 2022-01-08 15:40 수정 2022-01-09 01:58
를 이끄는 안상휘 책임프로듀서. 신지민 기자

를 이끄는 안상휘 책임프로듀서. 신지민 기자

“팬덤 정치 문화 때문에 진영이 많이 갈리고 비판 댓글을 두려워하면서 정치 풍자가 사라졌다. 수위와 균형을 맞추는 노하우도 필요하다. 2011년부터 <에스엔엘>(SNL)을 이끌어왔기에 그 노하우가 생겼고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다.”

최근 정치 풍자를 내세운 코미디쇼 가 호평을 얻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풍자한 영상은 2022년 1월2일 유튜브에 공개되자마자 4일 만에 조회수 61만 회를 넘기는 등 화제가 됐다.

시즌2부터 “작정하고 정치 풍자”

정치가 코미디쇼보다 재밌지만 정작 정치 풍자 코미디는 없는 요즘, SNL의 순항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tvN 시절부터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온 안상휘 시피(CP·책임프로듀서, 에이스토리 제작2본부장)를 1월5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는 미국 <엔비시>(NBC)에서 1975년부터 방영해온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의 포맷 라이선스를 구매해 국내에서 만든 프로그램이다. 2011~2017년 tvN에서 시즌9까지 방송됐고, 2021년 신생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쿠팡플레이를 통해 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작됐다.

시즌1의 ‘주기자가 간다’라는 코너에선 대선 후보들을 인터뷰했고, 뉴스 형식으로 구성한 코너 ‘위켄드 업데이트’에선 대장동 의혹을 비롯해 윤미향·이재명·윤석열·곽상도 등 여야의 주요 이슈와 인물을 고루 다뤘다. 그러다 2021년 12월 시작한 시즌2에선 아예 대선 후보 풍자를 위한 고정 코너까지 만들었다. “시즌1에서 대선 후보 인터뷰나 뉴스 형식을 통해 정치 풍자가 대중에게 통하는지 시험해봤다. 반응이 뜨거웠다. 그래서 시즌2는 아예 작정하고 정치 풍자를 해보자고 나섰다.”(안상휘 CP)

최근 정치인들의 말과 행보가 코미디보다 더 우스운 덕분에 SNL 제작진에겐 무궁무진한 소재가 된다. 무서울 정도로 세밀한 묘사는 연기자들의 노력 덕분이다. 안 CP는 “방송 뉴스와 신문을 보면 소재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누구를 풍자할지 어떤 소재로 할지 결정한 뒤 연기자에게 알려주면 그때부턴 연기자의 능력이다. 김건희씨를 풍자한 주현영은 오디션 때부터 사람 묘사에 탁월했는데 이번에도 놀라울 정도로 그 디테일을 잘 잡아냈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직접 적극적으로 출연하기도 한다. 시즌1의 ‘주기자가 간다’ 코너에선 홍준표, 이재명, 나경원, 심상정, 이준석 등이 출연해 인턴기자 주현영과 인터뷰했다. 엠제트(MZ)세대 특유의 말투와 화법을 그대로 녹여낸 주현영 기자의 질문과 대비되는 정치인들의 진지한 답변이 ‘케미’를 만들어내 웃음을 줬다. 홍준표 당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에게 ‘밸런스 게임’을 하자며 ‘유재석 뺨치는 국민 개그맨 되기’와 ‘꼴랑 5년 대통령 되기’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거나, 이재명 후보에게 휴가 때 <말죽거리 잔혹사>와 <아수라> 중 어떤 영화를 보겠느냐고 묻는 식이다.

“시즌1 초반에 주현영 기자의 캐릭터가 20대 여성을 비하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꼰대’로 보일 수 있는 정치인들에게 민감한 내용도 당당하게 질문하는 주 기자의 성장기를 보여주고 싶어 기획된 코너다. 사전에 질문지를 보내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정치인의 인간적인 모습이 잘 드러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요즘엔 먼저 출연 의사를 내비치는 정치인도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풍자한 의 한 장면. <에스엔엘 코리아>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풍자한 의 한 장면. <에스엔엘 코리아> 유튜브 화면 갈무리

‘디스’는 아슬아슬 공평하게

SNL 제작진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가장 유념하는 것은 양쪽 진영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콜드 오프닝’ 코너의 한 장면을 보면,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두 부부가 마주친다. 김건희씨를 연기한 주현영이 “저는 늘 남편이 (분리수거를) 해주는데, 오늘은 양이 많아서 같이 나왔다”며 “저는 남편에 비해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다. 제가 남편을 처음 만난 날 무뚝뚝하기에 무서운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고 말한다. 김건희씨 사과 기자회견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그러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부인 김혜경씨를 연기한 정이랑은 “제 남편은 아이들이 게임이 잘 안될 때 밤새 울어줄 정도로 다정다감한 아빠다. 투자도 잘해서 부동산 투자 성공은 물론이고 주식으로 돈을 3배로 불려서 오기도 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윤석열 후보를 풍자할 때는 이재명 후보 풍자도 함께 한다. 안 CP는 “한쪽을 ‘디스’할 땐 다른 쪽 ‘디스’도 넣으려 한다. 대선 후보 인터뷰 때도 소수당을 빼놓지 않으려 했다”고 말한다.

풍자 수위가 ‘아슬아슬함’ 그 이상을 넘기지 않으려고도 노력한다. “정치 풍자 코미디가 웃음이 터지지 않으면 모두가 불편하고 상처만 남기게 된다. 웃겨야 그 의미가 있다. 너무 정곡을 찌르지 않으면서 선은 지키려 한다. 그 수위를 지키기 위해 작가진, 연출진, 출연진 등 50여 명 모두에게 의견을 들으면서 제작한다.”

2020년 12월 문을 연 신생 OTT 채널인 쿠팡플레이를 통해 방송한 것도 제작 자율성을 높일 수 있었던 요소다. “OTT를 통해 방송하니까 훨씬 자유롭다. 지상파로 가면 방송심의위원회 기준에 맞추느라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또 지상파는 채널을 돌리다가 볼 수도 있지만 OTT는 보고 싶은 사람이 돈을 내고 보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의 기준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

안철수는 어떻게 그릴까?

정치 풍자를 내세웠지만 이것만이 SNL의 주특기는 아니다. 정치 풍자와 ‘19금’을 양대 축으로 가져가면서 시대의 트렌드를 담는 것, 이것이 SNL의 목표다. 메타버스, 인공지능(AI), 청년 취업, 부동산 등이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 이유다. “정치 풍자와 ‘19금’ 모두 균형을 맞추며 최신 트렌드를 담으려 한다. SNL이 각박한 현실에 웃음이 될 수 있는 비타민이 되길 바라며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가 정치 풍자에 자유도가 높은 프랑스나 미국에 비해서 각박한 것 같다. 사회적으로 다양한 시각과 의견이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SNL 시즌2는 대선 이후인 2022년 4∼5월까지 제작될 예정이다. 안상휘 CP는 요즘 안철수 후보를 눈여겨본다고 귀띔했다. 안 후보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기대된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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