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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정도는 사~악해야쥬, 안 그래유?

생활요리인 ‘차줌마’와 본격 남성 요리 계몽에 나선 ‘백주부’에 열광하는 이유
등록 2015-07-04 13:46 수정 2020-05-03 04:28

올해 상반기 최고의 예능 캐릭터 둘을 꼽으라면 단연 ‘차줌마’와 ‘백주부’다. 전자는 tvN 속 극한 환경에서 신들린 요리 솜씨로 열광적 반응을 이끌어낸 배우 차승원, 후자는 MBC 의 개인 방송을 비롯한 여러 요리 프로그램을 통해 ‘요리의 신’으로 떠오른 외식사업가 겸 요리연구가 백종원을 가리킨다. 둘은 현재 방송가를 장악한 요리 예능 열풍 안에서도 가히 신드롬급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tvN 화면 갈무리

tvN 화면 갈무리

흥미로운 건 이들의 공통점이 ‘주부’ 캐릭터라는 점이다. 그 이전까지 요리 프로그램의 주력 캐릭터는 ‘섹시한 훈남’ 요리사였다. 요리 솜씨로 여성을 매혹하는 남자를 뜻하는 ‘게스트로섹슈얼’이나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의 줄임말인 ‘요섹남’과 같은 신조어가 탄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훈남 요리사 캐릭터들은 가사노동이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인식되는 현실에서 마치 로맨스 드라마의 흑기사처럼 여성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며 인기를 모았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차줌마’와 ‘백주부’ 캐릭터다. 이들은 세련된 ‘키친’에서 특별한 요리로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것을 넘어 일상의 부엌에서 당장 오늘의 세끼 메뉴를 걱정해야 하는 주부들의 현실을 대변하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가령 에서 차승원은 만재도의 부엌에 도착하자마자 식기들을 자신의 익숙한 동선에 맞게 재배치하고 마당의 배추를 뽑아 10분 만에 겉절이 반찬을 만들어내는 ‘살림왕’의 면모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백종원의 경우에도 하나의 양념으로 수십 가지 밑반찬에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만능간장’ 조리법이나 가지를 손질할 때 머리 부분을 끝까지 까야 아깝지 않다는 등 섬세한 ‘살림 팁’으로 주부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어내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들 캐릭터 활용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전문직으로서의 요리 실력이 강조된 남성들에게는 ‘셰프’, ‘집밥’을 선보이는 이들에게는 ‘아줌마’ ‘주부’ 호칭이 붙는 것은 성역할 고정관념 반복이라는, 충분히 타당한 지적이다. 그럼에도 이 ‘주부’ 캐릭터가 의미 있는 것은 그들의 생활요리가 단지 ‘집밥의 기술’ 차원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요리는 여성들의 전체 살림 노동 안에 위치하는 부분 노동의 성격을 지니기에 흥미롭다. 예컨대 차승원이 조리와 동시에 설거지로 비좁은 싱크대 공간을 확보하거나 찬장 정리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모습 등이 그렇다. 주부들은 그 행동이 한 번에 여러 일을 수행해야 하는 가사노동 특유의 경험을 오랫동안 반복해온 이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습관이라는 것을 안다. 생활요리에는 이렇듯 가사노동 전체의 현실이 압축되어 있다.

백종원의 최근 출연 프로그램인 tvN 도 마찬가지다. “요리불능” 네 남자를 “스스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요리인간으로 변모”시키는 이 프로그램에서 ‘백선생’은 여전히 ‘백주부’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있다. 단순히 요리법만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장보기의 역할에서부터 조리에서 시간과 비용 절약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힘들게 김치찌개를 완성한 뒤 못내 뿌듯해하며 “이게 주부들의 행복이구나”를 외치는 김구라에게 “겨우 김치찌개 하나 해놓고 무슨 주부들의 행복까지 찾”느냐고 일침을 놓는 모습은 특히나 통쾌하다.

이 ‘집밥’에 ‘엄마의 손맛’ 같은 판타지는 없다. 그냥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밥이 ‘집밥’이고, 이제는 그것이 더 이상 아내·엄마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환기시킨다. 그런 측면에서 가 표방하는 ‘자급자족 프로젝트’나 의 ‘끼니 해결 프로젝트’란 사실 남성 계몽 프로젝트처럼 보인다. 여성들이 ‘요섹남’보다 ‘차줌마’와 ‘백주부’에 열광하는 이유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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