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 야구단〉으로 데뷔해 또 ‘야구와 순애보’ 영화 들고 온 김현석 감독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애타게 동열이를 찾아서, 호창이는 광주로 내려간다. 김현석 감독의 영화 는 그렇게 시작된다. 7년을 거슬러 2000년, 의 시나리오는 한 문장에서 시작됐다. 1980년, 선동열은 고3이었다. 동열의 고향은 광주, 그리하여 영화의 배경은 광주항쟁이 시작되기 직전의 광주다. 라이벌 안암동 대학에 진학을 약속한 동열(이건주)이를 기필코 스카우트하라는 특명을 받고 광주로 내려간 신촌의 호창(임창정)이가 벌이는 좌충우돌 이야기는 의 뼈대다. 여기에 시대의 그림자가 겹친다. 호창의 대학 후배이자 연인이었던 세영(엄지원)은 광주 YMCA에서 일하는 운동권. 그렇게 광주는 호창이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드리운 도시다. 광주 출신에 프로야구 세대인 김현석 감독의 사적인 체험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개인적 관심과 무관치 않은 얘기다. 〈YMCA 야구단〉으로 데뷔한 김현석 감독은 에 이어서 를 세 번째 영화로 선보였다. 야구와 순애보, 김현석 영화의 키워드가 에 들어 있다. 야구감독이 아니라 영화감독임을 강조하는 그이지만, 야구부터 물었다.
동열이 찾아 광주로, 5·18 직전까지만
야구를 정말로 좋아하나 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프로야구가 시작됐다. 고등학교까지 광주에서 다녔는데, 많이 갈 때는 한 해에 20번 정도 야구장에 갔다. 서울로 와서는 한 해에 10경기 정도.
〈YMCA 야구단〉을 만들고는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공로패도 받았다던데.
자꾸만 야구감독으로 알려져서 당분간은 야구영화 안 만들려고 한다.
광식이는 91학번에 숙맥이고, 호창이는 신촌 대학의 야구선수였다. 이렇게 감독의 경험이 영화의 곳곳에 박혀 있다. 유난히 작품과 작가의 거리가 좁아 보인다.
창작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다. 완벽하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조물주뿐이니 어차피 창작은 조물주 흉내내기 아닌가. 조물주가 아니니 모든 사람의 인생은 모른다. 그래도 자신의 경험은 안다. 그래서 차선으로 자신의 경험에 바탕할 수밖에. 물론 그것을 뛰어넘는 천재가 있지만.
당연히 그에게 야구는 인생의 텍스트다. 그는 “늙어가는 모습이 슬펐던 경우가 딱 두 사람인데, 성룡과 김성한”이라고 말했다. 몸이 늙으면 기능도 녹스는 사람들이니까. 그런 그에게 선동열은 첫 경험이다. 그가 처음으로 본 야구 경기는 80년 3월 광주일고가 대통령배에서 우승하는 모습이었다. 당시 광주일고의 에이스는 선동열. 김현석 소년의 베이스볼 키드로서 약사는 602호(2006년 3월28일치)에 실려 있다. 은 당시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선전 중이던 한국 대표팀을 표지이야기로 다루었는데, 마침 WBC가 열리는 미국에 있었던 김현석 감독에게 글을 부탁했고 그는 그의 영화처럼 웃다 보면 ‘짠해지는’ 글을 보내왔다. 그 글을 통해서 새삼스러운 사실도 알았는데, 80년 5월 청룡기에 광주일고가 ‘광주사태’ 때문에 참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에 그는 “시나리오가 안 풀려서 여행을 왔다”고 말했는데 그 시나리오가 마침내 로 현현했다.
당시에 정말로 선동열 스카우트 소동이 있었나.
선동열 감독은 한양대에 갈 뻔했다고 하더라. 하지만 스카우트 분쟁은 크게 없었다. 영화의 에피소드는 스카우터들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에 바탕했다. 정말로 감금은 많이 했다고 하더라.
감독에게 광주는 해태고 선동열인가.
