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옥이 돌아왔다. 예전 같았으면 이 문장 주어의 자리엔 이른바 ‘막장드라마 대모’ 임성한의 이름이 더 어울렸을 것이다. 실제 몇 년 전 MBC는 그가 오랜만에 복귀했을 때 여타의 미사여구 없이 ‘그녀가 돌아왔다’는 한 문장을 대표 홍보 문구로 사용한 바 있다. 그만큼 드라마계에서 임성한의 이름 석 자는 오랫동안 흥행 보증수표로 군림해왔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옛말, 그녀의 최근작 는 두 차례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중징계라는 기록만 남긴 채 이전 작들에 비해 저조한 관심 속에 막을 내렸고, 임성한은 심지어 은퇴를 선언했다.
막장드라마의 시대가 저문 것일까. 그렇다기보다는 또 다른 시대가 열렸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말하자면 막장드라마의 세대 교체다. 대표주자는 김순옥이다. 지난해 MBC 를 국민드라마로 등극시킨 그녀는 최근 후속작 (사진)로 4회 만에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거두며 새로운 흥행 보증수표로 떠오르고 있다. 원래 그 역시 임성한·문영남과 함께 ‘막장드라마 대가 3인방’으로 묶이던 작가였다. 그러나 임성한과 문영남이 안이한 자기 복제를 반복하며 구세대가 되어가는 사이, 김순옥은 막장드라마의 새로운 문법을 제시하며 진화해왔다.
김순옥이 이끌어가는 막장드라마의 신경향은 기존 통속극의 세계 안에 트렌디드라마의 흥행 공식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트렌디 막장’이라 할 만하다. 대표적 사례로 는 출생의 비밀, 신데렐라 스토리, 엽기적인 악역, 패륜, 복수, 기억상실 등 막장드라마의 필수 조건을 다 갖추고, 그 위에 미니시리즈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여러 장르적 요소들을 혼합했다.
극 초반 장보리(오연서)와 이재화(김지훈)가 엮어간 로맨스는 정통 로맨틱코미디처럼 통통 튀었고, 한복 명인을 목표로 한 배틀 구도는 “의 통속극 버전”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전문직 드라마적 긴장을 갖추었으며, 악녀 연민정(이유리)의 범죄 행각 추적은 범죄수사극을 방불케 했다. 김순옥은 현재 에서도 ‘드라마판 ’을 표방하며 계속해서 ‘막드계 힙스터’의 길을 개척해가고 있다.
트렌디드라마적 문법을 차용하는 이런 경향은 최근 화제를 모았던 다른 막장드라마들에도 적용된다. 가령 의 후속작 는 시댁으로부터 인생을 짓밟힌 주부의 복수극이라는 통속극의 기본 구도 위에 전문직 성공기, 영화 와 을 연상시키는 교도소 배경의 휴먼드라마, 여성들의 자매애를 뜻하는 ‘워맨스’ 코드, ‘쿡방’ 코드까지 뒤섞은 작품이었다. 이 밖에 고부 갈등을 기업드라마적 갈등으로 녹여낸 ‘의 아침극 버전’인 SBS , 고부간 관계 역전 드라마로 사회적 갑을관계를 풍자하는 SBS 아침드라마 등도 막장드라마의 필수 갈등을 ‘트렌디하게’ 풀어낸 사례다.
그렇다면 막장드라마의 이런 신경향을 긍정적 진화로 볼 수 있을까. 답은 양가적이다. 단순 ‘장르잡탕찌개’를 넘어 최신 트렌디드라마의 복합장르적 성격을 나름 진지하게 적용해 적어도 작법만큼은 발전시킨 것은 유의미한 지점이다. 반면 재미를 위해 인간드라마를 왜곡하고 축소하는 근본적 한계는 여전하다. 실제로 가 여러 장르적 시도로 눈길을 끈 뒤 결국 기존 막장드라마와 다를 바 없이 연민정이라는 악녀의 기행에 의존한 것을 떠올려보라. 드라마의 진정한 본질이 인간 성찰에 있음을 외면한다면 ‘트렌디 막장’ 역시 포장지만 화려하게 바뀐, ‘예쁜 쓰레기’에 머물 수밖에 없다.
김선영 TV평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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