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쌤(ssam), 그러니까 과거 ‘쌈지스페이스 바람’이라 불리기도 했던 클럽이 문을 닫았다. 5월26일부터 29일까지 나흘간, 클럽 쌤의 마지막 무대에 수많은 음악인들이 동참했다. 2000년 6월26일 쌈지스페이스의 개관 공연에 참여한 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과 오(르가즘)! 브라더스는 마지막 무대에도 오르며 쌤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했다. 그 밖에도 이상은, 이한철, 허클베리 핀, 3호선 버터플라이, 갤럭시 익스프레스, 9와 숫자들 같은 신구 음악인들이 함께 무대에 섰다. 지금껏 오직 쌤에서만 ‘월요병 콘서트’를 해온 언니네 이발관 역시 쌤의 공식적인 마지막 공연이 다 끝난 뒤인 5월30일 쌤에서의 마지막 ‘월요병 콘서트’를 무료로 열며 그 공간을 함께해온 팬들과 함께 쌤을 떠나보냈다. 클럽 쌤, 혹은 쌈지스페이스 바람은 마지막 무대에 선 음악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홍익대 앞의 음악 진영에서 어떤 역할을 한 걸까.
음악이라면 힙합도, 펑크도…
클럽 쌤은 홍대 로컬 음악의 메타이기 이전에 나 개인에게도 무척 특별한 공간이었다. 내 첫 직장이기도 했고, 내가 처음 이 바닥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준 곳이기도 했다. 그때 내 앞에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보조 레코딩 엔지니어, 그리고 쌤과 같은 계열사(?)인 인터넷 음악방송국 쌈넷 기자였다. 레코딩 엔지니어라는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해 관련 공부를 하던 나는 당시 스튜디오를 소개받고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다소 충동적으로 지원한 쌈넷에서도 제의가 들어온 상태였다. 둘을 놓고 고민하다 결국 쌈넷을 선택했다. 당시 사양길이라던 레코딩 엔지니어의 불안정한 미래, 박봉에 과중한 업무 같은 이유도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쌈넷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 선택 이후 나는 지금 ‘이 지경’까지 왔지만, 선택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 처음 선택할 때 예상한 것처럼 이후 10년 동안 재미있게 지내왔기 때문이다. 그 재미의 배경에는 쌈넷과 쌤이 있었다. 당시 쌈넷이 주로 조명하던 홍대 앞은 역시 재미있는 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새로운 음악인들이 등장해 계속 클럽 무대에 올랐고, 모던록부터 하드코어, 펑크, 힙합, 일렉트로닉까지 다양한 음악이 홍대 거리를 수놓았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고 새로운 일들이 생길 거 같다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쌈넷과 쌤은 그 흥미진진한 움직임과 재미를 홍대 밖으로 알리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쌤에서 열린 대부분의 공연은 쌈넷을 통해 인터넷으로 생중계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로서는 더 획기적인 방식이었다. 기획과 아이디어를 떠나, 순수하게 양질의 공연을 가장 많이 보여준 클럽이 쌤이기도 했다. 쌤은 언더그라운드건 오버그라운드건, 신인이건 기성이건, 대중적이건 비대중적이건, 편견을 가지지 않고 모두가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왔다. 쌤의 무대에 선 음악인들의 이름을 적는 것만으로도 이 지면을 다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공연이 열린 5월29일의 클럽 쌤. 공연장으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계단 옆의 벽은 지금껏 쌤에서 열린 공연 포스터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 포스터는 시간을 거스르게 하고 추억을 자극했다. 줄리아 하트의 리허설을 보며 (Corazon)의 멜로디가 좋아 나도 모르게 따라 흥얼거리던 장면, 스위트피와 루시드 폴, 그리고 이한철과 토마스 쿡이 합동공연을 하는 날 난데없이 내리던 진눈깨비, 클럽 쌤의 개관 이래 가장 많은 관객이 모인 마스터플랜 힙합 형제들의 공연, 그리고 거기에서 모두가 함께 부르던 주석의 까지. 그 무대에는 내 추억과 함께 청춘도 묻어 있다. 쌤의 폐관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하나의 역사가 끝나고, 그렇게 내 청춘의 한 페이지도 마무리된다는 느낌이 든 건 그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서 보낸 20대 시절과 주고받은 말과 웃음들, 그리고 내가 들어온 소리들은 여전히 이 안에서만 머무르는 것 같았다.
마지막 무대, 추억을 공유하다무대에 누가 오르고, 어떤 공연을 펼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객이건 음악인이건, 추억하기 위해 그 자리에 모였다는 것이 중요했다. 객석은 관객으로 가득 찼고, 무대에 오른 음악인들은 하나같이 쌤과 얽힌 자신의 추억을 얘기했다. 지금은 해체한 할로우 잰은 쌤의 마지막 무대를 위해 4년 만에 원년 멤버가 모두 모여 공연했다. 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밴드 허클베리 핀은 곧 나올 5집까지 포함해 특별히 각각의 앨범에서 한 곡씩 뽑아 연주했다. 그들이 부른 와 은 쌤의 처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각별할 수밖에 없는 노래다. 그건 밴드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쌤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한 백현진은 “그동안 즐겁게 놀게 해줘서 고마웠다”는 마음을 전했다. 백현진의 말은 음악인, 그리고 관객 모두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고마웠어요, 쌤.
추신. 쌤의 폐관과 함께 이제 매주 정기적인 공연을 하는 클럽은 ‘빵’ 정도만 남게 되었다. 다른 클럽들은 간헐적으로 공연을 하거나 대관 공연을 위주로 운영된다. 각각의 클럽이 고유의 색깔을 갖고 대표 밴드들을 내세웠던 과거와 달리, 비교할 만한 대상조차 찾기 어렵게 된 셈이다. 매주 문화방송 를 보며 ‘음악’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이는 많지만, 그들에게 TV에 나오지 않는 음악은 음악이 아니다. 노래 하나를 듣고 눈물 흘리고, 아이돌 가수들을 비난하며 이게 진짜 음악이라 목소리를 높이고, 음악 시장의 다양성에 대해 공감할 만큼 음악을 사랑하는 이는 많지만 그들의 시선과 생각은 결코 TV를 벗어나지 못한다. 임재범이 부른 영상의 조회 수가 2천만이 넘어간 이때, 홍대의 한 클럽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른 한 클럽은 여전히 20명의 관객을 모으기도 힘들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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