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쇼와 전집>, 황병승, 문학과 지성사
부모가 안겨준 한 질의 전집이 문학과 교양의 바다로 항해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때로는 전집이라는 것의 부피와 무 거움 앞에서 숨이 막혔을 수도 있다. ‘전집’이라는 개념이 한 작가와 한 시대 혹 은 같은 종류의 저작들을 모아 한 질로 출판한 것을 의미한다면, 엄격한 의미에 서 완벽한 ‘전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전집에는 누락된 무언가가 있으며, 전집을 기획하는 단위(작가·시대·주제)의 정체성은 불완전하다. 가령 ‘세계문 학전집’ ‘한국문학전집’이라는 말은 형용모순이며, 전집이란 결코 완전할 수 없 는 저작들의 모음을 완전한 묶음으로 만들어보려는 모순된 시도가 아닌가?
전집이라는 이 익숙하고도 허술한 단어를 일 거에 기이한 시적 언어로 만들어버린 시인은 황병승이다. 그의 시집 은 또 한 번 당대의 가장 뜨거운 볼온성을 폭발시킨 다. “옆집 베란다에 폭탄이 있습니다”라는 문 장으로 시작되는 표제작은, “망상입니다 의사 는 규칙적인 식사와 산보가 좋다고 합니다만” 같은 표현에서 암시되는 것처럼, 불완전한 인 간의 망상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의 화 자는 누워서 자기 발가락을 쳐다보고 맥락 없 는 문장들을 발설한다. 이 뒤죽박죽의 말들 속 에는 “저는 누구입니까 이 육체와 전집은 누구 의 것입니까” 같은 범상치 않은 질문들이 숨어 있다. ‘전집’이라는 이질적인 단어는 두 번 돌발적으로 등장한다. 또 한 번은 “저 는 생각이 없어요 전집이 없습니다”라는 문장이다. 황병승의 시에서 단일한 주 제와 평균적인 감동 따위를 찾는 뻔한 일을 하지 않으려면, 단어 하나가 사용되 는 방식과 언어의 리듬에 주목해도 흥미진진할 것이다. ‘전집’을 ‘생각의 완전한 체제’라고 한다면, 전집의 주체가 불분명하거나 전집이 없다는 것은, 화자(나)의 불완전성을 말해주는 것이겠다. 더 나아가 전집은 ‘육체쇼’라는 원초적인 움직 임의 저편에 서 있는 문화적 지식의 체계라고 할 수 있으니, 전집에 대한 부정 은 ‘문화적인 것’의 지루한 표준성에 대한 역행이 아닐까? 시집의 마지막 시에 서는 “나는 결국 실패를 보여주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내일은 프로’)라고 말 하고 있다. 황병승의 시는 실패의 시도를 통해 저 무거운 ‘전집’의 세계와 질서 를 교란하면서, 결코 실패하지 않으려는 이 체제의 권위를 허무는 급진적이고 희극적인 비애를 작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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