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하는 공연시장의 위세를 등에 업고 두 편의 음악 다큐멘터리가 왔다. 비틀스의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에 대한 다큐멘터리 , 그리고 밥 말리의 일대기를 그린 다. “내 음악의 시작? 오, 그것은 울음이었어요.” 조지 해리슨이 영국의 블래클러스 백화점에서 견습 전기공으로 일하고 저녁에는 연주 활동에 나설 무렵, 자메이카에서 밥 말리는 사우스캠프가의 용접공장에서 일하며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1963년 밥 말리가 버니 리빙스턴, 피터 토시와 함께 ‘웨일러스’라는 그룹을 결성하며 자메이카의 새로운 세대에게 말을 건넸을 때, 영국에서는 비틀스가 그들의 새로운 세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영화 <밥 말리> CGV 무비꼴라주 제공
체제에 대한 것이기보다 개인사적 투쟁
“자, 다시 한번 바빌론을 불태워버리는 거야. 그들은 나약해져버렸으니까.” 밥 말리의 노래는 최근 미국 월가와 중동 시위에도 등장했다. 그러나 8월2일 개봉한 영화 는 선동가 말리가 아닌 사제 말리의 모습을 부각한다. 도입부에 나오는 “나는 흑인의 편도 백인의 편도 아니다. 나는 흑인과 백인을 만든 신의 편이다”라는 밥 말리의 말은 이 영화의 방향을 보여주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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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흑인”이라는 라스타파리아니즘의 교리가 밥 말리의 저항적인 노랫말, 레게 음악의 황홀경과 성적 에너지로 충만한 무대를 낳았다. 충실한 라스타파리 교도였던 말리는 종교적 가르침대로 여러 갈래로 길게 땋아내린 ‘드레드록스 머리’를 하고 다녔다. 레게의 상징이 된 머리다. 그런데 빈곤과 영양실조로 신음하는 고향 게토를 벗어난 ‘말쑥한 드레드록스’였다. 케빈 맥도널드 감독은 제작기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열쇠는 혼혈로서의 밥의 인생을 이해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영화는 “흑인 전통사회였던 자메이카 시골에서 자란 밥을 처음으로 받아준 공동체는 라스타파리 교도들”이라고 증언한다.
밴드 웨일러스 시절의 초기 동료들뿐 아니라 어머니, 부인, 이복동생까지 60여 명을 인터뷰하며 밥 말리에 대한 완성된 아카이브를 추구하는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저항의 아이콘’으로서의 밥 말리의 이미지를 퇴색시키는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겠다. 케빈 맥도널드 감독은 체제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끝없는 개인사적 투쟁이 그의 육체에, 그의 노래에 새겨져 있음을 주장한다. 아기 때 백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지만 커서는 백인들이 잘 걸리는 피부암에 걸리고 마는 인생이다. 영성적이면서도 수없이 많은 여자들과 9명의 자녀를 둔 사람, 값비싼 자동차를 타고 자신이 태어난 게토를 가로지르는 가수, 노동당과 민중당 중 대체 누구에게 저격당했는지 알 수 없는 이방인으로서의 밥 말리를 복원한다. “외로움을 옹호한 밥 말리”를 모두의 친구로 만든 것은 음악이다. 억눌린 시대를 비추는 화면을 이 아름답게 가로지른다.
7월19일 개봉한 영화 도 기이하리만치 소박한 영화다. 카메라는 비틀스의 수다한 음악적 신화 대신, 조지 해리슨의 발자국을 그저 꼼꼼히 따라간다. 단 마틴 스코세이지 특유의 걸음걸이로. 비틀스의 해체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상영 시간 208분 내내 두 걸음 앞질러 갔다가 한 걸음 뒤돌아오는 왈츠 같은 수법을 취한다. 조지 해리슨이 인도의 연주자 라비 샹카르에게 빠져든 이야기를 하고 나서 본래 종교적이었던 그의 성정을 파헤치거나, 그의 여자들 이야기를 꺼내놓고 첫 부인 패티 보이드를 인터뷰하는 식이다. 영화평론가 이용철씨는 “마틴 스코세이지가 다큐멘터리에서 즐겨 취하는 방식이다. 알려진 인물을 여러 각도로 보도록 유도하는 관객 참여적 다큐멘터리”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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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지 해리슨:물질세계에서의 삶> 영화사 조제 제공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무엇인가. 비틀스 시절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 사이에서 ‘조용한 비틀’로 행세하던 조지 해리슨이다. 수백 곡을 썼지만 둘에게 밀려 단 26곡만 앨범에 실렸던 ‘3인자’ 조지 해리슨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은 무엇인가. 영화는 “겨우 이런 게 우리가 기대했던 삶인가”라며 명성을 얻자마자 버리기에 골몰하는 조지 해리슨의 모습을 비춘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조지 해리슨은 사랑과 분노라는 두 개의 극단적인 감정에 사로잡힌 사람”이라고 증언한다. “처음 만났을 때 존은 남자다운 척하고 폴은 잘 자란 소년인 척했지만, 조지는 그저 다정했어요.” 다정한 조지는 인도에서 발견한 신에 대한 사랑에 사로잡히지만 그 세계로 갈 수 없는 현실에 분노했단다. 두 편으로 나뉜 은 전편에서는 비틀스와 애플 레코드라는 속세의 왕국에 사로잡힌 조지 해리슨을, 후편에서는 비틀스 해체 이후 그의 삶을 조명한다.
비틀스 시절에 이미 조지 해리슨은 크리슈나교 신자를 위한 힌두 찬송가 를 제작했다. 에릭 클랩턴이 부인 패티 보이드와 사랑에 빠져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그의 마음은 이미 물질세계를 건너뛰고 있었다. 15살에 데뷔해 27살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를 뛰쳐나오면서 ‘물질세계의 삶’을 다 겪은 탓일까. 전반부의 삶이 들뜨고 격정적이라면 음반사, 밴드, 영화사를 차리는 후반부의 더 긴 삶은 평화롭다. 2001년 폐암으로 죽기 직전에도 어려운 일을 당한 친구에게 “같이 가줄까”라고 물었다는 그의 이야기는, 이미 여기 속하지 않았던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밥 말리가 게토의 절망과 빈곤에 대한 철학적 대안으로 음악을 택했다면, 조지 해리슨은 물질세계의 삶에 대한 대안으로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했다.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은 무엇에 대한 대안인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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