꼭 그렇진 않다. 5·18에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이런 건 있다. 정작 광주 사람들은 5·18에 대해서 말하길 꺼린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다큐멘터리 보고 분노하고 그러지. 정작 피해자는 잊고 싶은 기억인 거다. 임철우 소설 에 이런 부분이 있다. 서울 와서 사람들이 술자리에서만 광주 얘기를 하는 것에 분노했다고. 는 5·18이 시작되기 직전에 끝난다. 정치적 견해를 담고 싶지는 않았고, 정말 평온하게 사는 사람들의 느낌만 보여주면 된다 싶었다. 운동권으로 나오는 여주인공의 대사에 시국에 관한 것도 넣었지만 결국엔 뺐다. 문장에 대한 확신도 서지 않고 어설플 것 같더라.
‘다시 만난 옛사랑’에 대한 판타지
야구광이었던 김현석 소년은 대학 시절 영화감독을 꿈꾼다. 그래서 영화 동아리에 들어갔지만 선배들은 사회과학 세미나만 시켰다. 동기들은 영화는 왜 안 만드냐고 선배들과 다퉜지만, 그는 “과 생활을 안 해서 돌아갈 데가 없어 서클에 남았다”고 돌이켰다. 영화‘패’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으니 혼자 꿈을 키웠다. 혼자 할 수 있는 영화작업으로는 시나리오가 유일해서 썼는데 첫 번째 시나리오 이 영화화됐다. 그리하여 영화의 길에 들어섰고, 비교적 순탄하게 감독이 되었다.
에서 ‘험한 길은 가지 않는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의 신조다. (웃음)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농담 삼아 인터뷰에서 자민련이 정치적 지향이라고 했는데 정말로 썼더라. 나는 다만 김종필 아저씨 사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싸움 붙여놓고 자기는 구경하고, 풍류 즐기고.
김현석 감독의 유머를 엇박자 개그라고 한다. 유머감각은 어디서 왔을까.
정말 모르겠다. 어느 날 보니까 이런 사람이 돼 있더라. 어릴 때 만화는 좋아했다.
에서 손 씻은 조폭 곤태로 나오는 박철민씨가 읊는 비광시(詩)는 정말로 ‘깬다’. “나는 비광… 광임에도 존재감 없는 비운의 광. 차라리 내 막내 비 쌍피가 더 인기 많아라”, 이렇게 부르는 ‘비광송’이 벌써부터 화제다.
구구절절 슬픈 이야기보다는 엉뚱하고 슬픈 이야기가 취향이다. 직각으로 웃기기보다 비틀면서 웃기기. ‘비광송’은 박철민 선배의 협박으로 만들어졌다. 서곤태 캐릭터에 임팩트를 넣어달라는 협박을 받고 만들었다. (웃음)
옛사랑을 다시 만나는 이야기, 일종의 순애보는 감독의 모든 영화에 반복되는 모티브다.
나의 판타지다. 그리고 남자들의 판타지라 생각한다. 소설가 김승옥 콩트집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어떤 남자가 언젠가 첫사랑을 다시 만나겠지 하고 항상 준비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기차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있는데 누가 문을 확 열어서 보니 첫사랑이더라. 세상일이 그렇지 않나.
지금이라도 용서 구할 용기를 내라
영화의 막바지에 남녀 주인공이 서로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두 개의 운동권, 호창으로 상징되는 야구의 세계와 세영으로 대표되는 사회운동의 세계를 화해시키고 싶어하는 듯했다.
스스로는 의 주제를 속죄와 용서라고 생각한다. 화면의 느낌은 코미디라도. 과거에 잘못을 했던 사람이 늦게라도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구하면 피해자는 언제나 용서할 준비가 돼 있다는 거다. 7년이 지나서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호창이를 세영이가 이해하듯이. 이제라도 용서를 구하면 된다. 너도 용기를 내라. 그것이 의 메타포다.
그러니까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아니라도 늦어도 한 번은이라는 말씀. 하지만 너무 진지하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그렇게 김현석 영화의 흐름은 직구보다는 변화구에 가깝다. 그렇다고 각이 큰 변화구도 아니고, 흔들흔들 엇박자로 춤추면서 가다가 결국엔 스트라이크 존에 꽂히는 변화구. 그렇게 웃기다 울린다. 다만 웃음의 데시벨이 높은 만큼 눈물의 농도도 짠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다. 는 11월1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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