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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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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딸을 품은 보스니아의 눈물

등록 2008-01-04 00:00 수정 2020-05-03 04:25

세르비아 군인에게 강간당했던 사라예보 여성의 오늘을 그린 영화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사라예보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무슬림과 기독교인, 보스니아인과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들이 공존하는 국제도시였다. 무슬림 친구와 세르비아인 사돈이 옆집에서 어울려 살았던 인종과 종교의 모자이크 도시 사라예보. 1914년 그곳에서 울려퍼진 한 발의 총성이 비록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을지라도, 유고슬라비아연방의 탄생과 함께 사라예보의 평화는 반세기 넘게 지속됐다. 그렇게 20세기 중반은 사라예보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래서 사라예보 여성의 오늘을 그린 는 70년대 나온 사라예보 찬가 으로 끝난다.

“내가 아빠 닮았어요?” “아니, 넌 날 닮았어”

그르바비차는 사라예보의 마을이고, 사라예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다. 90년대 유고연방이 해체되기 전까지 보스니아는 유고의 일부였다. 연방의 해체와 함께 독립의 물결이 일어났고 전쟁의 참상도 벌어졌다. 91년에 시작돼 95년 데이턴협정 체결까지 지속됐던 보스니아 내전은 유럽도 인종청소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증명했다. 보스니아 독립에 반대하는 세르비아 정부군과 민병대는 보스니아 무슬림을 사살하고 폭행하고 강간했다. 당시의 그곳은 이웃이 이웃을 죽이고 친구가 친구의 동생을 강간하는 아비규환이었다. 그르바비차는 세르비아군이 세운 포로수용소가 있던 마을이다. 세르비아 군인들은 그르바비차 전쟁캠프에서 무슬림의 ‘씨를 말리기’ 위해 무슬림 여성을 조직적으로 반복적으로 강간했다. 그리고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의 모녀는 말한다. “내가 아빠를 얼마나 닮았어요?” “아니, 넌 나를 닮았어”. 에스마(미르자나 카라노비크)는 딸 사라(루나 미조비크)에게 그렇게 답한다. 혼자서 사라를 키우는 에스마는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라의 수학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클럽의 웨이트리스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에스마에겐 문득문득 찾아오는 아픈 기억이 있다. 딸과 몸싸움하는 장난을 치다가도 문득 놀라고, 클럽에서 군인과 여성이 몸을 비비는 모습을 보고도 가슴이 섬뜩하다. 그래도 에스마는 상처를 참으면서 밤새워 클럽에서 일해야 한다. 오직 하나뿐인 사라를 위해서.

엄마와 사는 가난한 사라에게 아버지는 자긍심의 원천이다. 엄마는 사라에게 아버지가 세르비아 군대와 싸우다 숨졌다고 말했다. 조국을 위해 전사한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라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진다. 전사자 가족에겐 수학여행 경비가 면제된다는 것. 사라는 엄마에게 증명서를 떼어달라고 보채지만 엄마는 한사코 얘기를 피한다. 그래도 사라는 엄마를 조르고 결국엔 에스마가 폭발한다. 사라의 아버지는 순교자가 아니라 학살자였던 것이다. 의사를 꿈꾸었던 에스마는 세르비아 군인에게 강간당했고 사라를 낳았다. 심지어 세르비아 군인들은 무슬림의 ‘씨’를 말리고 자신들의 ‘핏줄’을 퍼뜨리기 위해 강간으로 임신한 여성들이 낙태하지 못할 때까지 수용소에 감금하는 만행도 저질렀다. 천인공노할 인종청소였고 반인륜적 전쟁범죄였다.

무슬림 ‘씨’ 말리려 여성 2만 명 강간

전쟁은 끝났지만 인생은 지속된다. 딱 한 번만 젖을 물리려고 갓난아기를 품에 안았던 에스마는 사라를 놓지 못한다. 오히려 에스마에게 아기는 희망이 된다. “(아기가)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고 에스마는 돌이킨다. 그르바비차에는 그렇게 아기를 품은 엄마들이 살아간다. 세르비아 군인에 의해 보스니아 여성 2만 명이 강간을 당했고,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은 그렇게 그곳의 약자인 무슬림 중에서도 약자인 여성의 삶을 짓밟아버렸다. 이렇게 처연한 슬픔 앞에 2006년 베를린 국제영화제는 에 황금곰상을 안기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했다. 보스니아 여성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의 첫 번째 장편영화 는 유럽 각국의 지원을 받아서 겨우 완성될 수 있었다. 는 보스니아 여성에 의한, 보스니아 여성을 위한 첫 번째 영화인 셈이다.

는 한없이 순결한 모성만 그리지 않는다. 딸에게 지우지 못하는 짜증, 타인을 경계하는 과민반응, 에스마의 고통과 슬픔이 과장되지도 미화되지도 않고 선연하다. 사랑하는 딸에게서 증오하는 놈들의 흔적을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에스마를 연기하는 카라노비크의 메마른 얼굴, 사라 역을 맡은 미조비크의 성난 표정은 보스니아 여성들의 슬픔을 절절하게 전한다. 의 진실은 이렇게 아직도 폭로돼야 하는 무엇이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의 상처는 여전히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발칸의 도살자’ 라트코 믈라디치와 라도반 카라지치는 보스니아 내전이 끝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 그들이 세르비아 정부의 비호 아래 발칸의 어딘가에 은신하고 있다는 설이 유력하다. 전세계를 울린 보스니아 여성의 낮은 목소리 . 1월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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