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17일과 22일, 일본 도쿄 하쿠주홀에서 배재철(오른쪽)의 무대 복귀 공연이 열렸다. ‘최고의 아시아인 테너’로 칭송받던 그의 명성에 비해 소박하기 그지없는 250석 규모의 홀. 그러나 목소리와 오른쪽 폐의 기능마저 잃었던 성악가의 재활 투혼을 살리기 위해, 음악 프로듀서 와지마 도타로(45·왼쪽)는 과거의 영광에 연연하지 않았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런 목소리를 직접 듣게 될 줄이야 싶었죠. 그것도 아시아인으로!”
2003년 와지마는 한국의 테너가수 배채철의 데모 테이프 한 소절을 듣고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당시 와지마는 베르디의 오페라 도쿄 공연의 남자 주역을 찾고 있었다. 무대에 같이 서는 이는 세계 일류 메조소프라노 피오렌차 코소토. 세계에서 경우 10명 남짓만이 소화할 수 있는 배역, 게다가 대형 오페라극장에서의 공연이었다.
“유럽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배재철이 일본으로 날아와 리허설 무대에 섰을 때, 마치 마리아 칼라스가 ‘골든 트럼펫’이라 칭송했던, 테너가수 마리오 델 모나코를 연상시켰어요. 피오렌차도 그러더군요. ‘와지마, 모나코가 돌아왔어’라고요.”
일본에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배재철을 위해 와지마는 곧 전국 대도시 순회 콘서트를 기획한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 여배우 3명과 함께하는 ‘토크 오페라 콘서트’. 연예인의 이름에 혹해서 들어간 일본 관객은 ‘배재철 테너 요리’에 매혹됐다. 5대 도시에서 모두 만원사례를 이루었다. 배재철의 별칭은 ‘클래식계 욘사마’였다. 그에게 2005년 갑상선암 선고가 떨어졌다.
와지마에게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오페라를 모르거나 싫어하는 사람도 ‘진짜’를 들으면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 ‘진짜’가 목소리를 잃었다. 상실감이 너무 컸다.” 와지마에게는 배재철의 목소리를 살려야 한다는 본능 외에 어떤 계산도 없었다. 갑상연골성형수술 창안자인 이시키 노부히코 교토대 명예교수를 찾아가 수술을 부탁했다. 그러나 의사도 최첨단 의학도 성악가로서의 재기에는 고개를 흔들었다.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던 일이 하쿠주홀에서 일어났다. 아카펠라로 울려퍼지는 성가 , 일본 가곡 , 한국 가곡 , 이탈리아 최고의 가극작가 토스티의 명곡들이 객석을 메운 한·일 양국 관객의 영혼을 쓸어안았다. 와지마는 올가을 한국에서의 공연도 계획 중이다.
도쿄(일본)=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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