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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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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스러운 상대를 혼자 상대 말라

북한 김씨 왕조보다 명절이면 선물하는 기업 덕분에 더 비참해질 가능성 높아
당신이 뉴스를 볼 때마다 무력감에 시달리지 않을 비법
한승태
등록 2014-01-30 16:02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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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분석한 잘 알려진 연구는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는 낯선 사람이 아니라 가까운 친구나 가족- 생일이면 안부 전화를 걸어줬던 사람들- 의 손에 죽을 확률이 더 높다고. 이 우울한 조사 결과는 국가나 사회 단위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우리의 최후는 북한 김씨 왕조의 도발이나 테러집단의 폭탄 공격보다 경기회복을 장담하는 정부, 명절이면 참치선물세트를 잊지 않는 기업들 덕분에 비참해질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불만이 마스크 때문이라는 걸 몰랐다

이 책은 꽃게잡이 어선, 편의점과 주유소, 돼지농장, 비닐하우스, 자동차 부품 공장 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한 글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앞서 말한 비유적인 면식범에 쫓겨 각자의 쓸쓸한 최후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기업이 개인의 삶을 목 조르는 모습이 품속에 칼을 숨긴 채 부모의 침실로 숨어드는 아들만큼 극적이진 않다. 오히려 그것은 치사하고 때로는 좀스럽다고 부를 만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몇 년 전 내가 일했던 돼지농장에서는 마스크를 한 달에 3개씩 지급해줬다. 그것은 농담이나 다름없는 양이었다. 20∼30분만 우리 안에서 작업해도 돼지 똥을 온몸에 뒤집어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회사(그곳은 식품 기업의 계열사에서 운영하는 농장이었다) 관리자들이 이기적인 구두쇠였다는 건 아니다. 모두 점잖고 예의 바른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소모품 비용이 한 달 150만원으로 정해져 있었고 그 안에서 구매할 수 있는 마스크의 최대 양이 3개였던 것이다.

물론 나는 화를 냈다. 하지만 나는 내 불만을 관리자를 보고도 인사하지 않거나 뚱한 얼굴로 야근을 거부하는 것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내 불만에는 요점이 없었다. 다들 내가 불만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마스크 때문이라는 것을, 100만원 남짓한 월급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저 내가 생각이 짧고 치기 어려서려니 했을 뿐이다. (결국 내 행동으로 이들의 평가가 정확했음을 증명한 꼴이 됐다.)

무엇보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법을 몰랐다. 나는 오직 나만의 작은 기대, 나만의 작은 절망 속에 웅크리고 앉아 ‘난 당신들과 달라! 나는 이런 데서 썩지 않을 거야!’ 하고 중얼거리기만 했다. 그 결과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대로다. 나는 제풀에 지쳐 몸담았던 모든 일터에서 튕겨져나왔다. 간단히 말해 나는 뿌린 대로 거둬들였던 것이다.

관심 있는 문제 다루는 단체를 찾아가세요

TV 프로그램 에서는 면식범에 의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은폐된 장소에서 의심스러운 상대를 혼자 상대하지 말 것, 위협을 느끼면 즉시 경고할 것을 주문한다. 이를 고립되지 말 것, 홀로 있지 말 것, 분명하게 의사표현을 할 것이라고 정리하면 우리의 비유적인 면식범에게 전하는 메시지 또한 분명해진다. 내게 믿음을 줬던 사람들은 이렇게 조언했다. “평소 관심 있는 문제를 다루는 단체를 찾아가 일주일에 한두 시간 정도만 자원봉사를 해보세요.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신의 희망과 불만을 거기에 책임 있는 사람들을 향해 돌릴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될 겁니다. 그러면 매일 뉴스를 틀 때마다 엄습하는 끔찍한 무력감- 나는 혼자야, 나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을 떨쳐내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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