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감자와 방울토마토, 참외를 하사했다. 우리 집은 공식적으로는 2층이지만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 단지 끝에 있다. 택배는 하루에 한 상자씩 도착했다. 한꺼번에 오면 좋았을걸. 괜히 택배 아저씨에게 미안해졌다. 흙이 묻은 감자와 탱글탱글한 방울토마토가 싱싱했다. 참외를 가르자 정겨운 단내가 집안에 퍼졌다. 문제는 양이었다. 너무 많았다. 매일 삶은 감자와 방울토마토만 먹을 수도 없는 노릇. 어쩌지? 아내가 해결책을 제시했다. 튀김옷이 살아 있는 감자 크로켓을 주문했다. 오케이! 크로켓 받고, 방울토마토로 만든 소스도 곁들이겠다.
당장 작업에 들어갔다. 감자를 삶으면서 속 재료를 준비했다. 고기는 빼기로 했다. 당근을 얇게 채썰고 옥수수는 깡통으로 준비했다. 블렌더에 방울토마토, 바질 한 웅큼, 붉은 고추 한 개, 올리브오일, 소금과 후추, 말린 파슬리를 넣고 갈았다. 홀 토마토나 토마토 페이스트 없이 방울토마토만으로 만든 소스는 상대적으로 달다. 파스타도 아니고, 크로켓 찍어먹을 소스로는 오히려 제격이지 싶었다. 월계수잎 하나를 넣고 뭉근하게 끓였다. 밀가루를 버터에 볶아 루(roux)를 만들려다가 날로 늘어만 가는 뱃살을 부여잡으며 참았다. 대신 밀가루를 그냥 물에 푼 뒤 소스에 조금씩 섞어 농도를 맞췄다.
으깬 감자에 당근과 옥수수, 파슬리를 넣어 속을 만들었다. 달걀물을 풀고, 접시에 밀가루를 넉넉히 담아 튀길 준비를 하는데…, 아뿔싸! 빵가루가 없다. 아쉬운 김에 냉동실에 보관하던 식빵 몇 장을 살짝 구운 뒤 갈아서 빵가루를 만들었다. 밀가루, 달걀물, 빵가루 순으로 튀김옷을 입힌 뒤 카놀라유에 살짝만 튀겨냈다. 토마토 소스는 끼얹지 않고 따로 준비해뒀다. 시원한 맥주잔을 옆에 두고, 잘 튀겨진 크로켓을 호호 불어가며 먹었다. 그냥 먹어도, 소스에 찍어 먹어도 맛은 괜찮았다. 그런데 뭐지, 이 허전한 느낌은?
크로켓은 원래 프랑스 사람들이 먼저 먹었다. 애초에 식사라기보다는 과자나 간식에 가까운 음식이었다고 한다. 20세기 초에 네덜란드를 거쳐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전해졌다. 네덜란드에는 크로켓을 전파한 제과기술자(Kwekkeboom)의 이름을 본뜬 크로켓 전문점도 있단다. 크로켓이냐, 고로케냐. 햄버그스테이크 , 돈가스, 카레라이스…. 돌이켜보면 어릴 때 ‘경양식’이라고 먹었던 음식은 죄다 일본식이었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맛날 수 없었다. 밥과 김치가 당기는 걸 보니 역시 나이가 들었나. 어쨌거나 감자와 방울토마토는 알차게 다 먹었다. 참외 한 상자가 남았다. 조만간 멜론도 온단다. 고민은 계속된다. 참외와 멜론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가 있을까? 제보 바란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