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에서 사고로 죽어 세상에 없는 성송주(김예원)는 윤태웅(송종호)의 연인이었고, 시원(정은지)의 하나밖에 없는 언니였다. 수능 시험을 본 시원과 학교 선생을 관둔 태웅이 막 풋사랑 같은 연애를 시작할 때, 시원은 태웅에게 자신이 언니를 닮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등장인물들의 삶에 그늘처럼 존재하던 송주는 어느 순간 드라마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드라마의 흥행 뒤 발간된 소설판 에서, 송주에 대한 기억은 적절한 때에 소환된다. 윤윤제(서인국)의 아이를 임신한 뒤 부산 집에 내려간 시원은 아직 남아 있는 송주의 방에 들어가 “태웅 오빠야 여자친구 생다”라며 태웅이 이제 송주와 자신의 그림자에서 벗어났음을 알려준다. 이 장면을 통해 송주와 태웅의 관계, 그리고 이후 시원이 태웅과 잠시 연인이 되면서 얽혔던 감정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또 정리된다.
작가의 이름이 부각되지 않는
드라마가 소설이 될 때, 드라마상에서는 제한된 시간 때문에 다룰 수 없던 부분들까지 채워지면서 소설은 대본보다 좀더 자세해지고 동시에 빠른 시간 안에 이야기를 따라가기에 편한 창작물로 완성된다. 과 같이 설명하지 못했던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기도 하고, 새로운 에피소드를 통해 특정 장면의 뒷이야기를 알려주어 이야기를 좀더 풍성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첨가되고 변형되는 지점이 있을지언정 소설의 원저자는 드라마작가이며 근간이 되는 텍스트 역시 영상물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화를 담당하는 작가의 이름은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보통 2인 이상의 작가가 한 작품을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영화 , MBC 드라마 등을 소설화한 ‘박이정’은 특정 작가가 아니라 콘텐츠를 소설화하는 창작집단이다. 영상물을 소설화한 작품에서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문학성이나 소설이라는 장르로서의 재미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소설들은 독립된 작품으로 가치를 갖기보다, 영상물을 보조하거나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
아직 마지막 회가 방영되지 않은 드라마의 경우 소설이 남은 회차를 미리 보여주는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총 50부작인 MBC 드라마 는 이제 막 절반을 넘어섰다. 말을 치료하는 수의사 출신으로 어의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는 백광현의 생에 앞으로 남은 고난은 아직 첩첩산중이다. 소설 는 지난해 10월, 드라마가 시작한 달에 같이 출간돼 12월에 총 2권으로 완간했다. 사극인 만큼 이야기의 큰 줄기가 정해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50부라는 방대한 양의 영상을 따라가지 않아도 라는 드라마의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고 드라마보다 앞서 결말을 알 수 있다는 점이, 드라마를 원작으로 삼고 있지만 드라마보다 앞서 완결이 난 소설들의 셀링 포인트다.
자신의 작품 를 소설로 쓴 송지나 작가는 특수한 경우다. 하지만 송지나 작가의 역시 드라마 대본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소설 속에 드라마에서 보여주지 못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홍보 요소다. 그러니 이 또한 대본의 또 다른 버전으로 보는 게 옳을 듯하다. 영상에서 빠진 부분을 보완해 대본집으로 출간한 노희경 작가()나, 8부작으로 방영된 KBS 를 16부작 버전의 대본집으로 제작한 박연선 작가의 경우도 송지나 작가와 다르지 않다. 감독판 DVD가 제한된 시간과 상황에서 펼쳐 보이지 못한 부분을 채워넣는, 혹은 감독 본인의 의도에 부합하는 작품으로 완성하는 기회로서 존재한다면, 작가들에게는 대본집이나 드라마의 소설 버전이 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영화로 나오니 다시 베스트셀러하지만 소설 원작이 존재하고, 그를 토대로 드라마나 영화가 만들어지는 경우는 이와 다르다. 최근 영화의 흥행과 함께 완역본이 출간돼 단일 출판사에서 두 달 만에 10만 부를 돌파한 이나 의 원작 소설이 다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현상은 영화 개봉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초 MBC 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자 원작 소설도 함께 높은 판매고를 올린 경우나, 영화 개봉 뒤 소설 의 판매율이 올라간 현상도 비슷하다. 하지만 이 소설들은 다른 장르의 원작으로서가 아니라, 소설이라는 장르 안에서 작품 자체로 가치가 있다. 은 그 자체로 고전이며, 는 영화화되기 전에 이미 좋은 소설이었다. 영상물을 원작으로 해서 원작이 되는 영상물의 미리보기나 다시보기, 혹은 축약판으로 존재하는 소설들과는 출발 지점이 다른 것이다.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좋은 원작에서 좋은 영화, 좋은 드라마가 탄생되며, 이 경우 소설과 영상물은 서로의 짝이나 보완 기능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각기 다른 작품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결국 영상물을 원작으로 하는 소설과 영상물의 원작이 되는 소설 사이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드라마나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소설 자체로서도 독립된 작품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느냐에 있다. 소설 을 읽을 때 독자는 정은지의 얼굴을 한 성시원을, 서인국의 얼굴을 한 윤윤제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당연한 일인 동시에 가장 큰 한계다. 하지만 속 장발장은 영화의 휴 잭맨도, 뮤지컬의 정성화도 아닌 장발장이다. 영화와 뮤지컬을 본 이후에 소설을 봐도 마찬가지다. 소설은 독자와 일대일로 조응해 개인의 상상 속에서 완성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 역시,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매체에 걸맞은 이야기로 완성될 때만 원작 소설에 종속되지 않는 작품으로 남을 수 있다.
윤이나 TV평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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