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음악 지망생의 괴물 같은 반전

단편선과 선원들, 두 번째 앨범 <뿔> 시대와 장르의 용광로 같은 음악
등록 2016-05-04 21:12 수정 2020-05-03 04:28
단편선과 선원들 제공

단편선과 선원들 제공

2007년 서울 창전동 쌈지스페이스. 회기동 단편선(박종윤)을 처음 만났다. 그때 그는 학생이었고, 한 음악 커뮤니티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회원이었으며, 자신의 데모 음반을 만들던 음악 지망생이었다. 군대 가기 전 그는 이란 제목이 붙은 데모 음반을 만들어 팔고 있었고, 첫 만남은 그 데모 음반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 난 그의 음악을 좋아했다. 와 을 특히 좋아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다였다. 난 그가 소박한 포키(folkie)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고, 가끔 클럽 ‘빵’이나 ‘한잔의 룰루랄라’ 같은 자그마한 곳에서 공연하는 게 전부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첫 앨범 은 내 생각을 바꾸게 했고, ‘단편선과 선원들’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만든 은 새로운, 그리고 놀라운 음악가가 등장했음을 알렸다.

2014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서울국제뮤직페어(뮤콘) 행사의 주 공연장에 단편선과 선원들이 섰다. 앞서 말한 과 의 성과를 통해 단편선과 선원들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외국 음악 관계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음악가가 되었다. 빅스(VIXX)나 산이(San E), 자우림 같은 대중적인 음악가들의 팬이 객석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무대 위에서 그들은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신들의 음악이 가진 매력을 말 그대로 뿜어냈다. 원초적이고 주술적이며 에너지가 넘치는 무대였다. 그 에너지로 꽉 채워진 무대를 보면서 그들이 몇 단계 더 성장했음을 확신했다.

2016년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 지난 4월16일 단편선과 선원들의 두 번째 앨범 발매 기념공연이 있었다. 에서 까지, 음악의 영역은 한층 더 넓어졌고 표현 방식 역시 훨씬 다양해졌다. 시대와 장르의 용광로 같은 음악이 멤버들의 손과 발과 목을 통해 무대 위에서 활발하게 발산됐다. 2007년의 풋풋한 청년 회기동 단편선은 어느새 좋은 음반과 훌륭한 라이브 모두를 가진 음악가가 되어 있었다.

은 놀라운 작품이다. 앞서 말한, 더 넓어진 음악의 영역과 더 다양해진 표현 방식이 이번 앨범의 핵심이다. 2007년과 2016년 사이에는 단편선이 들어온 수많은 음악들이 있었다. 그는 음악가이기 이전에 음악애호가였고, 그동안 들어온 다양한 음악들을 괴물처럼 흡수했다. 이 다양한 감상의 배경이 지금의 단편선과 선원들을 있게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고 긴 음악의 역사에서, 우리는 아주 운이 좋고 뛰어난 경우라 해도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일 뿐이다”라는 단편선의 말을 빌려오자면, 단편선과 선원들은 그 거인들의 위대함 속에서 뛰어난 점과 배우고 싶은 점을 영민하게 취한 것이다.

시종일관 바이올린과 타악기가 귀를 자극한다. 앨범의 첫 곡 부터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지만 결코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분출해야 할 곳과 잦아들어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포크에서부터 아트록까지, 한국에서부터 전세계로, 시대와 장르와 국적이 불분명하게, 혹은 모든 시대와 장르와 국적이 다 들어 있는 듯한 이 음악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주술적인 분위기에서 가장 대중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신영복의 추모곡이라는 건 반전이다. 생각해보면 회기동 단편선을 처음 만난 때부터 그의 음악 이력은 늘 반전의 연속이었다. 그 반전을 지지한다.

김학선 음악평론가

※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