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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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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에 짓눌리지 않는 과녁의 소중함

영화 <사도>가 그리는 아버지 영조와 아들 세자의 숙명적 관계
등록 2015-09-23 17:29 수정 2020-05-03 04:28

이준익 감독의 영화 에서 영조(송강호)는, 카를 융의 심리학으로 설명하면, 내면의 그림자와 화해하는 데 실패한 인물이다. 그림자는 콤플렉스, 트라우마, 상처 등의 총합이다. 영조는 조선왕조의 역대 왕 가운데 유일하게 천민 무수리(숙빈 최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복형인 경종이 재위 4년 만에 죽자 임금에 올랐는데, 이 과정에서 게장과 생감, 인삼차를 먹여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에 시달렸다. 출신 콤플렉스와 경종 독살설, 그리고 자신의 힘이 아니라 노론의 지지를 얻어 왕이 됐다는 사실은 그가 평생 짊어져야 할 업이었다.

쇼박스 제공

쇼박스 제공

영조는 마흔둘에 얻은 아들 사도세자(유아인)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했다. 조선 최초의 천민 출신 임금이라는 출신성분 때문에 엄격한 자기관리는 필수적이었다. 그것을 아들에게도 요구했다. 태어난 이듬해인 2살 때 사도를 세자로 책봉하고, 왕 교육을 했다. 조선왕조 최연소 세자다. 갓 돌을 지난 아기가 생모인 영빈 이씨와 떨어져 지내야 했다. 사도는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규격화된 틀에서 자라났다. 영조는 사도의 옷차림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호통을 쳤다. 총명하던 사도는 점차 엇나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서울아산병원 김창윤 교수팀은 등 문헌을 근거로 사도세자가 우울증과 조증이 반복 재발하는 양극성 장애를 겪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질식할 듯한 아버지의 억압에 서서히 병들어가던 사도는 결국 뒤주 속에 갇혀 비극을 맞았다.

우리는 누구나 그림자를 품고 산다. 그것을 자식에게 투사하는 순간, 비극의 씨앗이 자란다. “너는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자라니?” “너는 왜 나만큼 못하니?”라는 부모의 말은 자식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로버트 존슨은 에서 “그림자를 전가하는 최악의 상태는 부모의 그림자를 자녀들에게 짊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어린 자녀는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그림자에 짓눌리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사도는 자신이 받은 고통을 아들 이산(정조)에게 전가하지 않았다. 광증에 미쳐 날뛰다가도 정신이 돌아오면 어린 아들을 물고 빨고 깨물어주며 끔찍이 사랑했다. 영조는 손자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혜경궁 홍씨도 아들을 사랑으로 품었다.

이산은 11살에 아버지가 뒤주에 갇혀 죽는 참혹한 사건을 목도했음에도, 억울하게 죽은 생모에 대한 원한을 분출시켰던 연산군처럼 폭군으로 변하지 않았다. 그는 영조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사랑 속에서 아픔을 씻어내고 훗날 성군이 됐다.

는 90% 이상의 역사적 팩트를 바탕으로 군주인 아버지와 세자인 아들의 숙명적 관계에 집중했다. 이준익 감독은 역술가의 말을 빌려,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화살이지만,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이라고 했다. 숙명의 ‘숙’(宿)자는 ‘잘 숙’이다. 잠자고 있을 때, 화살을 피할 수 없다.

극중에서 사도가 화살을 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과녁에 정조준하던 화살을 위로 추켜올려 허공에 대고 쏘며 아들 이산에게 이렇게 말한다.

“허공으로 날아간 저 화살은 얼마나 떳떳하냐.”

사도는 영조가 정해놓은 과녁에 집중해야만 하는 삶을 살았다. 아들은 과녁 밖의 세상으로 나아가려 했고, 아버지는 과녁 안의 세상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천륜은 그렇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이제 추석이다. 가족과 친지가 모이는 뜻깊은 명절이다. 모든 가정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설교하려는 부모와 이를 듣지 않으려는 자식의 기싸움이 벌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올 추석은 자녀 스스로 과녁을 찾도록 권해보는 건 어떨까. 그 과녁을 향해 떳떳한 화살을 날릴 수 있도록.

곽명동 객원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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