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지구 표면에서 사람들이 미끄러져 추락하는 그림의 산아제한 계몽 포스터가 ‘대한가족계획협회’ 이름으로 나붙던 시절이 있었다. 우연이겠지만, 이 포스터에는 과학과 미망 사이를 오간, 인구에 대한 인류의 인식이 고스란히 재현돼 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알면서도 중력의 실체를 모른다면 지구에서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는 게 마땅하다. 수식으로 무장한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가 ‘인구 폭발’을 예견했지만, 폭탄의 초시계 바늘은 ‘0’의 지점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
인구가 ’너무 많다’는 기준은 뭔가
인구(학)에 대한 ‘과학적 오해’를 풀고 싶다면 6월호를 펼쳐보자. 프랑스 소르본대학 교수인 제라르프랑수아 뒤몽은 처음부터 “‘세계인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박고 시작한다. 세계인구라는 통계 지표를 제시하는 것은 역으로 인구를 둘러싼 복잡한 정치·경제적 역학관계를 비가시화한다. 예컨대 높은 출산율과 낮은 기대수명을 보이는 니제르의 지표와 출산율이 너무 낮아 사망률을 상쇄하지 못하는 일본의 지표를 섞으면 두 나라 사이에는 아무 차이도 없게 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부터 인구과잉을 걱정했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도대체 ‘너무 많다’는 판단의 기준은 뭔가. 두 아테네 엘리트에게는 “시민 수가 너무 많으면 통제에 어려움이 생기고 사회 소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러면서 “수많은 군중에 묻혀 외국민이나 거류 외국인(메데크)이 그리스 시민을 사칭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렇듯 고래로 인구학은 통치권력의 치안 국가, 체계적 배제와 관련한 논변의 근거였다.
그러나 인구학은 현실을 바꾸려는 이들에게도 없어서는 안 되는 학문이다. 중국은 산아제한 정책으로 2050년이면 인구수에서 인도에 뒤질 것이다. 문제는 산업 및 복지 체계가 노령화에 매우 취약한 상태라는 점이다. 러시아가 겪고 있는 급속한 인구 감소는 체제 붕괴의 트라우마다. 심각한 불평등을 급진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러시아는 더 빠르게 비어갈 것이다. 6월호는 낙태를 막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명박 정권에도 일독을 권할 만하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성폭행미수·성추행 혐의로 체포되자, 프랑스 좌파들은 내년 대선부터 걱정했다. 그는 사르코지를 꺾을 수 있는 사회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였다. 그러나 의 반응은 싸늘하다. 언론인 마리 베닐드는 스트로스칸이 여자를 밝히는(호색한) 좌파가 아니라 언론과의 협잡을 통해 ‘좋은 남편’의 이미지로 위장해온 범죄자(치한)였음을 낱낱이 고발한다. 그는 자신의 권력 감정을 여성에게 투사(폭력)해왔다.
한국 특집(‘강이 전하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화급하게 막아야 할 것과 끈기 있게 지켜야 할 것을 동시에 제시한다. 얼마 전 봄비에 제방과 가물막이가 무너진 4대강 유역을 답사한 박창근 관동대 교수는 4대강 난개발로 당장 올여름 한 번도 겪지 못한 ‘낯선 홍수’가 내습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박 교수는 “4대강 사업은 시작은 했지만 결코 준공할 수 없는 사업이고, 설사 내일 준공된다 해도 오늘 중단하는 것이 이익인 사업”이라고 일갈한다.
4대강 유역 답사한 한국 특집안영춘 한국판 편집장은 낙동강의 지천인 내성천을 답사한 뒤, 전생의 바다의 기억을 간직한 이 모래강의 아름다움을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전한다. 그러나 내성천은 오는 2014년 영주댐이 완공되면 절반은 수몰하고 나머지 절반은 건천이 될 운명이다. 그는 지율 스님과 내성천 유역에 대한 내셔널트러스트운동(자연신탁국민운동)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콘크리트처럼 굳건한 현실과 모래처럼 곡진한 희망 사이의 거리가 흔들리는 밤”을 보낸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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