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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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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좋기보다 자꾸 좋아지는 남자들

김수현 드라마의 남주인공을 어딘가 닮은 임성한 드라마의
남주인공… 신인과 논란의 인물, 나쁘지 않은 공평함
등록 2013-07-03 16:27 수정 2020-05-03 04:27

보려고 해서 보지는 않았지만 주말에 TV를 켜고 누워 있으니 보였다.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하는 임성한 작가의 재방송을 보다가, 딱딱 끊어지며 조응하고, 조사가 없어서 깔끔한 대사를 듣다가, 역시 김수현 작가의 영향이 보였다. 그리고 주연을 맡은 낯선 배우들. 남자 주인공 황마마(오창석)를 보면서 역시나 이번에도 신인이군 하다가, 요즘 주연배우치고는 역시 다른 이미지야, 싶었다. 아침 드라마 스타일의 ‘느끼한 고전미’가 있는 얼굴이다. 반듯하고 반듯하고 반듯한 이미지. 그러고 보니, 임성한 작가와 김수현 작가의 남자 배우들, 어딘가 닮았다.
고전미 가진 ‘흔남’

〈오로라 공주〉의 남자 주인공 황마마 역할의 오창석은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왼쪽). 하석진은 김수현 작가의 〈무자식 상팔자〉에 출연한 이후 주연급 배우로 성장했다.MBC, SBS 제공

〈오로라 공주〉의 남자 주인공 황마마 역할의 오창석은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왼쪽). 하석진은 김수현 작가의 〈무자식 상팔자〉에 출연한 이후 주연급 배우로 성장했다.MBC, SBS 제공

그 배우를 묘사할 능력이 부족해 기사 일부를 옮긴다.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깊은 눈매, 여기에 귀여우면서도 스마트한 이미지가 공존해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기사의 제목은 ‘‘오로라 공주’ 황마마, 이 남자 갈수록 매력 있다’. 초반에 부진했던 의 시청률이 탄력을 받으면서 황마마 역할의 오창석도 주목받고 있다. 대부분 드라마가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되듯이, 배우도 낯이 익으면 정이 가기 마련이지만, 임성한 작가의 배우들은 좀 묘하다. ‘막 좋아’보다는 ‘왜 자꾸 좋지’의 느낌이 강하다.
그걸 ‘반듯한 남자’ 판타지라 부를까. 임성한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들은 에 등장하는 이상형 남성에 대한 대사처럼 “진중한 성격” “목소리 좋은” 배우인데, 요즘 주연배우 같지 않다. ‘고전미’라 부를 남성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른바 ‘흔한’ 미남이다. 강명석 문화평론가는 “매끈하고 반듯하지만, 식물성 같은 시들한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임성한의 여주인공들이 오밀조밀한 얼굴에 날카로운 턱선(의 장서희, 의 전소민)을 가지고 세상을 헤쳐간다면, 남자들은 한결같이 반듯하기만 하다.
임성한 작가가 신인급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것은 관례처럼 됐다. 배우의 개성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를 작가는 ‘때묻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더구나 의 장서희와 김성민부터 흔히 말하는 ‘중고 신인’을 캐스팅해 성공한 경우가 있어 작가의 자신감은 더해진다. 어차피 개성은 작가가 만들고, 배우도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캐스팅에 고마워하는 배우가 작품 내용에 반발할 가능성도 적다. 그에게 배우는 얼굴은 고전적 미남이되, 개성은 없는 편이 낫다. 그리하여 요즘 보기 힘든 캐스팅 결과가 나온다. 그런데 다른 드라마들이 한결같이 트렌드를 반영하니 이런 캐스팅이 묘한 차별점이 된다. 좋든 싫든, 한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승한 TV평론가는 임성한 작가의 남자 배우들을 “오브제 같다”고 표현했다. 그냥 이 작품이 무엇이다 알려주 려고 서 있는 존재 같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여성은 갈 등을 만들고 갈등을 해결하려 뛰어다닌다. 다르게 말해 여성은 이끌고, 남성이 끌려다닌다. 여성이 주체가 된다 는 면에서 페미니즘 요소도 있다. 이승한 평론가는 “임성 한 작가의 초기작에 비해 최근작이 더 그렇다”며 “남자 주인공은 연기나 대사로 무언가를 말하기보다는 얼굴로 작품이 골인할 지점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반복된다 해도 그의 작품이 이르는 결말 은 그렇게 ‘막장’이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이상한 설정이 난무해도 남자 주인공은 도덕적 인물로 남는다. 요컨대 “배우의 얼굴에 작품의 정조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식물성과 오브제, 같으면서 다른
김수현 작가의 취향은 어떨까. 작가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는 신인급 캐스팅을 보자. 일단 모범생 이미지. 이들의 특징은 중산층 가정에서 곱게 자랐을 것 같은 느낌, 부모님 말씀을 거스르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이다. 여기에 꽃미남 스타일보다는 얼굴선이 진한 남자들. 예 컨대 의 하석진, 와 에 나온 이상우가 그렇다. 생각보다 탄탄 한 체격도 중요하다. 가끔은 상반신 노출신도 나온다. 스 펙부터 몸매까지, ‘엄친아’ 스타일의 배우들, 임성한 작가 의 배우들과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 강명석 평 론가는 “김수현 작가의 배우들도 반듯하지만 식물성은 아니다”라며 “때로는 여주인공과 팽팽히 맞서고, 부모에 게 반항도 하는 현실적 이미지”라고 말했다.
하석진은 드라마 에서 주연급 배역을 맡았다. 이처럼 김수현이 선택한 배우들은 계속 성장하는 경우 가 적잖다.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에 출연한 여배우들이 활약을 이어가는 경우도 적잖다. 의 장서희 가 그랬고, 의 이다혜도 그렇다. 그런데 임 성한 작가가 발굴한 남자 배우가 주연급으로 자리잡은 경우는 드물다. 워낙 독특한 그의 작품 안에서 얼굴로 말하던 배우들은 다른 드라마, 다른 맥락에서 적응하기 가 쉽지 않다. 어쨌든, 김수현 작가는 홍석천 같은 논란 의 인물을 캐스팅하고, 임성한 작가는 신인급을 캐스팅 한다. 공평한 기회의 분배, 나쁘지 않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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