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한 구순 프랑스 노인의 외침이 수백만 프랑스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것은 진정한 분노의 의미를 일깨웠기 때문이다. 우리 나이 아흔다섯살, 나치 독일에 맞서 프랑스를 지켰던 레지스탕스 정신으로 스테판 에셀은 젊은 세대들에게 일갈했다. “분노는, 저항이며 저항은, 창조”라는 것이다. 분노는 단순한 분개가 아니라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게 하는 창조적 고양이란 말이다.
우리는 정신의 에너지로 살아간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바라는 순수한 욕망이 우리를 이끌어간다. 좀더 나아져야 할 첫 번째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내가 바뀌지 않고 남을 바꿀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기 자신이란 소우주를 그 어떤 뿌듯함과 즐거움으로 채우려는 본능이다.
자기 자신을 좀더 나은 존재로 바꿔나가는 시작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이해하는 것부터다. 스스로는 우리 자신을 알지 못한다. 남을 봐야 내가 보인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남의 생각을 깨닫고, 남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았을 때 새삼 나 자신이 보인다.
책은 남을 통해 나를 일깨워주는 신비로운 통로다. 책을 읽으면 남들이 어떤지 알게 되고, 그들과 나는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된다. 일본의 책벌레 다치바나 다카시는 왜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느냐는 물음에 이유는 단 한 가지, ‘나 자신을 알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고 했다. 주체와 객체 모두를 밝혀주는 이 기능은 책이 지닌 진정한 마법이다.
책으로 만나는 모든 이야기는 다 남의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내가 들어 있다. 자신이 싫어하는 자신, 자신이 꿈꾸는 자신을 책에서 마주치게 된다. 남이 쓴 책 속에 담겨 있던 그 어떤 것이 당신과 주파수가 맞아떨어지며 등장한다. 책이 소중한 이유는 정답을 주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당신에게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당신은 과연 누구인지 묻는 그 질문은 소설에도, 인문서에도, 만화에도 들어 있고 철학과 판타지와 재테크 정보에도 담겨 있다.
질문을 만날 때 우리는 자신에게 분노할 수 있게 된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분노가 아니라 마음이 절로 꿈틀대며 스스로에게 새로워지라고 일깨우는 창조적 분노, 즐거운 분노다. 분노할 일이 부쩍 늘어난 세상이다. 제대로 알아야 창조적으로 분노할 수 있다. 스테판 에셀은 그래서 “찾아서 분노하고 참여하라”고 주문한다. 그 분노가 당신을 오히려 행복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과 우리 사회, 동시대에 대해 창조적 분노를 느끼게 할 책들을 찾아 읽는 것은 온전히 우리 몫이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출간된 책 중에서 주목받은 것들을 골랐다. 분노를 원했지만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창조는 분노에서도, 위안에서도 나온다. 책은 우리에게 이 두 가지 모두를 담아 건네주는 유일한 동반자다.
구본준 기자 한겨레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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